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vs 행동주의 주주
태광산업 이사회는 총 6인으로 구성됐다. 사내이사는 유태호 대표이사 사장(이사회 의장 겸임), 정안식 영업본부장 상무 등 2인이다. 다른 국내 상장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다. 그러나 태광산업은 서로 다른 주주를 배경으로 선임된 이사들이 섞여 있다. 한쪽은 최대 주주이자 태광그룹 총수인 이호진 전 회장 의중이 반영됐다. 다른 쪽은 2대 주주 트러스톤이 추천해 선임한 인사들이다.
트러스톤이 추천 사내이사인 정안식 상무와 사외이사 김우진·안효성 이사 등 3인이다. 이들은 지난 2024년 3월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이사회에 진입했다.
태광산업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제출한 지난 6월 27일 이사회 의사록에 따르면, 이날 이사회에 상정된 EB 발행 건에 대해 김우진 이사만 반대 의견을 냈다. 김 이사는 반대 사유로 “EB 발행 시 기존 주주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EB 발행 건을 처리하기 위한 이사회는 7월 2일 다시 열렸다. 금융감독원이 “EB 발행 대상자를 기재하라”며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김우진 이사와 함께 안효성 이사도 반대 의견을 냈다. 김 이사는 “선정된 인수인(한국투자증권)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세무상 리스크를 우려한다”고 했다.
문제는 태광산업 EB 발행이 자사주 의무소각을 공약한 이재명 대통령 당선 시기와 맞물렸다는 점이다. 자사주 소각을 기대하고 급등을 거듭한 태광산업 주가는 EB 발행 공시 이후 급락했다.
트러스톤은 “태광산업 EB 발행은 경영상 합리적 판단이 아닌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과 주주 보호 정책을 회피하려는 꼼수”라고 공격했다. 이어 EB 발행 잠정 중단 가처분 신청으로 법정 싸움에 들어갔다. 태광산업도 법원 판단 전까지 EB 발행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잇단 경영진 교체...불협화음 본격화
트러스톤이 가진 태광산업 지분율은 5.95%에 불과하다. 54.53%를 보유한 태광 총수 일가가 사실상 임명한 이사진과 동등한 숫자를 진입시킬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트러스톤은 태광산업 주식을 다량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한 2021년부터 회사 측과 대립각을 세웠다. 회사가 현금을 쌓아놓기만 하고 있다며, 투자·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등 주주가치 제고를 요구했다. 하지만 총수 일가 반대에 가로막혔다.
태광산업이 2022년 흥국생명에 4000억원 유상증자를 결정하자, 트러스톤은 “이호진 전 회장 위기를 태광산업 주주들이 공유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총수 일가와 정면 충돌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정기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양측의 관계는 급변한다.
이 전 회장 측이 트러스톤 추천 정안식 상무와 김우진·안효성 사외이사 등 3인 이사 선임을 수용한 것이다. 회사 측은 “주주들 쇄신 요구에 대주주도 상당 부분 공감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당시 정부가 추진한 밸류업 프로그램에 맞춰 태광산업도 지배구조 개선 압박을 받았고, 이 전 회장이 광복절 특별사면을 계기로 경영 복귀를 준비 중이던 상황에서 행동주의 펀드와 일시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을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화해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표면적 갈등은 6월 EB 발행을 계기로 터졌지만, 그 이전부터 이사회와 경영진 구성에서 균열 조짐이 감지됐다.
우선 2023년 말 대표이사로 선임됐던 성회용 전 대표가 올해 2월 갑자기 사임한 배경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언론인 출신으로 이호진 전 회장 인사로 보였지만, 트러스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던 인물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트러스톤은 공개 주주서한에서 “성 대표 사임 이후, 새 대표들은 마치 결정권이 없는 것처럼 이사회를 운영하고 있다”며 이 전 회장이 실질적으로 경영을 지휘하고 있다는 정황을 지적했다. 실제로 성 전 대표 체제에서는 자사주 소각 등 주주가치 제고와 관련된 대화가 오갔으나, 사임 이후 트러스톤 측과의 소통이 단절됐다는 게 트러스톤 주장이다.
이어 오용근 공동대표도 6개월 만에 퇴진했고, 사외이사 남유선 이사는 이사회 제안으로 재선임 안건이 상정됐지만 주총에서 탈락했다.
곽호룡 한국금융신문 기자 horr@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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