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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은행의 30분을 탓하기 전에

기사입력 : 2026-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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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부터 시작된 변화, 사회 확산 계기 돼야
취약계층 배려 등 은행 차원 보완 병행 필요

▲ 장호성 기자
▲ 장호성 기자
[한국금융신문 장호성 기자] 지난 6일 극적으로 체결된 금융노사간의 합의에서는 내년 4월부터 은행의 영업시간을 30분 단축하는 내용이 담겼다. 영업 종료 시간은 오후 4시로 유지하되, 개점 시간을 9시 30분으로 미뤄 대면영업을 6시간 30분까지 줄이는 것이 골자다.

오전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하는 직장인에게 은행 방문은 이전부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점심시간에 다녀오려고 해도 사람이 몰려 대기시간이 늘어지는데다, 준비할 서류가 많거나 상담이 길어지는 업무를 봐야 한다면 결국 반차까지 고민해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은행원들이 받는 거액의 성과급과 연봉을 거론하며 ‘고객 불편은 외면한 채 자신들의 이득만 챙긴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아무리 비대면채널이 활성화되는 추세라고 해도 어플리케이션 활용이 익숙치않은 금융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모두 일견 타당한 지적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어차피 30분 줄어드나 마나 직장인의 반차사용 여부에는 큰 변화는 없다. 그러나 모바일뱅킹에 익숙하지 않거나 대면 설명이 필요한 고객의 선택지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 이들의 불편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대책을 마련할 책임은 여전히 은행에 있다.

그러나 여기서 곧바로 노동시간 단축을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넘어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직원 한 사람이 일하는 시간과 고객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어떻게 설계할지는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소비자 편의와 노동자의 휴식을 어느 한쪽만 선택해야 하는 문제로 만들면, 영업 방식과 인력 운영을 개선할 논의는 시작하기도 어렵다.

은행은 지역별·시간대별 창구 수요를 살펴 탄력점포와 교대근무를 어떻게 활용할지 검토해야 한다. 직장인이 이용할 수 있는 시간대에 상담을 제공하고, 예약 고객에게 필요한 서류와 처리 가능 업무를 미리 안내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 고령 고객을 위한 대면 지원도 함께 갖춰야 한다. 문을 여는 시간뿐 아니라 고객이 몇 번 방문해야 하는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까지 살펴야 실질적인 편의 개선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비용과 인력을 확보하는 일은 경영진의 몫이다. 남은 직원에게 업무를 몰아주거나 일부 점포 직원의 초과근무로 공백을 메운다면 노동시간 단축의 취지는 약해진다. 영업시간 조정 이후 실제 출퇴근 시간과 업무 부담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고객의 불편을 줄이는 일과 직원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일을 함께 경영 과제로 삼아야 한다.

은행부터 근무시간을 줄이는 데 대한 거부감에는 업권 간 격차에 대한 문제의식도 담겨 있다.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나 하루 매출을 걱정하는 자영업자에게 은행권의 변화가 멀게 느껴질 수 있다. 상대적으로 여건이 나은 업권이 먼저 혜택을 누린다는 시선 역시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여건이 어려운 곳이 많다는 이유로 먼저 움직일 수 있는 곳까지 멈춰 세워야 할까. 모든 사업장이 동시에 같은 수준의 노동시간 단축을 시행할 수는 없다.

인력과 시스템을 조정할 여력이 있는 은행 같은 대형 사업장이 먼저 시도하고,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면서 실제 근무시간을 줄일 방법을 보여준다면 다른 업권이 참고할 경험을 만들 수 있다.

돌이켜보면 은행권은 주 5일제 도입에서도 한발 앞서 움직였다. 법에 따른 단계적 시행이 시작된 2004년 7월보다 2년 이른 2002년 7월, 노사 합의로 토요일 휴무를 도입했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변화에 은행권이 먼저 나선 전례가 있는 셈이다.

기자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노동시간 개혁의 성과가 은행 안에만 머물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어떤 업무를 줄였고 인력을 어떻게 배치했는지, 고객 불편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보완했는지 성과와 한계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업권도 각자의 사정에 맞는 방식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인력과 비용 부담 때문에 변화를 시도하기 어려운 사업장을 위한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 확산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노동시간을 바라보는 시선도 돌아볼 때다. 우리는 일을 조금 덜 하겠다는 요구에 쉽게 나태함이나 특혜라는 평가를 붙인다. 꼭 눈에 실핏줄이 터질 때까지, 과로로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갈 때까지, 퇴근 뒤에는 다른 일을 할 기력조차 남지 않아야 충분히 성실하게 살았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일터에 오래 머무는 시간만으로 노동의 가치와 책임감을 판단할 수는 없다.

은행을 이용하는 고객도 자신의 일터에서는 노동자다. 은행에 갈 시간을 내기 어려운 직장인의 사정과 일상에 쓸 시간을 돌려받고 싶은 은행원의 요구는 서로 맞닿아 있다. 더 많은 사람이 근무시간을 조정하거나 줄일 수 있게 된다면,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반차부터 고민하는 현실을 바꿀 가능성도 커진다.

은행은 소비자가 무조건 불편을 감수해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소비자의 불편을 이유로 노동시간 단축의 가능성까지 닫아버려서도 안 된다.

은행에서 시작한 변화가 다른 일터의 변화를 재촉하고, 그 변화가 다시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여유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 은행의 30분을 탓하기 전에, 더 많은 사람의 하루에 여유를 만들 방법을 함께 고민할 때다.

장호성 한국금융신문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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