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23일 전국금속노동조합 한화오션 지회와 HD현대중공업 지부는 서울 중구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조선소 노동자는 왜 고공에 올랐는가' 합동 기자간담회를 열고 고공농성에 이르게 된 배경과 노조 입장을 밝혔다.
이날 현장엔 이태현 금속노조 부위원장(조선업종노조연대 공동의장), 양병효 금속노조 경남지부 한화오션지회 사무장, 유영남 한화오션지회 대외협력실장, 허중혁 금속노조 HD현대중공업지부 부지부장 등이 참석했다. 사회는 김범진 금속노조 정책국장이 맡았다.
실적은 2배, 인건비 비중은 하락…"4년 전과 달라진 것 없어"
노조가 고공농성의 배경으로 가장 먼저 꺼낸 것은 '성장과 분배의 불균형'이다. 이태현 부위원장은 2022년 여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들의 51일간 파업을 거론했다. 당시 "이대로 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라는 구호와 함께 20년 차 용접공의 임금이 최저임금 수준이라는 현실이 알려졌지만, 4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이태현 부위원장은 "조선업은 사상 최고의 실적을 내고 있고, 선박 건조 기술은 대한민국의 자랑이자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도 핵심 열쇠가 될 만큼 위상이 높아졌다"며 "이러한 경제적 성장에도 조선소 노동자들의 삶은 4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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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하락세다다.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의 인건비 비중은 2021년 14%대에서 올해 9월 기준 7%대로, 한화오션은 2022년 17%대에서 11% 수준으로 떨어졌다. 2014년 제조업 평균보다 22.1% 높았던 조선업 임금은 2024년 기준 9.7% 높은 수준에 그쳤다.
김범진 정책국장은 "한화오션이든 HD현대중공업이든 호황으로 매출액이 계속 올라가고 있는데도 인건비 수준은 매출액 대비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인력 구조도 문제로 꼽혔다. 조선소 생산직 평균 연령은 50세로, 청년들이 저임금과 잦은 산재, 고용불안 탓에 조선소를 기피하고 그 빈자리를 저임금 이주노동자가 채우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화오션의 경우 2024년 정년퇴직자는 114명이었지만 현장 신규채용은 44명에 그쳤다. 지난해에도 193명이 정년퇴직했지만 채용은 55명이었다.
김범진 정책국장은 "조선소가 신규 인력을 계속 충원한다고 하지만 대부분 현장 인력이 아니라 관리 인력"이라며 "나머지는 이주노동자와 하청노동자로 채우고 있는 불합리한 현실이 이 호황의 그늘"이라고 말했다.
이미지 확대보기한화오션, '간보기' 제시안에 고공으로…"쟁점은 임금보다 제도"
한화오션지회는 지난 6월 4일 첫 교섭을 시작한 이후 전날까지 본교섭과 실무교섭을 합쳐 29차례 교섭을 진행했다. 회사는 9월 8일과 17일, 10월 8일 세 차례 제시안을 내놨지만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노조는 제시안이 나온 과정 자체를 문제 삼았다. 쟁의권을 확보하자 1차안이 나왔고, 투쟁 수위를 높일 때마다 2차안과 3차안이 뒤따랐다는 것이다. 3차 제시안이 나온 날은 김유철 지회장이 크레인에 오른 날이기도 하다.
양병효 사무장은 "회사가 노동조합 요구에 진정성 있는 제시안을 내놓기보다 현장의 여론과 노동조합의 투쟁 강도, 동종사 눈치 보기 등 우롱에 가까운 교섭 태도로 지회장을 크레인 점거라는 극단적인 고공농성으로 내몬 원인 제공자"라고 비판했다.
유영남 대외협력실장도 "결국 현장과 조합원들을 간보기식으로 몰아가는 회사의 태도가 고공농성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형태로 교섭을 이끌어왔다"며 "고공농성의 원인 제공자는 회사이고, 이후 모든 책임 또한 회사가 져야 한다"고 말했다.
