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시중은행들이 원화대출과 정책금융 연계, 펀드 출자 등을 중심으로 생산적 금융 확대 방안을 찾고 있다면, SC제일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기업금융에서 차별화 요소를 찾고 있다.
외국계 은행들은 가계·소매금융 시장에서 국내 주요 은행과 정면 승부를 벌이기보다는 해외 투자, 무역금융, 외환·환헤지, 자금관리 등 국경을 넘는 기업금융 수요를 흡수하는 방식에 집중하고 있다. 생산적금융의 외연을 단순한 원화 기업대출 확대에 한정하지 않고,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과 글로벌 사업 확장을 지원하는 금융 인프라로 넓히는 전략이다.
정량평가로는 한계, 글로벌 영향력 함께 봐야
이미지 확대보기올해 1분기 두 외국계 은행의 기업금융 색채는 서로 다르게 나타났다.
SC제일은행은 총여신 43조7363억원 가운데 기업부문 총여신이 16조5062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7736억원 늘었다. 이 과정에서 기업여신 연체율이 전년대비 큰 폭으로 늘었다.
반면 한국씨티은행은 총여신과 기업부문 총여신이 모두 감소했지만, 전체 여신에서 기업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56%를 웃돈다. 개인금융 철수 이후 여신 총량을 키우기보다 기업 중심의 여신에 집중하는 구조가 지표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여신 규모 감소와 함께 연체율 역시 0.4%p가량 낮아졌다.
외국계은행의 생산적금융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국내 시중은행처럼 점포망과 대규모 원화대출 기반을 활용해 중소기업 대출을 일괄 확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외국계은행은 글로벌 본사의 자본배분과 리스크 한도, 수익성 기준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만큼 정책금융기관처럼 고위험 혁신기업 여신을 대규모로 떠안기 힘든 구조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생산적 금융의 성과를 평가할 때 외국계 은행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화대출 증가액만으로 역할을 판단하면 이들의 기여가 제대로 드러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생산적 금융을 추진한다고 해서 모든 은행에 똑같은 방식의 원화대출 확대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점으로 내세우는 만큼, 실제 국내 기업과 혁신기업 지원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 모니터링하는 측면”이라고 말했다.
SC제일은행, ‘크로스 보더’ 기업금융 지향
이미지 확대보기SC제일은행은 모기업인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크로스 보더(Cross-border) 기업금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SC그룹은 전 세계 54개 시장에서 구축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업의 해외 투자, 교역, 자금관리, 외환거래 등을 지원한다. SC제일은행은 이를 국내 기업고객에게 연결하는 창구 역할을 맡고 있다.
이는 국내 대출잔액을 단순히 늘리는 방식과는 결이 다르다. 국내 기업이 해외 생산기지를 세우거나 현지 기업과 거래를 확대할 때 필요한 것은 대출 한도만이 아니다. 현지 규제 이해, 외화 조달, 결제망, 환율 변동 대응, 공급망 금융, 글로벌 자금관리 등이 함께 필요하다. SC제일은행은 이 지점에서 외국계 은행의 강점을 부각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맞물리면서 기업들의 해외 금융 수요는 더 복잡해지고 있다. 단순 수출입 금융을 넘어 해외 법인 운영자금, 현지 통화 결제, 환헤지, 글로벌 현금관리까지 포괄하는 종합 기업금융 수요가 늘고 있다. SC제일은행 입장에서는 국내 기업의 해외사업을 지원하는 것이 곧 생산적 금융에 기여하는 방식이 되는 셈이다.
이미지 확대보기SC제일은행은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글로벌 경제 전망과 금융시장 흐름을 공유하는 행사도 꾸준히 열고 있다. 정기적으로 제공되는 글로벌 리서치 브리핑, 기업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Treasury Leadership Forum’ 등은 단순한 세미나를 넘어 국내 기업들이 해외 시장 변화와 금융 리스크를 점검하는 창구로 활용된다.
다만 금융당국은 SC제일은행의 역할 확대를 주문하고 있다. 이억원닫기
이억원기사 모아보기 금융위원장은 올해 3월 한국에 방문한 빌 윈터스 SC그룹 회장을 만나 생산적 금융 대전환 등 정부의 금융정책 방향을 공유하고, SC제일은행이 국내 혁신기업에 대한 기업금융 지원을 강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SC그룹 차원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도 당부했다.빌 윈터스 회장은 “한국은 SC그룹 글로벌 사업의 핵심 국가 중 하나로 한국 증시의 견고한 성장세와 향후 발전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다”며, “SC그룹은 앞으로도 한국 시장에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화답했다.
한국씨티은행, 수출기업 돕는 ‘코리아 데스크’ 운영
한국씨티은행은 개인금융 철수 이후 기업금융 중심 은행으로 정체성을 더욱 뚜렷하게 하고 있다. 씨티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국내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해외사업을 지원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모습이다.한국씨티은행의 강점은 기업금융 특화 조직이다. 기업고객에 대한 자금지원 결정, 정보 제공, 경영상담 등을 수행하는 전담 심사역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거래기업별로 전담 인력이 붙어 여수신과 외환거래, 무역금융 등 기업의 은행거래 전반을 관리한다. 의사결정 단계를 줄이고 기업 수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중견기업 대상 서비스도 생산적 금융과 맞닿아 있다. 매출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인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대출, 외환, 송금, 파생상품, 수출입금융, 현금관리, 종합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해외 진출 과정에서 자금조달과 리스크 관리가 동시에 필요한 기업에게는 글로벌 은행의 네트워크가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국외 ‘코리아 데스크’도 한국씨티은행의 차별화 요소다. 한국씨티은행은 1993년 미국 뉴욕에 첫 코리아데스크를 설립한 이후 유럽·중동·아시아 등 전 세계 주요 금융 거점에 코리아데스크를 구축하며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주요 시장에 한국인 직원을 배치해 현지 금융서비스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계좌를 개설하거나 운전자금을 조달하고, 현지 거래처와 결제망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한국어와 현지 금융환경을 함께 이해하는 창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지원 기능이 크다.
이미지 확대보기씨티은행의 기업금융은 대기업 중심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최근에는 중견기업과 성장기업의 해외사업 지원으로 역할이 확장될 여지도 있다. 국내 혁신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해 해외 매출을 늘리거나 글로벌 투자자를 유치하려 할 때 필요한 것은 국내 담보대출보다 글로벌 자본시장과 연결되는 금융 솔루션이다. 한국씨티은행이 생산적 금융에 기여할 수 있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이억원 위원장은 지난해 제인 프레이저 씨티그룹 최고경영자와의 면담에서 한국씨티은행의 국내 혁신기업 지원 확대를 요청했다. 부동산 등에 쏠린 시중 자금을 자본시장으로 유입시키고 기업 성장단계별 자금조달을 강화하는 생산적 금융 대전환을 추진 중인 만큼, 한국씨티은행과 씨티그룹 차원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장호성 한국금융신문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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