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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전략 이론가 이건희 신경영 30년

기사입력 : 2023-10-25 06:00

(최종수정 2023-10-25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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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스마트폰 초일류 지위 선점 성공
미래 준비 선구안·품질경영 성장 동력

2011년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선진제품 비교전시회에 참석한 모습./사진제공=삼성이미지 확대보기
2011년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선진제품 비교전시회에 참석한 모습./사진제공=삼성
[한국금융신문 김형일 기자] “고 이건희 선대회장이 없었다면 삼성이 반도체·전자기기가 아닌 국수를 팔고 있지 않았을까”

25일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3주기를 맞은 가운데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진행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로저 마틴 캐나다 토론토대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을 전략 이론가로 평가하며 이같이 언급했다.

마틴 교수는 “이 선대회장은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발굴하고 발명했고 과거에 묶여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단한 전략 이론가였다”며 “이 선대회장은 삼성이 잘하지 못했던 분야에서 초일류 지위를 선점하겠다고 공언했고 반도체‧스마트폰 등 사업에서 공언한 목표를 실제로 이뤄내며 증명했다”고 덧붙였다.

올해는 이 선대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하고 본격적인 경영 혁신에 나선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그가 기업 성장을 위한 개혁을 위해 “마누라, 자식 빼놓고 다 바꿔봐”라고 말한 것은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양보다 질을 강조하며 그가 남긴 이 말은 유력 인사들은 중대한 결심이 섰을 때, 의지를 피력할 때 인용될 정도다.

고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왼쪽)과 고 이건희 선대회장의 모습./사진제공=삼성이미지 확대보기
고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왼쪽)과 고 이건희 선대회장의 모습./사진제공=삼성
◇ 반도체로 미래를 준비한 선구자

이 선대회장은 국가 핵심 산업인 반도체를 일으킨 주역이다. 그가 1974년 고 이병철 창업회장에게 반도체 사업을 제안한 일화는 유명하다. 동양방송 이사였던 이 선대회장은 그해 12월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했다. 한국반도체는 1978년 삼성반도체로 상호를 변경했으며 1980년 삼성전자 내 반도체 사업부로 흡수합병됐다.

그의 결단은 성과로 이어졌다. 1983년 12월 64K D램 개발에 성공한 후 1992년 64MB D램, 1996년 1GB D램, 2002년 9나노(nm) NAND flash, 2005년 더블데이터레이트(DDR)3 SD램, 2010년 30나노(nm) 2GB DDR3 D램, 2019년 10나노 8GB DDR4 D램 업계 최초 개발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64K D램 개발에 성공한 이듬해 D램 반도체 가격은 3달러 50센트에서 50센트까지 떨어졌다. 당시 제조원가가 1달러 70센트였던 점을 고려하면 손해가 극심했다. 그 결과 1985년 428억원의 적자가 발생했으며 1986년과 1987년에도 역성장을 기록해 누적 적자는 1159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이 선대회장은 반도체 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도시바 등 일본 기업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8인치 웨이퍼 생산시설' 구축에 나섰으며 고용량 반도체 생산을 위해 스택형 적층 방식을 채택했다. 그의 도전은 옳았다. 스택으로 설계하고 8인치 웨이퍼를 적용해 양산한 16MB D램은 1993년 삼성전자를 메모리 반도체 분야 세계 1위로 만들었다.
201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가전전시회(CES)에 참석한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모습./사진제공=삼성 이미지 확대보기
201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가전전시회(CES)에 참석한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모습./사진제공=삼성
◇ 품질경영으로 초일류기업 발돋움

이 선대회장은 삼성전자를 초일류기업 반열에 올리기 위해 품질경영을 강조했다. 대표적인 정책은 공장의 한 라인에서 불량 제품이 나오면 아예 라인 전체를 멈추는 ‘라인 스톱’ 제도로 삼성전자는 이를 바탕으로 1993년 불량률을 전년 대비 두 자릿수로 개선했다.

1995년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서 진행된 ‘애니콜 화형식’은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애니콜 불량률이 12%에 달하자 ‘100% 양품만 만들겠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걸도록 하고 2000여명의 직원들에게 ‘품질은 자존심’이라고 쓴 띠를 두르게 했다. 또 휴대전화, 무선전화기, 팩스 불량품 15만대(약 500억원)를 직원들이 망치로 부수고 기름을 뿌려 불태우게 했다.

특히 당시 이 선대회장은 "휴대폰 품질에 신경을 쓰십시오. 고객이 두렵지 않습니까? 비싼 휴대폰, 고장나면 누가 사겠습니까? 반드시 1명 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옵니다. 전화기를 중시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직원들을 일깨웠다.

애니콜 화형식 약 5개월 후 삼성전자 애니콜 국내 시장점유율은 51.5%를 기록하며 국내 정상을 차지했으며 불량률은 2%대까지 떨어졌다. 2009년에는 전 세계 휴대폰 시장점유율 1위인 노키아를 바짝 쫓기 시작했으며 2012년에는 노키아를 앞지르고 세계 최고의 휴대폰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2011년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선진제품 비교전시회에 참석한 모습./사진제공=삼성이미지 확대보기
2011년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선진제품 비교전시회에 참석한 모습./사진제공=삼성
◇ 변화‧혁신 위한 채찍 위기론

이 선대회장은 줄곧 위기론을 꺼내들었다. 2010년에도 그는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당시 국내에 애플 아이폰이 본격적으로 판매됐지만, 삼성 옴니아 시리즈는 무늬만 스마트폰이라는 혹평을 들었다. 이에 이 선대회장은 2010년 그는 갤럭시S 판매량을 100만대까지 끌어올리라고 주문했으며 갤럭시S는 국내 출시 70일 만에 판매량 100만대, 글로벌 출시 7개월 만에 1000만대를 돌파하는 등 기염을 토했다.

2013년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을 때도 이 선대회장은 "앞으로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듬해에도 그는 “위기의식 속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분발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러한 이 선대회장의 위기론은 삼성전자를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됐다. 1993년 자산 41원, 매출 28조 원이던 삼성전자는 지난해 기준 자산 448조원, 매출 302조원으로 도약했다.

김형일 기자 ktripod4@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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