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와 현대미술 아버지 ‘폴 세잔’(Paul Cezanne)처럼 국내에는 ‘상장지수펀드(ETF·Exchange Traded Fund) 아버지’로 불리는 이가 있다.
배 대표는 수없는 변화로 고객과의 신뢰를 이끈다. 삼성자산운용(대표 서봉균)에서 한국투자신탁운용으로 자리를 옮긴 뒤 가장 먼저 브랜드명을 교체하면서 파격 행보를 보였다.
그의 책꽂이에는 신뢰 관련 서적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취임 후 변화와 신뢰를 무기로 한 배 대표의 성장 전략은 어느새 한국투자신탁운용 ETF 시장점유율을 대폭 높였다.
한국거래소가 인정한 ‘ETF 아버지’
배재규 대표는 한국거래소(KRX‧이사장 손병두닫기손병두기사 모아보기)가 인정한 ‘ETF 아버지’다. 지난달 거래소가 개최한 ‘글로벌(Global‧전 세계) ETF 콘퍼런스(Conference‧대규모 회의) 서울’에서 개인 공로상을 받았다. 그간 ETF 100조원 시대를 여는 데 큰 기여를 지속해왔단 평가다.그가 국내 유가증권시장(KOSPI)에 ETF를 처음 도입해온 건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이다. 2002년 삼성자산운용 주식 2팀에서 일하던 배 대표는 해외 출장을 통해 ETF를 국내에 들여왔다.
당시 그가 금융감독원(원장 이복현닫기이복현기사 모아보기) 재정경제부를 비롯해 당국 실무자들을 직접 만나고 다니며 ETF 도입을 위한 법 개정 필요성을 피력한 일화는 유명하다.
배재규 대표는 개인 공로상 수상 소감을 통해 “ETF만으로 모든 자산에 투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20여 년 전 목표였는데 현실이 됐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상품을 시장에 공급해 ETF가 투자자들의 자산 배분 도구이자 돈을 버는 수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나쁘게 바뀌어도 안 바뀌는 것보다 낫다”
“변화가 전부입니다.”
배재규 대표에 대해 논하려면 ‘변화’를 빼고선 이야기할 수 없다. 작년 11월 본지 기자가 그를 인터뷰(Interview·대담)할 당시 그는 “바꿔야 한다”는 말만 수차례 반복했다.
당시,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배 대표의 철학은 ‘나쁘게 바뀌어도 안 바뀌는 것보다 낫다’였다.
배대표는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직을 맡는 순간부터 계속해서 ETF 시장점유율 향상에 공들였다. 그가 이를 위해 제일 먼저 단행한 것은 브랜드명 교체다.
지난 2008년 이후 14년 동안 사용하던 브랜드 명칭인 ‘킨덱스’(KINDEX)를 ‘에이스’(ACe)로 바꿨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에게 붙이는 별칭인 에이스에는 ‘고객 경험 향상’(Accelerate Client Experience)이란 뜻을 담았다.
브랜드명 교체 뒤 내놓은 첫 상품 이름은 엔비디아(NVIDIA‧대표 젠센 황) 등을 담아낸 ‘ACE 글로벌반도체TOP4 Plus SOLACTIVE ETF’다.
당시, 그는 단순히 이름만 바꾼 게 아니었다. ETF 사업 전부를 환골탈태(換骨奪胎) 시켰다.
대표 직속인 ‘디지털 ETF 마케팅본부’를 신설했으며 수장에는 홍콩계 ETF 운용사 프리미어파트너스(Premia Partners)의 김찬영 전 이사를 영입해 본부장에 앉혔다. ETF 사업 부문의 인력도 3배 이상 늘렸다.
퇴직연금 시장 공략을 위해 생애 주기 펀드(TDF·Target Date Fund) 담당 솔루션본부도 출범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을 최고의 자산운용사로 만들기 위한 그만의 전략이었다. ‘ETF‧TDF 성공’이 첫 출발이라 본 것이다.
이후 배대표는 국내 최초로 금 현물 ETF를 상장시키는 등 투자자들의 요구에 부합한 상품을 발 빠르게 출시했다. 최근엔 포스코그룹주에 집중 투자하는 ‘ACE포스코그룹포커스’를 선보이면서 투자자 관심을 끌어냈다.
배 대표는 이 ETF를 출시할 당시 “혁신을 통해 철강에서 미래소재 그룹으로 탈바꿈하는 포스코그룹과 지난해부터 ETF와 TDF 등 새로운 자산운용 시대에 맞춰 변화 중인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서로 닮은 꼴”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이달 중 국내 최초 만기 자동 연장 채권형 ETF ‘ACE 11월만기자동연장회사채AA-이상액티브’ 출시도 앞두고 있다.