쟁점은 임금과 제도개선 두 갈래로 좁혀졌다. 노조는 사상 최대 실적에 걸맞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회사의 3차 제시안은 기본급 인상과 일시금 형태로 요구 수준에 못 미친다는 입장이다. 다만 노조가 무게를 두는 쪽은 임금보다 제도개선이다.
핵심은 성과급 제도다. RSU 방식으로 지급되는 한화오션 성과급은 지난해 노사 합의로 도입돼 지난 2월 처음 지급됐다. 이는 회사가 충당금 등을 먼저 빼고 남은 재원을 기준으로 지급하는 구조로, 노조는 무엇을 얼마나, 왜 제외했는지 공개되지 않아 지급 기준을 알 수 없는 '깜깜이' 제도라고 설명했다.
김범진 정책국장은 "다른 사업장은 영업이익을 보고 올해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지만, 한화오션은 충당금 같은 것을 빼면서 어떤 이유로 얼마를 뺐는지 알 수가 없다"며 "더 달라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알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는 제도로 민주적으로 운영하라는 요구"라고 설명했다. 다만 한화오션은 교섭 석상에서 마무리하기는 어렵다며 태스크포스(TF)를 꾸려 12월 말까지 합의하자는 입장이다.
정년 후 촉탁 제도도 쟁점이다. 노조는 현재 1년인 촉탁 기간을 2년으로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년연장이 1969년생 이후부터 적용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1966~1968년생 약 1000명이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이유에서다.
노조는 회사가 촉탁 대상을 일방적으로 선별하면서 노무관리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영남 대외협력실장은 "회사에 잘 보이는 사람이 촉탁이 되다 보니 줄서기가 되고, 인력관리·노무관리의 하나의 수단으로 촉탁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며 "정년연장이 도입되면 길게 갈 제도가 아니라 회사가 경제적으로 크게 부담할 내용도 아닌데 전혀 접근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 등 다른 금속 사업장은 건강상 문제가 없으면 사실상 희망자 전원을 촉탁으로 채용하고 있다.
이 밖에 노조는 산재 사고를 당한 작업자를 사고 원인 제공자로 지목해 징계하는 관행을 막기 위해 징계·조사위원회를 노사 동수로 구성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국정감사와 고용노동부에서도 문제가 지적됐지만 시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회사는 인사권을 이유로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이다.
양병효 사무장은 "불황기 때 임금 동결과 복지 축소 등 고통을 감내했던 만큼, 초호황기의 엄청난 실적 개선을 이룬 당사자로서 정당하고 합당한 임금과 불합리한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고공농성 등 투쟁을 멈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미지 확대보기HD현대중공업·HD현대미포 통합 교섭 2차 잠정합의…안전·이주노동 숙제 그대로
HD현대중공업지부는 지난 6월 2일 상견례 이후 약 120일 동안 26차례 교섭을 이어왔다. 올해 교섭은 지난해 12월 1일 HD현대미포 합병에 따라 미포위원회와 현대중공업지부가 하나의 단체협약을 만드는 통합 교섭이었다.지난 2일 1차 잠정합의안이 52% 반대로 부결되자 김동하 지부장은 책임을 지고 18일 타워크레인에 올랐다. 농성 5일째부터 집중교섭이 열렸고, 전날 쟁점을 좁히면서 이날 2차 잠정합의안이 마련됐다.
막판 쟁점은 정년연장에 따른 퇴직금 중간정산 시기였다. 현대중공업은 3개월, 미포는 6개월로 기준이 달라 현대중공업 기준에 맞추면 미포 조합원의 조건이 낮아지는 문제가 있었다. 노사는 중간정산 시기를 4개월로 정하고 기본급 1개월분과 퇴직 연도 부부 종합검진을 더하는 방식으로 합의했다. 노조는 전체 119개 조항과 별도합의 12개 조항 가운데 63개 항목을 상향 평준화했다고 설명했다.
