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현재 정부안에서 최고 90%로 정한 새출발기금의 지원 대상 채권의 원금 감면율을 50%로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나친 빚 탕감이 부실 차주를 양산하고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어서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이달 중 새출발기금의 세부 운영방안을 발표하고 9월 하순부터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앞서 주요 시중은행 여신 실무자들은 지난 2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 새출발기금 채무조정 실행 계획안’을 논의했다.
대상은 올해 6월 말 기준 금융권 만기 연장·이자 상환유예 지원을 받고 있거나 손실보상금 또는 소상공인 재난지원금을 수령한 개인사업자·소상공인이다.
거치 기간은 최대 1~3년으로 장기·분할 상환(최대 10∼20년)에 대출금리도 인하한다. 연체 90일 이상 부실 차주에 대해서는 원금을 60~90% 감면해준다.
정부는 부실 우려 차주에 대해 신용회복위원회 프로그램을 통해 채무조정을 하고, 금융사가 이 채무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새출발기금으로 해당 부실 채권을 매입해 채무조정을 할 계획이다.
정부안은 ‘부실 우려 차주’의 기준으로 ‘금융회사 채무 중 어느 하나의 연체 일수가 10일 이상 90일 미만인 자’로 제시했다. 열흘만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해도 채무조정 대상에 포함돼 연체 이자를 감면받고 금리도 감면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은행권은 채무조정 대상자 연체일 기준을 10일 이상으로 하면 고의로 상환을 미뤄 채무조정을 신청할 위험이 있을 것으로 보고 금융사의 요주의 대상 차주 요건과 동일한 ‘30일 이상 90일 미만’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또 금융사로부터 대출 만기 연장·상환 유예가 거절된 차주, 6개월 이상 장기 휴업자·폐업자, 개인신용점수 하위 20% 이하인 차주 등도 채무조정을 신청할 수 있어 대상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실 우려 차주는 새출발기금 이용정보를 바탕으로 신규 대출 실행·신용카드 발급 등 각종 금융 거래가 제한되는 ‘부실 차주’(연체 90일 이상 대출금 보유 차주)와 달리 은행 간 정보 공유도 불가능해 제도를 악용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금융사 부실 우려도 있다.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경우 상대적으로 조달금리가 높아 기존 연 7~8%였던 금리를 3~5% 수준까지 낮춰주면 역마진이 생겨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반발이 큰 상황이다.
금융위는 은행권 우려에 대해 “현행 채무조정 프로그램 및 새출발기금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발생한 잘못된 지적”이라고 반박했다.
우선 새출발기금이 과도한 원금감면으로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주장에 대해 “새출발기금을 통한 원금감면은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 이뤄지며 소득·재산이 충분한 차주는 원금감면을 받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금융위는 “현행 채무조정 프로그램과 동일하게 새출발기금은 상환능력을 상실해 90일 이상 장기 연체를 겪고 있는 금융채무불이행자에 해당하는 차주가 보유한 신용채무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이뤄진다”며 “담보가 있는 채무의 경우에는 연체가 90일을 넘어도 원금을 감면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해당 차주들은 새출발기금을 이용하더라도 금융채무불이행자 등록으로 신규 대출, 신용카드 이용 등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는 등 7년의 장기간 정상 금융거래를 할 수 없음을 고려할 때 상환능력이 있는 차주가 원금감면을 받기 위해 고의적인 연체를 통해 금융채무불이행자가 되고자 할 유인이 거의 없다고 금융위는 내다봤다.
금융위는 또 “60~80% 수준의 원금감면은 해당 차주가 보유한 재산을 초과한 과잉 부채분에 한해 제한적으로 이뤄지며 과잉부채 대비 소득이 높을수록 낮은 감면율을 적용하게 된다”고 밝혔다. 가령 부채가 1억원인 차주의 부동산·동산 등 자산이 1억5000만원이라면 원금감면을 받을 수 없다.
