이마트는 이런 30주년을 예상하진 않았을 것이다. 유통업계 최강자 자리를 지키던 이마트 추락이 정 부회장에게 쓰라린 상처를 안겼다.
코로나19 확산 기간 온라인 유통시장이 급성장한 탓에 대형마트와 같은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성장세가 둔화됐지만 이제 그 허들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침체라는 또 다른 악재가 덮쳤고, 소비자들은 지갑을 꼭 닫았다.
사실 정 부회장도 이런 위기를 예측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는 올초 신년사에서 “‘3고(高) 시대’에 고객과 접점이 큰 리테일 비즈니스는 더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이런 때일수록 다시 ‘기본’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고객에게 광적으로 집중하라”고 강조했다. 정 부회장은 2020년 신년사부터 ‘고객에게 광적으로 집중하라’를 지속적으로 언급해 왔는데, 이를 통한 ‘신세계 유니버스’ 확장이란 큰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이때 쿠팡 매출액은 전년 동기 20% 증가한 7조3990억원을 기록했다. 2636억원 차이로 처음 이마트 매출을 추월했다.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업계는 일시적일 것으로 봤다. 역기저효과와 소비침체 등으로 단기적 현상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마트 2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 증가한 7조2711억원, 영업손실은 530억원으로 전년(영업손실 123억원)보다 적자가 407억원 확대됐다. 쿠팡 2분기 매출은 7조6749억원으로, 매출 격차는 4038억원으로 약 2배 가까이 더 벌어졌다.
이 때 쿠팡 3분기 매출은 8조1028억원으로, 매출 7조원을 돌파한지 10개월 만에 8조원을 돌파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쿠팡은 날로 ‘승승장구’했고, 3개 분기 연속 이마트 매출을 추월했다. 유통업계 맏형인 이마트는 자존심을 제대로 구겼다.
하지만 정 부회장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늘 강조해왔던 ‘신세계 유니버스’였다. 정 부회장 오른팔이었던 강희석 전 대표가 유료 멤버십 서비스를 통해 신세계 유니버스를 확장하고자 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1100만명 유료멤버십 회원 수를 둔 쿠팡에 맞선 야심찬 카드였다.
지난 6월 출범한 유료 멤버십 신세계 유니버스 클럽은 이마트·G마켓·SSG닷컴·스타벅스·신세계백화점·신세계면세점 등 6개 계열사와 신세계 관계사, 협력을 맺은 파트너사 등 모든 혜택을 한꺼번에 담았다. 연간 가입비 3만원에 무려 200만원 이상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파격적 조건을 제시했고, 톱배우 손석구를 광고모델로 내세우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그렇다할 성과는 없었고, 효과는 미미했다. 미약하게나마 이룬 성과들을 살펴보면 출시 50일 만에 회원들이 평균 3개 계열사를 이용했고, 객단가는 비회원보다 67%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실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런 점을 미루어 볼 때 실적에 큰 영향을 줄만큼 큰 효과가 있었던 건 아니라는 분석이다.
신세계 유니버스 클럽에 대한 업계 평가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온·오프라인 계열사만 모아뒀을 뿐 특별한 차별점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신세계 유니버스 클럽의 지지부진한 성과는 강 대표 경질로 이어졌다.
그렇게 그의 ‘오른 팔’이 날아갔다. 2021년 인수한 이베이코리아와 시너지도 좀처럼 나지 않았다. 실적 하락, 유료멤버십 흥행실패 등 여러 가지로 올해 그는 힘들게 한 해를 보냈다.
하지만 힘들 때일수록 심지를 굳혀야 하는 법. 정 부회장은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경영전략실 회의 주재에 직접 나서며 강도 높은 쇄신에 나섰다. 신세계그룹은 지난달 17일 계열사들 성과총력 체제를 안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기존 전략실을 경영전략실로 이름을 바꾸고 전략실 산하 지원본부와 재무본부를 각각 경영총괄과 경영지원총괄 조직으로 개편했다.
개편된 경영전략실장에는 임영록 신세계프라퍼티 대표가 선임됐다. 임 대표는 정 부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한 ‘스타필드’ 사업을 구현해낸 인물이다. 강 전 대표가 사라졌지만 그룹 내에서 정 부회장 역할은 오히려 더 커졌다는 분석도 나오는 이유다.
정 부회장은 경영전략실이 개편된 뒤 벌써 두 번이나 주재회의를 열었다. 그만큼 다가올 2024년 전략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첫 번째 회의에서 그는 “그동안 역할과 성과에 대해 무겁게 뒤돌아봐야 할 시기”라며 “새로운 경영전략실은 각 계열사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군림하는 조직이 아니라 그룹 내에서 ‘가장 많이 연구하고 가장 많이 일하는 조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거의 업무방식과 조직, 시스템 등을 모두 바꾸라며 강도 높은 쇄신을 주문했다. 이후 약 일주일 만에 다시 경영전략실 회의를 연 정 부회장은 앞선 회의보다 더 디테일하게 주문했다.
그는 신세계그룹 전체 현행 인사 제도를 전반적으로 재점검하고 개선할 것을 요구하면서 예측가능하면서 객관적이고 명확한 KPI 수립을 강조했다. 단순히 지난해와 비교해 증감을 따지는 수준을 넘어 거시경제적 추세와 해당 산업군의 업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매출이 5% 신장했지만, 해당 산업군 내 경쟁사들이 평균 20% 신장했다면 과연 이것을 잘했다고 평가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반대로 역성장 했더라도 경기 부진과 업계 침체 속에 상대적으로 선방했다면 성과를 인정하는 평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 부회장은 “스스로는 변화하지 않고, 변화를 요구만 하면 그 뒤를 따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경영전략실부터 솔선수범해 변화의 선두에 나설 때, 그룹 전체 변화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슬기 기자 seulgi@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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