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서울의 지역자산은 과거의 흔적에만 머물지 않는다. 역사와 문화는 지역의 정체성이 되고, 잘 보존된 공간은 관광과 교육·일자리와 도시재생 등 새로운 지역발전의 기반이 될 수 있다. 한국금융신문은 이번 기획에서 서울 10개 자치구를 찾아간다. 지역의 유산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으며, 주민과 행정은 이를 미래의 가치로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 현장에서 살펴본다. 과거를 보존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가 미래의 자산이 되는 서울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지난달 16일 오후 4시께 찾은 서울 관악구 낙성대공원. 고려 명장 강감찬 장군의 이름을 내건 축제 현장에는 전통문화의 흔적과 새로운 10년을 향한 기대가 공존했다.
축제장 입구에는 강감찬 장군을 형상화한 대형 캐릭터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았다. 장군의 이름을 내건 축제임을 한눈에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장군의 이름을 내건 행사가 단순한 역사 재현에 그치지 않고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으려는 모습도 엿보였다.
행사장 곳곳에서는 축제 첫날인 탓인지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먹거리 장터와 체험 공간, 공연장이 차례로 모습을 갖추며 사흘간 이어질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가장 먼저 발길을 옮긴 곳은 낙성꽃뜰정원이었다. 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장미원, 어린이 놀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전망데크에 오르자 관악산의 능선이 시야에 들어왔다. 축제장이 아니더라도 천천히 걸으며 쉬어가기 좋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문화축제가 공원이라는 일상적인 공간과 만나면서 시민들이 문화와 휴식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점은 눈길을 끌었다.
정원에서는 ‘강감찬의 후예: 국궁에 꽂히다’ 체험도 진행됐다. 참가자에게 활쏘기 방법을 설명한 뒤 직접 체험하도록 구성한 프로그램이다. 고려시대 장군의 무용과 전략을 오늘날의 체험 콘텐츠로 풀어내려는 시도다. 강감찬이라는 인물을 책이나 전시로만 접하는 대신 몸으로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역사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방식이었다.
낙성대공원 열린마당의 고려장터는 상대적으로 활기를 띠었다. 장군의 철판고기빵과 불멸의 꼬치빵을 비롯해 탕수육·돈까스·육전·닭강정 등 다양한 먹거리가 방문객을 기다렸다. 관악구에 따르면, 이날 약 12개 가게가 마련한 메뉴는 전통문화 행사에 먹거리 장터의 매력을 더했다. 축제의 의미를 되새기러 온 시민뿐 아니라 음식과 나들이를 즐기려는 방문객도 관심을 가질 만한 공간이었다.
전통문화 프로그램도 축제의 의미를 더했다. 인헌 휘호대회에서는 붓글씨를 통해 전통문화의 멋을 나눴고, 국악 공연은 현장에 고유한 분위기를 더했다. 대형 무대와 현대적인 공연뿐 아니라 전통예술을 함께 배치해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지닌 가치를 다채롭게 전달했다.
이날 축제 현장에서 만난 방문객 구성도 눈에 띄었다. 당시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은 어르신이 대부분이었다. 체감상 방문객의 약 90%가 어르신으로 보였지만, 이는 특정 시간대 현장에서 받은 인상으로 전체 축제 방문객의 연령 분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설민석의 역사 토크쇼와 정재승 교수 강연, 가수 공연 등 주요 프로그램이 진행되기 전이었던 만큼 시간대에 따른 차이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만난 부녀 두 사람에게서 설문 참여를 받을 수 있었다. 이들은 관악구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낙성대와 강감찬 동상을 꼽았다. 그들은 “역사가 담긴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홍보와 축제, 행사 등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야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실제로 이번 축제는 전통문화의 맥을 잇는 프로그램이 다채롭게 계획되면서 행사의 정체성을 보여줬다. 인헌 휘호대회에서는 붓글씨를 통해 전통문화를 접할 수 있었고, 국악 공연은 현장에 고유한 분위기를 더했다. 화려한 무대나 대규모 체험시설과는 다른 방식으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전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축제의 배경인 낙성대는 강감찬 장군의 탄생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큰 별이 떨어진 뒤 장군이 태어났다는 이야기에서 이름을 얻은 낙성대는 지역의 역사적 상징성을 품고 있다. 강감찬 장군은 거란의 침입을 물리친 귀주대첩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려의 국방을 지키고 대외 관계 안정에 기여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의 이름을 지역 축제와 연결한 의미도 분명하다.
관악강감찬축제는 1998년부터 이어진 ‘관악산 철쭉제’와 1988년부터 열린 추모제향 ‘낙성대 인헌제’를 통합해 2016년 출범했다. 2024년 1월에는 서울시 축제 가운데 유일하게 문화체육관광부 예비 문화관광축제로 지정됐다고 한다. 지역 전통행사를 기반으로 출발한 축제가 10년 동안 역사문화 콘텐츠로 외연을 넓혀온 셈이다.
올해 프로그램도 역사와 현재를 잇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고려 이야기꾼과 강감찬 장군의 탄생과 업적을 살펴보고 별을 관측하는 ‘낙성대 야별회’는 역사와 천문학을 결합했다. 관악구 21개 동의 이야기를 담은 ‘21 동네 한 바퀴’와 고려시대 국제 무역항 벽란도를 재현한 ‘벽란도21’은 주민 참여와 역사 체험을 연결하는 프로그램이다. 강감찬 장군의 전략과 리더십을 놀이로 경험하는 ‘별별놀이터’도 역사적 인물을 친숙하게 만날 수 있도록 기획됐다.
청년과 미래를 내세운 구성 역시 올해 축제의 특징이다. 첫날에는 서울 소재 5개 대학 동아리와 다이나믹듀오, 래퍼 신스가 참여하는 ‘청년드림콘서트’가 진행됐다. 이후에는 ▲강감찬 토크쇼·퀴즈쇼 ▲생성형 인공지능(AI) 영상 콘텐츠 공모전 ▲10주년 기념 특별공연 시민풍류제 생활예술페스티벌 등이 진행됐다. 프로그램만 살펴봐도 역사와 공연예술·기술·주민 문화활동이 합쳐지면서 단순히 즐기는 파티가 아닌 교육과 공동체로 범위를 넓히려는 구상을 엿볼수 있다.
축제의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다음 10년을 모색하는 학술대회도 열렸다. ‘지나봄, 내다봄’을 주제로 역사·문화·지역상생의 관점에서 축제의 사회·경제적 가치와 발전 방향을 논의했다. 관악문화재단은 강감찬 장군의 역사적 가치를 시민 참여와 문화예술로 이어온 성과를 바탕으로 축제를 대한민국 대표 역사문화축제로 발전시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역사적 인물을 지역의 상징으로 세우고, 그 정신을 시민들이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축제로 확장하려는 시도는 의미가 있다. 첫날 특정 시간대의 모습만으로 사흘간 축제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현장에서 확인한 축제는 과거 감강찬의 모습을 떠올리기 충분했다.
강감찬 장군의 호국정신을 오늘의 지역 정체성으로 잇는 일은 한 번의 행사로 완성되지 않는다. 낙성대라는 역사적 공간을 바탕으로 시민 참여를 넓히고, 세대별 방문객이 각자의 방식으로 역사를 경험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다듬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10주년을 맞은 관악강감찬축제가 지난 성과를 발판 삼아 다음 10년을 준비하는 축제로 성장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주현태 한국금융신문 기자 gun1313@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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