허중혁 부지부장은 첫 잠정합의안 부결이 해마다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 높은 노동강도와 불황기의 기억을 꼽았다. 그는 "현대중공업은 노동강도가 타 사업장에 비해 상당히 높아 조합원들의 임단협 관심이 상당히 높다"며 "10년 동안 조선업 불황기에 희망퇴직과 구조조정을 몸으로 부딪치며 지금의 호황기를 맞았기 때문에 그 시기에 대한 보상이 필요한데, 1차 안에서는 그 보상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의 논리도 비판했다. 허중혁 부지부장은 "노동조합의 강력한 반대에도 인적분할과 물적분할을 통과시켰고 희망퇴직과 구조조정을 강행했으며, 그 고통은 오로지 현장 노동자의 몫이었다"며 "불황 때는 호황이 오면 충분히 보상할 테니 믿어달라고 하고, 호황이 와서 임금을 요구하니 불황에 대비해 다시 준비하자는 핑계를 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 안전 문제도 고공농성의 배경으로 꼽힌다. 최근 HD현대중공업에서는 중대재해 5건이 잇따랐다. 허중혁 부지부장은 "작업 표준에 나와 있는 2인 1조 작업을 지키지 않았고, 이주노동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안전 표지판만 있었어도 현대중공업 현장에서 노동자의 죽음은 없었다"며 이를 "위험의 외주화와 이주화가 부른 기업 살인"이라고 규정했다.
2차 잠정합의에도 일부 문제에 대한 해결이 추가로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이 직접 고용한 이주노동자의 근로계약을 갱신하면서 성과금과 계약비, 식비 등을 깎는 계약안을 내놓은 문제는 일부만 해결됐고, 11월 재계약을 앞두고 고용불안이 남아 있다. 하청노조의 원청교섭은 6월 19일 상견례 이후 실질적인 교섭이 열리지 않고 있다. 노조가 원청교섭 플랫폼과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룰 협의체를 요구했지만, 구체적인 논의 방식은 정해지지 않았다.
노조가 요구한 '영업이익 30% 성과배분'도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허중혁 부지부장은 "영업이익 30%를 성과 분배하라는 것은 정규직 노동자만이 아니라 현대중공업 생산에 참여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분배해 지역 경제를 살리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2차 잠정합의안은 대의원 설명회를 거쳐 오는 26일 조합원 찬반투표에 부쳐진다.
한화오션·HD현대삼호 임단협 미타결…"조선업은 사람이 있어야 지킨다"
금속노조 조선 사업장 가운데 올해 임단협을 마무리하지 못한 곳은 한화오션과 목포의 HD현대삼호 두 곳이다. 나머지 6곳은 타결됐다. HD현대중공업지부도 교섭이 마무리되더라도 미타결 사업장 투쟁에 연대하겠다는 방침이다.허중혁 부지부장은 "이번 교섭이 마무리되더라도 아직 끝나지 않은 단체협약 투쟁에 함께 연대해 김유철 지회장이 빨리 건강을 회복하고 내려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노조는 이번 고공농성을 개별 사업장의 임금 문제를 넘어 조선업 지속가능성의 문제로 봐달라고 했다. 이태현 부위원장은 "대형 조선사 3곳이 주목받고 있지만 중형조선소도 마찬가지로 신규 인력 구하기가 힘든 상황"이며 "모든 조선소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하고 안전한 일터가 보장돼야 청년들이 다시 조선소로 돌아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병효 사무장은 미국 조선업 사례를 들었다. 그는 "미국 조선산업이 왜 무너졌느냐 하면 50년대 이후로 투자를 하지 않아 이미 사람이 없는 것"이라며 "다행히 우리나라는 잠수함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지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갖고 있는데, 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사람이 있어야 하고 양질의 일자리가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구조가 되지 않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하청과 이주노동이 더 고착화되고 저임금에 계속 시달릴 수밖에 없다"며 "조선산업이 사양산업이 아니라 보존산업이라면 그에 걸맞은 정책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진아 한국금융신문 기자 urzinnie@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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