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은 15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지난주 금감원으로부터 통지받은 라임 펀드 관련 분조위 결정을 수용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은행권에서 손실이 확정되지 않은 라임펀드와 관련해 사후정산방식의 손해배상에 나서는 것은 우리은행이 처음이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달 분조위를 열고 우리은행이 판매했던 라임펀드에 대해 기본배상 비율을 55%로 결정하고 투자자별로 비율을 가감 조정해 40∼80%를 배상하도록 권고했다. 분조위에 부의된 우리은행 라임펀드 투자자 2명에 대한 은행의 배상비율은 65%~78%로 결정했다.
우리은행은 이들 고객에게 즉각 배상금을 지급하고 나머지 가입 고객들에게도 자율조정을 확대 적용해 배상을 추진하기로 했다.
펀드는 원칙적으로 환매나 청산으로 손해가 확정돼야 손해배상을 할 수 있다. 금감원은 신속한 피해구제를 위해 손해액이 확정되기 전 판매사와 사전 합의를 거쳐 추정 손해액을 기준으로 분쟁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지난해 말 KB증권이 처음으로 손해 미확정 라임 펀드의 분쟁조정을 진행했고 지난달에는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 대한 분조위가 열렸다.
이들 은행이 라임펀드 피해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금감원 제재심에 대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금감원은 대규모 환매중단 사태를 일으킨 라임펀드를 판매한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에 대해 제재 절차를 진행 중이다. 지난달 25일 첫 제재심이 열렸고 오는 18일 2차 회의가 예정돼있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은 라임 펀드를 각각 3577억원, 2769억원어치 판매했다. 금감원은 이 과정에서 내부통제 부실, 부당 권유 등의 책임을 물어 라임 펀드 판매 당시 우리은행장이었던 손태승닫기손태승기사 모아보기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직무 정지 상당을, 진옥동닫기진옥동기사 모아보기 신한은행장에게 문책 경고를 각각 사전 통보했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 수위는 해임 권고·직무 정지·문책 경고·주의적 경고·주의 등 5단계로 나뉜다. 이 중 문책 경고 이상은 3~5년 금융사 취업이 제한되는 중징계다. 중징계가 확정되면 손 회장과 진 행장은 연임이 불가능해진다.
단 피해구제 노력을 인정받으면 징계가 감경될 여지가 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5월 ‘금융기관 검사·제재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을 개정하면서 ‘금융거래자의 피해에 대한 충분한 배상 등 피해 회복 노력 여부’를 제재 양정 때 참작할 사유에 포함했다.
이에 따라 손 회장과 진 행장에 대한 중징계 수위가 낮아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는 지난 25일 우리은행 제재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우리은행의 소비자 보호 조치와 피해구제 노력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소보처는 우리은행이 금감원 분쟁조정안 수락, 손실 미확정 펀드의 분조위 개최 동의 등 라임 펀드 사태 피해 수습을 위해 노력했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제재심 위원들은 소보처 의견을 고려해 징계수위를 결정할 수 있다. 김도진닫기김도진기사 모아보기 전 기업은행장은 라임 펀드 판매를 주도한 책임으로 문책 경고 중징계를 사전 통보받았다가 지난달 5일 제재심에서 경징계에 해당하는 주의적 경고 상당으로 한 단계 경감받았다. 당시 기업은행은 제재심에서 피해자 구제 노력을 적극 소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KB증권도 금감원의 라임 펀드 분쟁조정안을 수용한 후 제재심에서 박정림 대표 징계 수위가 사전 통보받은 직무 정지에서 문책 경고로 낮아졌다.
일각에서는 CEO 중징계 강행이 금감원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중징계가 확정되면 금융당국과 CEO들 간 소송전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CEO 중징계에 대한 법적 근거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손 회장은 지난해 1월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금감원으로부터 문책경고를 받자 행정소송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중징계 확정 시 신사업과 인수합병(M&A) 등 경영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은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금융당국의 징계는 법제처와 법원의 기본입장인 ‘명확성의 원칙’과 비교적 거리가 있어 보인다”며 “금융권의 예측을 어렵게 하고 불확실성을 키워 은행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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