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10조원의 순이익을 곧바로 증권업 전체의 호황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시장이 좋아질수록 자본과 인력을 많이 보유한 대형사에 실적이 더 집중되는 ‘규모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가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단순히 ‘얼마나 많이 벌었느냐’가 아니다. 호황의 이익을 자본 확충과 인재 육성, 새로운 사업으로 연결해 대형사와 중소형사가 각자의 경쟁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증시 호황에 따른 거래대금 증가로 위탁매매(브로커리지) 수익이 크게 늘어난 데다 대형사들이 강점을 가진 WM과 트레이딩, 투자 부문에서도 실적 개선이 이어졌다. 특히 자기자본 규모가 큰 대형사일수록 시장 상승기에 투자와 운용에서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어 시장 호황이 규모의 격차를 실적 격차로 확대하는 구조가 나타났다.
문제는 이 같은 성장의 온기가 업계 전체로 얼마나 확산되고 있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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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격차가 보상의 격차를 만들고, 보상의 격차가 인재의 격차를 낳으며, 이는 다시 사업 기회와 실적의 격차로 이어지는 구조다. 단순한 규모의 차이를 넘어 증권업 내 ‘대형사 쏠림’이 구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황성엽닫기
황성엽기사 모아보기 금융투자협회장이 주목한 것은 역대급 실적 자체가 아니다. 신영증권 사장 출신인 황 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증권업 호황을 계기로 업계 전체의 경쟁력을 키우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황 회장은 “상반기 증권사들이 10조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등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적 기여와 상생에 대한 외부의 강한 압박과 기대가 공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황 회장이 특히 강조한 것은 호황의 결실이 일부 대형사에 머무르지 않고 업계 전체의 체력 강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는 “자본력과 영업력을 갖춘 대형사의 성과도 가치가 있지만, 업계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작지만 알찬’ 중소형 금융투자회사들에게도 제대로 된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말하는 ‘상생’은 대형사의 이익을 중소형사와 나누거나 중소형사를 일률적으로 보호하자는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각 회사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전문성을 확보하고, 그 전문성이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경쟁 환경을 만들자는 의미에 가깝다.
대형사가 자본력과 규모를 바탕으로 대형 프로젝트와 글로벌 사업을 확대한다면, 중소형사는 특정 산업이나 상품, 투자 분야에서 전문성을 확보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서로 다른 방식의 경쟁이 가능해야 금융투자업 전체의 경쟁도 살아날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 금융투자업은 회사마다 사업모델과 경쟁력이 크게 다르다. IB와 기업금융에 강점을 가진 회사가 있는가 하면 채권·대체투자·운용·WM 등 특정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회사도 있다. 규모는 작더라도 특정 영역에서 독보적인 전문성을 가진 회사가 성장할 수 있어야 금융투자업의 다양성과 혁신도 유지될 수 있다.
반대로 자본과 인재가 대형사로 계속 쏠리면 중소형사의 신규 사업 진출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문 인력 유출은 다시 사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경쟁력 약화는 실적과 보상 수준의 추가적인 격차로 연결될 수 있다.
특히 인력은 증권업 양극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대형 증권사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보상과 다양한 사업 기회를 제공하면서 우수 인력을 끌어들이고 있다. 황 회장이 최근 증권업계의 보수 수준을 언급하며 NH투자증권의 높은 급여 수준을 사례로 든 것도 결국 인재 확보 경쟁이 증권사의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형사의 높은 보상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성과에 따른 적절한 보상은 오히려 금융투자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요소다. 문제는 자본과 보상, 인력의 격차가 누적되면서 중소형사가 경쟁할 수 있는 기반 자체가 약해지는 구조다.
황 회장이 강조한 ‘작지만 알찬 금융투자회사’도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다. 회사의 외형을 무조건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각 회사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전문성을 확보하고, 그 전문성이 시장에서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증권업 호황이 던지는 질문은 ‘10조원의 이익을 누가 가져갔느냐’에서 끝나지 않는다. 호황으로 벌어들인 이익이 자본 확충과 인재 육성, 새로운 금융서비스 개발로 이어지고 다시 업계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과제다.
금융투자협회 역시 대형사의 자율적인 상생 노력을 유도하는 동시에 중소형 금융투자회사들이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과 규제 완화 건의 등을 통해 성장 기반을 넓히는 데 힘을 싣는다는 방침이다.
이는 대형사의 성장을 억누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형사는 자본력과 규모를 바탕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고, 강소 금융투자회사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는 구조가 바람직하다는 의미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경쟁력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상반기 10조원의 순이익은 한국 증권업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숫자다. 그러나 몇몇 대형사의 실적만으로 업계의 경쟁력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금융투자회사가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공존하고 성장할 수 있는 시장에서 비로소 금융투자업 전체의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결국 이번 호황의 진짜 성적표는 얼마나 많이 벌었느냐가 아니라, 벌어들인 이익이 자본 확충과 인재 육성, 새로운 사업과 서비스로 이어져 증권업 전체의 경쟁력을 얼마나 끌어올렸느냐에 달려 있다.
10조원의 이익을 ‘실적 잔치’로 끝낼 것인지, 한국 증권업의 다음 10년을 위한 체력으로 바꿀 것인지. 지금 증권가가 고민해야 할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김희일 한국금융신문 기자 heuyil@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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