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코스피 시가총액 100대 기업 가운데 금융사 등을 제외한 74개 기업을 살펴봤더니 67곳이 최근 4년내 새로운 CEO를 선임했다. 이 가운데 전임 대표이사와 전문분야가 다른 새 대표이사를 내세운 곳은 모두 14곳이다. 8곳이 재무 전문가에서 경영 또는 기술형 CEO로 교체했고, 6곳은 기술·전략통에서 재무통으로 변경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어진 고금리 기조 등으로 더딘 경기회복에 따라 기업들 실적 반등 속도가 느리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공격형 CEO를 배치한 기업들이 더 많다는 점을 알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 김동명 사장은 전기차 성장세 둔화가 본격화한 시기에 전격 기용됐다. 김 사장은 연세대 금속공학과, KAIST 재료공학과 석·박사를 받고 1998년 LG화학 배터리연구센터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CEO 승진 직전까지 LG에너지솔루션 핵심사업부인 자동차전지사업부를 이끌었다.
전임 CEO는 LG그룹에서 44년 근무한 대표적 재무·전략 전문가 권영수닫기권영수광고보고 기사보기 전 부회장이다. 김 사장은 권 전 부회장보다 12살 어리기도 하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둔화)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과감한 세대교체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이에 대해 회사는 "시장 불확실성이 높은 가운데 내실을 다지기 위해선 기술 전문성을 가진 젊은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했다.
새롭게 LG디스플레이를 이끌고 있는 정철동 사장은 성과주의 인사다. LG이노텍 대표 시절 사업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았다. 정 사장은 회사 LCD 사업을 시작한 LG반도체에 입사해 LG디스플레이 최고생산책임자(CPO)까지 오른 내부 출신으로 회사가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아는 인사이기도 하다.
앞서 지난 2023년도 인사에선 LG생활건강 음료사업부를 담당하는 이정애닫기이정애광고보고 기사보기 사장을 대표로 올렸다. 2005년부터 LG생활건강을 이끈 차석용닫기차석용광고보고 기사보기 전 부회장을 18년 만에 교체하는 세대교체성 인사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위기 상황에서 재무통 CEO를 과감하게 교체해 큰 효과를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재무라인 CEO를 중용하던 곳이었다. 2010년대 중반 현대차·기아는 미국·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판매량이 눈에 띄게 떨어지자, 두 곳 모두 재무 전문가를 배치했다.
변화의 바람은 정의선닫기정의선광고보고 기사보기 현대차그룹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2018년 이후 시작됐다. 2019년 정기인사에서 현대차 장재훈 사장이 승진한데 이어, 이듬해 수시인사에서 기아 송호성닫기송호성광고보고 기사보기 사장이 취임했다.
특히 장재훈 사장은 기존 현대차 CEO들과 이력이 다르다. 장 사장은 현대차그룹 공채가 아닌 현대글로비스 상무로 입사했다. 이전에 삼성물산, GM 등에서 일하다가 창업에도 도전한 이력이 있다. 현대차에서 몸담은 조직도 고객채널서비스사업부, HR사업부(인사팀) 등으로 실적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핵심부서와는 거리가 있다.
새로운 리더십을 선택한 이유는 2010년대 그룹 부진이 비대해진 조직 탓에 시장 상황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의선 회장은 취임 초기부터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고, 장재훈 사장이 이를 주도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장재훈 사장은 경영지원팀을 이끌 때도 조직간 경계를 허물고 빠른 실행을 뜻하는 애자일 경영을 강조했다"고 했다.
재무통 대신 업계 전문가를 CEO로 내세우는 이유는 꼭 조직쇄신에만 있는 건 아니다. 대내외적 이슈로 혼란한 내부 분위기를 다잡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오세철 사장은 삼성물산에 입사해 CEO 자리까지 오른 회사 첫 사례다. 이전에는 삼성전자 출신 재무통이 내려오던 자리였다. 삼성물산이 단순한 건설사가 아니라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이슈의 중심에 있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엔지니어 출신인 오 사장은 해외 사업 성과를 인정받아 올해 삼성그룹 '60세룰'을 깨고 연임에 성공했다.
포스코홀딩스는 새로운 회장을 선출할 때마다 정치권 외풍 논란에 시달린다. 올해는 다수 외부 인사가 하마평에 올랐지만 결국 내부 출신인 장인화 회장을 선택했다.
장 회장은 1988년 포스코에 입사해 연구, 마케팅, 생산 등 다양한 분야를 경험한 '철강맨'이다. 최정우 전 회장이 포스코 사상 첫 비엔지니어 출신 CEO였는데, 이번에 다시 전통을 따랐다. 포스코 관계자는 "CEO가 조직을 잘 알다보니 직원들도 일하기 편하다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곽호룡 한국금융신문 기자 horr@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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