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이번 이전은 단순히 본점 소재지를 옮기는 문제가 아니라 법 개정, 상장사 지배구조, 금융시장 접근성, 인력 이탈, 원격·분산근무 제도화가 함께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법 개정의 경우 국회의 동의가 필수적인데, 22대 국회 전반기가 마무리되고 후반기에 접어들면 상임위 등 원구성이 우선순위가 돼 법안 처리가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방선거 이후의 정국 혼란을 감안하면 2차 기관이전은 1차 때보다 긴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 '대구', 산은·수은 '부산' 이전 거론
이미지 확대보기현재 기업은행은 대구,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은 부산으로 이전하는 안이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기업은행의 경우 대구 이전 또는 기능 분산 배치 시 기존에 이동한 신용보증기금과의 정책금융 연계가 가장 큰 시너지로 꼽힌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중소기업 비중이 작지 않은 대구에서 신보가 보증을 공급하고 기업은행이 대출·투자·외환·자금관리 서비스를 결합하면, 대구·경북권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지역형 정책금융 패키지 구축이 가능하다는 논지다.
부산의 경우에도 이미 수은·산은·무역보험공사 해양금융 부서가 모인 해양금융종합센터가 운영된 전례가 있어,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이 이전했을 때 시너지 발휘가 보다 쉬울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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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금융센터를 중심으로 정책금융기관과 민간 금융사, 해양산업 기업이 연결되는 금융 클러스터 조성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금융노조 “금융은 집적산업, 관치금융 반대”
그러나 이 같은 기대효과는 단지 ‘청사진’일 뿐,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전 당사자인 각 기관 및 은행들의 구성원들이다.기업은행 지방이전설이 구체화되자 금융노조는 지난 5월 15일 청와대 앞에서 ‘IBK기업은행 정략적 이전 공약 폐기 촉구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여야 대구시장 후보들의 기업은행 이전 공약 철회를 요구했다.
금융노조는 기업은행 이전 논의에 대해 ‘표심팔이’라고 비판하며, 선거를 앞두고 국책은행을 지역 유치 경쟁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내놨다. 특히 노조 측은 기업은행의 주 고객과 업무 기반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반대 논리로 들고 있다. 중소기업 대출의 상당 부분이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상황에서 본점 이전이 금융지원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 주장의 골자다.
이 자리에서 김현준 금융노조 한국산업은행지부 위원장은 “관치금융으로는 한국 경제가 발전할 수 없다”며, “기업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과 같은 국책금융기관의 지방 이전은 국책금융의 망가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책은행 이전, 국회 문턱도 넘어야
이미지 확대보기2차 기관이전의 또 다른 벽은 ‘법 개정’이다.
현행 중소기업은행법은 “중소기업은행은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업은행 본점을 지방으로 이전하려면 단순한 행정 결정만으로는 어렵고, 국회에서 관련 법률을 고쳐야 한다.
한국산업은행법 역시 산업은행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두도록 하고 있으며, 한국수출입은행법도 수출입은행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어느 지역으로 이전할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합의뿐 아니라, 본점 소재지를 법률에 직접 명시할지, 정관으로 위임할지, 단계적 이전을 허용할지 등 세부 설계도 필요하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 논의가 수년째 법 개정 문턱에서 멈춰선 것도 이 같은 구조 때문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도 산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에 반대한 바 있다.
금융권에서는 기업은행 등 다른 국책은행 이전 논의 역시 법 개정 로드맵이 빠진 채 추진될 경우 지역 간 유치 경쟁만 키우고 실질적 실행력은 떨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각 은행들의 구성원들 역시 지방 이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어 내부적인 의견 통합에도 긴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상장사’ 기업은행의 딜레마, 복잡한 셈법
특히 기업은행은 산업은행·수출입은행보다 한층 더 복합적인 쟁점이 있다. 기업은행이 중소기업 금융 지원이라는 정책적 역할을 수행하는 국책은행인 동시에,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상장사라는 점이다.기업은행은 정부 및 특수관계인이 높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일반 투자자와 기관투자자도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기업은행의 지분 현황은 5월 현재 대한민국 정부 등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이 68%대, 유동주식 비율은 31%대 수준이다.
따라서 기업은행의 본점 이전 논의는 공공기관 지방이전 차원을 넘어 주주가치와도 연결될 수 있다. 이전 비용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영업과 의사결정 체계에 차질은 없는지, 서울 금융시장 및 정책당국과의 접점 약화가 수익성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등을 설명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업은행이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만큼 균형발전 정책에 동참해야 한다는 명분은 있다. 그러나 상장사로서 주주와 시장에 대한 설명 책임 역시 피할 수 없다. 이전 자체보다도, 이전 방식과 비용 부담 구조, 중장기 기업가치 제고 방안이 함께 제시돼야 하는 이유다.
전면 이전, 업무 비효율 우려...정착율 제고 방안도 필요
금융권 안팎에서는 각 은행의 본점 전체를 한 번에 옮기는 방식보다 기능별 분산 이전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이는 단순히 인원을 지방으로 보내는 이전이 아니라, 지역 산업과 정책금융 기능을 결합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1차 공공기관 이전 이후에도 일부 지역에서 ‘건물은 왔지만 기능은 오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 만큼, 2차 이전은 본점 소재지보다 실제 권한과 예산, 인력 배분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면 이전은 상징성이 크지만, 금융기관 특성상 리스크도 크다. 금융노조가 지적한 바와 같이 금융당국, 국회, 자본시장, 대기업 본사, 회계·법률 자문기관 등이 여전히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 모든 핵심 기능을 한꺼번에 이전하면 의사결정 지연과 업무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
인력 문제도 2차 이전의 성패를 가를 변수다. 1차 지방이전 당시에도 가족 동반 이주 저조, 주말부부 증가, 경력직 이탈, 수도권 인재 채용 어려움 등이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금융공공기관은 일반 행정기관보다 전문성이 높은 업무가 많아 핵심 인력이 빠져나갈 경우 조직 역량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은행의 경우 여신, 리스크관리, 자본시장, 디지털, 글로벌 부문 등에서 전문인력 유지가 중요하다. 지방이전이 단순 인사 발령으로 받아들여질 경우 경력직 이탈이나 신규 채용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비용 추계와 재원 조달 방안도 빠질 수 없다. 본점 이전에는 사옥 확보, 전산·보안망 구축, 직원 이전 지원, 중복 사무공간 운영 등 상당한 비용이 따른다. 이 비용을 기관이 부담할지, 정부·지자체가 지원할지, 주주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설명할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책은행 한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한다면 직원들은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다지만, 막상 직원 개인 입장에서는 배우자 직장, 자녀 학교, 부모 부양 문제까지 걸려 있어 단순히 발령만 낸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며, “회사만 내려간다고 사람이 따라 내려가는 게 아니라 가족과 생활, 커리어가 같이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또 다른 금융권 한 관계자는 “2차 이전은 1차 이전보다 대상 기관의 성격도 복잡하고, 금융시장과의 연결성도 더 민감하다”며 “정치적 구호만으로 추진하면 내부 반발과 시장 우려가 동시에 커질 수 있는 만큼 법 개정, 규제 완화, 인력 정착, 지역산업 연계안을 한꺼번에 제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호성 한국금융신문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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