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대형 발전소 건설에 자금을 공급하는 전통적인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넘어 발주국의 재원 조달 구조를 미리 설계하고, 국내 기자재·협력사의 수출과 해외 생산기지의 재생에너지 전환까지 연결하는 ‘탈탄소 에너지 공급망금융’ 전략이다.
수출입은행은 원전 수출을 통한 무탄소 전원 확보와 수출기업의 RE100 대응을 동시에 뒷받침하는 두 개의 축으로 연결하고 있다. 에너지 생산시설뿐 아니라 발전 기자재와 수출기업, 해외 협력사까지 금융지원 범위를 넓히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5년간 전략수주 100조…원전 수주전 ‘금융 견인차’
이미지 확대보기올해 수은이 에너지금융에서 가장 먼저 힘을 싣고 있는 분야는 원전이다.
해외 원전 사업은 건설 기간이 길고 사업비가 막대한 데다 발주국 정부와 전력공기업의 재정 여건에 따라 사업 성패가 좌우된다. 기술력과 시공 능력만큼 장기 자금을 어떤 조건으로 조달할 수 있느냐가 수주 경쟁력을 결정하는 구조다.
이에 수은은 개별 기업이 수주한 뒤 금융을 제공하는 기존 방식을 넘어 사업 초기부터 발주처와 재원 조달 방안을 논의하는 선제적 금융지원에 나서고 있다. 과거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금융지원 경험을 바탕으로 발주국 수요에 맞춰 대출과 보증 등 정책금융을 조합한 ‘K-금융 패키지’를 제시한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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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수은은 지난 4월 한국무역보험공사, 한국전력공사와 함께 베트남 국가산업에너지공사(PVN)와 원전 프로젝트 금융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베트남 신규 원전 사업에 대한 금융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금융 타당성 확보를 위한 재무모델 수립과 원전 금융지원 실무협의체 구성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국내 기업이 사업에 참여하기 전부터 베트남 발주처가 필요로 하는 금융구조를 파악하고 맞춤형 지원안을 마련해 기술과 금융을 하나의 수출 패키지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베트남·체코 SMR까지…원전 생태계 전후방 지원
이미지 확대보기수은의 원전금융은 대형 원전 본사업에만 머물지 않는다. 수은은 지난달 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 두산에너빌리티, 현대건설, 삼성물산, 대우건설 등 원전 공기업·건설사·기자재 기업이 참여하는 정책금융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베트남·체코·불가리아·폴란드 등 사업이 가시화된 국가를 대상으로 ‘K-금융 패키지’를 신속히 수립하고, 발주처 수요에 맞춘 장기 재원 조달 방안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대형 원전을 수주하더라도 핵심 부품과 기자재 공급망이 함께 성장하지 못하면 수출 효과가 일부 기업에만 머물 수 있다. 수은은 원전 본사업에 대한 장기 금융과 함께 기자재 수출금융, 협력사 운전자금 등을 공급해 국내 원전 생태계 전반이 해외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SMR은 기존 대형 원전보다 사업 단위가 작고 공장에서 주요 설비를 제작하는 방식이어서 중소·중견 기자재 기업의 참여 여지가 상대적으로 크다. 수은이 차세대 원전 사업 초기부터 금융구조 마련에 참여하면 국내 기업이 설계와 건설뿐 아니라 기자재 공급과 운영·정비 등 후속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도 넓어질 수 있다.
인공지능 산업과 데이터센터 확대로 전력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도 수은이 원전금융을 강화하는 배경이다. 수은은 원전을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을 동시에 뒷받침할 수 있는 전략산업으로 보고 해외 수주금융과 국내 공급망 육성을 연결하고 있다.
삼성 협력사 RE100 전환 지원, 컨설팅 분야 강화
원전금융이 대규모 해외 수주를 겨냥한다면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수출기업 공급망의 탄소전환을 지원하는 새로운 금융모델이 등장하고 있다.수은은 지난 6월 삼성전자, 삼성전자 협력사 파트론과 공급망 ESG 역량 제고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삼성전자 중소·중견 협력사들이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PPA)을 공동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관련 컨설팅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협약에 따라 베트남 현지 11개 협력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재생에너지를 공동 구매하고, 전문 자문사가 발전사업자 선정과 계약조건 협상 등 전력구매계약 전 과정을 지원한다.
중소·중견기업은 개별적으로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을 체결할 경우 구매 물량이 작아 발전사업자와 협상하기 어렵고 전문인력을 별도로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여러 협력사의 수요를 하나로 모으면 계약 규모가 커져 조달 단가를 낮추고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수은은 협력사들이 부담해야 하는 컨설팅 비용의 상당 부분을 지원한다. 기존처럼 기업에 직접 대출을 공급하는 데서 나아가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거래 구조를 만들어 주는 역할까지 정책금융의 범위에 포함한 것이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와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 등 글로벌 탄소 규제가 강화되면서 대기업뿐 아니라 부품과 소재를 납품하는 협력사에도 탄소배출 감축과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해외 생산기지의 재생에너지 확보는 이제 단순한 환경경영을 넘어 수출계약과 거래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조건에 가까워지고 있다. 수은이 삼성전자 협력사를 대상으로 마련한 공동구매 모델을 다른 국가와 산업으로 확대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은은 이번 사업을 ‘상생형 패키지 컨설팅’의 표준 모델로 삼아 해외에 동반 진출한 대기업과 중소·중견 협력사의 탄소전환을 함께 지원할 방침이다.
태양광·해상풍력…재생에너지 수주금융 다변화
수은은 기업의 재생에너지 구매 지원과 함께 해외 발전 프로젝트에 대한 금융공급도 이어가고 있다.지난해에는 한국전력이 수주한 사우디아라비아 사다위 태양광발전 사업에 2억2500만달러 규모의 PF 금융을 제공했다. 사다위 사업은 설비용량 2000MW 규모의 태양광발전소를 건설·운영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한국전력·한국동서발전·삼성물산이 참여한 괌 요나 태양광발전 사업에도 PF 대출과 자본금연계대출을 합쳐 총 2억4100만달러를 지원했다. 해당 사업은 132MW 규모 태양광발전소와 325MWh 규모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를 함께 구축하는 프로젝트다.
해상풍력에서는 LS전선 등 국내 기자재 기업이 참여하는 대만 장화2 해상풍력 사업에 1억5000만달러 규모의 금융을 제공했다. 발전소 건설자금 지원을 넘어 해저케이블 등 국내 기업의 기자재 수출을 함께 끌어내는 구조다.
수은은 지속가능항공유(SAF)도 차세대 에너지금융 분야로 점찍었다. 폐식용유와 생활폐기물 등을 원료로 사용하는 SAF는 기존 항공유보다 탄소배출을 줄이면서 현재의 항공기와 급유시설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밖에도 수은은 국내 기업이 해외 SAF 사업에 참여할 경우 투자와 시공, 장기구매계약에 이르는 전 과정에 정책금융을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장호성 한국금융신문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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