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청년 일자리’ 위해 이번엔 제대로 나서나
국책은행 관계자는 “금융위가 최근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신용보증기금 등으로부터 희망퇴직 제도 시행 현황에 관한 자료를 받아 갔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우선 각 기관별 퇴직 시행 상황을 살피고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인 직원 수 등을 서면 검토한 뒤 논의에 나설 전망이다.
신현호 수출입은행 노동조합 위원장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국책은행 명예퇴직 제도 개선 논의는 있어왔지만, 금융위와 기재부 사이에 이견이 있어 제도 개선이 어려웠다”며 “특히 본회의 발언을 통해 ‘명예퇴직 재도 개선이 어렵다’는 입장을 내비친 홍남기닫기홍남기기사 모아보기 경제부총리에게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최근 입장 변화를 묻는 질의를 보냈는데, 본회의 발언 그대로 형식적인 답변만 돌아와 회의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신 위원장은 “기재부가 어떻게든 입장 변화를 가져주기를 바란다”며 “이번에는 두 기관 실무진이 함께 논의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국책은행은 다른 공공기관과 달리 인건비를 지원받지 않고, 별도 수익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명예퇴직 제도를 일률적으로 막는 것은 조직 경영 측면에서도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국책은행의 명예퇴직 제도 개선에 나선 배경에는 ‘0’이라는 숫자가 있다.
3개 국책은행의 희망퇴직자는 최근 7년간 ‘0명’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상반기(1~6월)까지 5대 시중은행에서만 약 2500명 직원이 희망퇴직으로 은행을 떠난 것과는 대조적이다. 시중은행은 노사 간 합의로 희망퇴직을 시행하는 동시에 디지털‧정보통신기술(ICT) 인재 채용을 대거 늘리고 있다.
지난해 기업은행과 산업은행 등 8개 금융공기업의 신규 채용은 408명이다. 2019년(495명)에 비해 17.6% 줄었다. 현 정부가 출범 때부터 강조해온 일자리 창출 기조에 부합하지 못하는 부진한 성적표다.
반면 2016년 194명이었던 국책은행의 임금피크제 대상자(만 55~57세 이상)는 내년 1685명으로 9배 가까이 늘어난다. 전체 직원의 약 10% 수준이다. 2016년 기업은행과 산업은행의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 수는 각각 30명과 131명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각각 1003명, 340명으로 불었다. 내년 말에는 임금피크제 직원 비중이 각각 18.2, 12.3%에 달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금융권 전반에는 ‘디지털 전환’과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 중심 기업문화 혁신’을 강조하는 가운데 국책은행은 갈수록 변화에 뒤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국책은행 노동자들도 ‘신규 채용’ 원해
국책은행 노동자들은 ‘희망퇴직’을 시행해 원하는 노동자에 한해 퇴직 길을 열자는 분위기다. 신규 채용을 늘리고 효율적인 인력 운용을 위해서는 사문화한 명예퇴직금 제도를 반드시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는 임금피크제를 선택하는 것이 희망퇴직보다 처우가 좋아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져버린 상황이다.
한 국책은행 노동자는 “공기업 전체에 적용되는 명예퇴직 제도가 있지만, 기재부 지침에 따라 임금피크제 기간 급여의 45%만을 퇴직금으로 받는데 누가 선택하겠냐”며 “사실상 이름만 존재하는 제도”라고 말했다.
다른 국책은행 노동자 역시 “시중은행의 희망퇴직 제도에 비하면 터무니없을 만큼 처우가 열악한 퇴직제도 때문에 대부분 임금피크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며 “인력 운용이 어려운 상황에 조직은 비대해지고, 청년의 신규 채용 일자리는 계속 줄어드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전했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연령부터 임금을 단계적으로 낮추는 제도다. 현재 은행권은 만 55~57세부터 정년 60세까지 3~5년간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다. 대부분 시중은행은 고임금 인력의 인건비와 관리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임금피크제 전후로 명예퇴직금을 임금의 몇 배 이상 주고 퇴직을 유도한다.