현행 채무조정 프로그램의 원금감면 한도와 평균 감면율을 고려할 때도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정도의 과도한 감면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금융위 측 주장이다. 현재 신복위 채무조정 프로그램의 원금감면 한도는 0~70%이고, 법원의 개인회생은 별도 제한이 없다. 평균 감면율은 신복위가 44~61%, 법원 개인회생이 60~66% 수준이다.
금융위는 원금 감면율 90%의 경우 기초생활수급자·중증장애인·만 70세 이상의 고령자 등 사실상 원금상환 여력이 없는 취약계층에 한해 적용되는 감면율로, 현재 신복위 워크아웃 제도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과 내용이 같다고 설명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새출발기금의 원금 감면율을 은행권 주장과 같이 10~50%로 축소할 경우, 이는 코로나 피해로 자금상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소상공인에 대해 기존 제도보다 원금감면을 축소하자는 주장으로 수용하기 어렵다”며 “기존의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통한 원금감면 시에는 그 손실을 은행권이 전액 부담하는 반면 새출발기금은 추경을 통해 편성된 재원에서 원금감면 손실을 부담한다”고 강조했다.
채무조정 대상자의 범위가 넓다는 지적에 대해선 “새출발기금의 적용 대상 차주의 범위는 현행 금융권 협의를 통해 논의 중인 사항으로 현재 결정된 바 없다”고 했다.
연체 이자 감면이나 대출금리 3~5%로 인하 등 혜택도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금융위는 “조정금리 수준도 결정된 바 없으며 새출발기금 시행 당시의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조달금리 및 시중금리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결정할 예정”이라며 “3~5% 금리는 차주의 도덕적 해이를 줄이고 조기 성실상환을 유도하기 위해 차주별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금리가 적용된다는 점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예시로 제시된 숫자”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원금감면 차주에 대해서는 현행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이용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새출발기금 이용정보를 기록·등록해 신규 금융거래가 제한되는 등 신용상 패널티가 부과된다”고 밝혔다.
은행들은 정부가 은행권에 ‘헐값 매각’을 강요한다는 불만도 제기하고 있다. 정부는 새출발기금 채무조정 프로그램 운영 대상 차주의 채권을 캠코 외 제3자에게 매각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사가 판단했을 때 재산이나 채무상환 능력이 있는 차주의 채권까지 낮은 가격으로 캠코에 강제 매각하라는 것은 금융기관에 일방적으로 손해를 전가하는 불공정 행위라는 지적이다. 캠코에서 정한 매각가에 금융사가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절차를 두는 등의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위는 이에 대해 “새출발기금 조정 대상 차주의 채권을 제3자에게 매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코로나 피해 자영업자·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위해 불가피하다”며 “금융회사가 새출발기금 적용 대상 차주의 채권을 새출발기금 협약대상기관이 아닌 제3자에게 매각하는 경우 해당 차주는 새출발기금 채무조정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새출발기금 적용 대상 차주에 대해서는 협약으로 금융회사의 제3자에 대한 채권매각을 제한함으로써, 차주들이 채무조정 지원을 받기 전에 대부업 등에 매각돼 채무조정의 기회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불가피해 금융권의 협조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채권 매입가격과 관련해선 “새출발기금은 지역신용보증재단 또는 금융회사 등 참여기관의 저가매각 우려가 없도록 회계법인의 가격결정 공식에 따라 산정된 시장가에 기반해 복수의 기관이 평가한 공정가치(fair value)를 통해 채권을 매입할 예정”이라며 “담보대출의 경우 담보물의 가치 등을 충분히 반영해 매입가격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예컨대 담보물의 가치가 채권원금의 100%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채권원금 이상의 가격으로 채권을 매입한다는 계획이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새출발기금 채무조정 과정에서 손해를 우려하고 있다.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들이 대출받으면서 지자체 산하 지역신용보증재단으로부터 보증을 받았는데, 새출발기금이 부실채권을 헐값에 사들이면 지역신보도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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