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는 18일(현지시각) 430억 유로(약 62조원) 규모의 반도체법 3자 협의가 최종 타결됐다고 밝혔다.
당초 EU는 지원 대상을 첨단 반도체로 국한했지만, 세부 내용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범용 반도체까지 포함하기로 했다. 이는 대다수의 유럽 반도체 기업들이 성숙 공정을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EU가 반도체 법안을 논의하게 된 건 미국과 아시아에 치우쳐진 반도체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EU에서 생산하는 반도체 생산량은 전 세계의 10%에 불과하다. 그러나 EU는 이번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통해 전 세계 반도체 생산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EU의 반도체 법이 본격 시행되면, 미국과 같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제조시설 유치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생산 비중을 높이기 위해선 제조시설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EU의 반도체 법안 합의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법안에는 역외 기업에 대한 명시적 차별 조항이 포함돼 있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며, 현재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의 생산 시설이 EU에 위치하고 있지 않아 직접적 영향은 적다"면서도 "이 법안을 통해 EU의 반도체 제조 역량이 강화될 경우 반도체 시장에서의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봤다.
미국은 지난해 8월 반도체 지원법 이른바 ‘칩스법(CHIPS Act)’을 제정했다. 미국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건설하는 기업에 보조금 100억달러 또는 최대 40% 수준의 세액공제를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미국의 반도체법을 통해 편성한 예산은 5년간 총 520억달러다. 이중 390억달러는 미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 신설 및 확장하는 기업에 나머지 110억달러는 반도체 연구개발 지원비로 사용된다. 나머지 20억달러는 방위산업 관련 반도체 업체에 지원한다. 현재 보조금 신청 의향서를 낸 기업들은 200여 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보조금을 받은 기업들은 향후 10년간 중국 등 우려 국가에 일정 수준 이상의 투자가 금지되는 가드레일 조항이 있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보조금 신청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제출 여부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도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이라 불리는 반도체 지원법이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반도체와 이차전지, 백신, 디스플레이 등 국가전략사업에 기업이 설비투자를 할 경우 세액공제 비율을 확대하는 내용이다. 대기업은 현행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각각 확대된다. 또 올해 한해서만 10%를 추가로 공제하는 혜택도 제공한다. 즉, 대기업은 최대 25%, 중소기업은 최대 35%까지 세액공제가 확대되는 셈이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강국인 일본은 토요타, 소니, 키옥시아, NTT, 소프트뱅크, NEC, 덴소, 미쓰비시UFJ은행 등 일본 대기업들이 각 10억엔(약 93억원)씩 출자해 만든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에 700억엔(약 6888억원)을 지원한다. 이들은 최근 반도체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 뛰어들었다.
중국은 자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에 19억달러(약 2조50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한다. 또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 수준까지 향상시키겠다는 목표도 내놨다. 대만도 반도체 연구개발 등과 관련해 세제 혜택을 지원하고 있다.
일각에선 EU의 반도체 지원법으로 글로벌 반도체 생산 점유율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결국 유럽도 다른 국가와 같이 보조금을 제공하며 반도체 생산설을 유치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기업으로선 유럽보다 고객사가 많은 미국이 투자 매력을 느낄 것”이라며 “자동차 고객사만 보고 유럽으로 넘어가기엔 높은 인건비, 인프라 등 고민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에바 메이델도 EU 수석 대표도 “(반도체법이)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리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우리는 EU 시장을 매력적으로 만들 다른 요소들을 확실히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정은경 기자 ek7869@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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