하나은행은 최근 ‘준정년 특별퇴직’을 실시하며 특별퇴직금은 월평균 임금 최대 24개월치로 정년 잔여 월수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임금피크 시기가 도래한 1965년 하반기 출생 일반 직원을 대상으로는 하반기 임금피크 특별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이들에게는 월평균 임금 25개월치와 자녀 학자금 실비 등을 지급한다.
신한은행도 올해 들어 유례없이 두 차례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올해에만 353명 직원이 새 출발을 위해 짐을 쌌다. 이들에게는 연차와 직급에 따라 최대 3년 치 임금이 특별 퇴직금으로 지급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희망퇴직 시행을 두고 “이번 희망퇴직으로 조직 활력 유지를 위한 인재 선순환과 새로운 핵심인재들의 채용 여력을 확보해 미래 금융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책은행은 이런 희망퇴직 제도 활용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기획재정부의 총 인건비 통제가 원인이다. 국책금융기관 희망퇴직자는 기재부 지침에 따라 임금피크제 기간 급여의 45%만을 퇴직금으로 받을 수 있다. 퇴사 직전 24~39개월 치 평균 임금을 지급하는 시중은행과 비교할 때 30% 수준밖에 안 된다.
◇ 정부에게 바란다 ‘명예퇴직금 현실화’
이런 상황이지만, 기재부는 현재까지 ‘시중은행과 달리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퇴직금을 받아 가는 것을 국민이 싫어할 것’이라는 국민 정서와 ‘국책은행만 별도로 퇴직금 제도를 개선할 수 없다’는 다른 공기업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결정을 답보하고 있다. 이날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 공공국, 국무조정실 관계자들이 모여 논의하는 자리도 비공개라서 현재까지 어떤 논의가 오고 가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올해 만약 제도가 개선된다면 6년 만의 일이다. 지난 2015년 감사원이 ‘국책은행의 명예퇴직금 수준이 너무 높다’고 지적한 뒤 국책은행 노동자들은 임금피크제를 ‘강제 선택’하게 됐다. 기존 명예퇴직금은 은퇴 전까지 받을 임금의 105% 수준이었지만, 임금피크제 시행 뒤 임금의 45%로 묶였다. 이에 국책은행 시니어 노동자들은 6년 전 수준만큼 퇴직금을 보장해야 ‘울며 겨자 먹기’로 회사에 남지 않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임금피크제 시행이 개인에게도, 조직 전체에게도,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조윤승 산업은행노동조합 위원장은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만들어진 임금피크제는 없어져야 하는 제도”라고 말했다. 그는 “임금피크제를 시행한 지점장은 승진할 기회도 없고 월급도 매년 20% 이상 줄어 3년이 지나면, 신입사원보다 월급이 적다”며 “명예퇴직보다 임금피크제 처우가 그나마 나아서 선택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임원이 될 기회도 없고, 보상도 갈수록 줄어들면 누가 일을 제대로 하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기재부는 명예퇴직금에 들어가는 돈이 다 세금이기 때문에 인상은 어렵다고 하지만, 지금 지불하는 임금피크제 비용은 국민 세금이 아니냐”며 “인건비 외에도 한 사람에게 들어가는 4대보험료나 기타 관리비 등을 다 포함하면 명예퇴직금 이상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중은행이 일정 나이가 되면 희망퇴직 제도로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노동자를 위한 것도 있겠지만, 기업 입장에서도 또 다른 혁신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국책은행도 60세 이상 나이가 되면 새로운 기회를 개인이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퇴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청년을 채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홍배 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지난해도 국책은행장들과 금융위 고위직 관계자들이 만나 ‘명예퇴직 현실화’에 같은 의견을 보이고 추진했지만, 기재부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며 “올해도 다시 검토하겠다고 하는데, 사실상 제대로 혁신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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