배 대표는 “지금, 한국투자신탁운용이 변하지 않으면 향후 내세울 것이 무엇이 있겠냐”며 “주력 채널인 은행이나 보험사를 갖지 않은 현 상황에서 오직 실력에 기반을 둔 ‘처절한 변화’만이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변화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대표가 회사의 비전(Vision·목표)을 잘 제시하고 직원 개개인이 각자 변화에 노력을 기울인다면 언젠가 그 변화는 시장 변화를 이끌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지난 10월 열린 제7회 한국 퀀트(Quant‧계량+분석가) 투자 콘퍼런스에서도 배 대표는 ‘변화’ 철학은 잘 드러났다.
그는 당시 환영사를 통해 “‘세상이 바뀌었으니, 우리는 변해야만 한다’는 말을 강조하고 싶다”며 “자산운용업 종사자 개개인은 전문성을 키워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이 제시한 답 진위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고객 신뢰’”
배재규 대표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고객 신뢰’다.그는 세계적인 신뢰 전문가이자 옥스퍼드 대학교 사이드 경영대학원의 초빙교수인 레이첼 보츠먼(Rachel Botsman)의 <신뢰 이동>이나 노스이스턴 대학 심리학과 교수이자 사회심리학의 거장인 데이비드 데스테노(David DeSteno, phD)의 <신뢰의 법칙> 등 신뢰 관련 서적들을 수시로 본다.
그가 생각하는 신뢰는 다른 말로 말하면 ‘기대에 대한 확실성’이다. 기대에 대한 믿음이 계속 맞아떨어지면 상대방과의 신뢰가 형성된다고 여긴다.
배 대표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신뢰를 쌓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상대방 기대를 낮추는 것”이라며 “단기간 수익을 낼 수 있다고 고객에게 시장을 예측하는 발언을 던지거나 자산을 쌓기 위해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사업에만 집중하는 건 상대방 기대치만 높여 오래가지 못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신뢰’를 중요시하는 배재규 대표는 운용사가 해야 할 일을 두 가지라 생각한다.
하나는 고객 투자 자산을 안정적으로 수익이 나게끔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자산 배분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는 “펀드든 ETF든 단품이 아니고 자산 배분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자산운용사는 예측 투자로 돈 버는 운 좋은 몇몇 사람을 위한 서비스가 아니라 가장 평균적인 일반투자자가 상식적으로 부를 축적할 방법을 얘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투자 기본 원칙은 ▲장기 투자 ▲분산 투자 ▲저 비용 투자 3가지다. 기술적으론 적립식 투자도 포함해 4가지라 할 수 있다.
배재규 대표의 인재 영입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신뢰’가 녹여져 있다.
오랫동안 배 대표와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는 이들을 데려오는 것 자체도 그렇지만,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장기간 얻었던 이들을 영입한다는 게 특징이다. 김찬영 디지털 ETF 마케팅본부장 다음으로 외부에서 데려온 박희운 전 KB증권 리서치센터 전문위원이 하나의 사례다.
변화를 거듭하면서 고객과의 신뢰를 쌓아 온 결과, 한국투자신탁운용의 실적은 빛을 발했다.
지난해 말 3조원가량이었던 ETF 순자산은 최근 5조원 넘게 불어났다. 지난 4일 기준 5조6202억원에 이르렀다. 해당 기간 시장점유율 역시 4%에서 5%로 1%포인트(p)가량 늘었다.
친정인 삼성자산운용을 밀어내고 개인 순매수 대금면에서 2위인 자산운용사가 됐다. 전체 관리 자산(AUM‧Asset Under Management)은 1년 전보다 약 6조원 늘어 55조원에 육박한다.
호실적 덕에 배 대표 연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한국투자금융지주(회장 김남구닫기김남구기사 모아보기)가 지난달 23일 한국투자증권을 5년간 이끌어온 정일문닫기정일문기사 모아보기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면서 신임 대표에 김성환 개인 고객 그룹장(부사장)을 내정했다. 하지만, 배 대표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었다.
회사 내부적으론 그의 유임에 무게를 두고 있다. 배 대표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과연 배재규 대표의 ‘혁신’과 ‘신뢰’라는 두 바퀴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을 업계 최고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을까?
1974년 국내 최초 설립된 자산운용사 ‘한국투자신탁운용’에 ETF 아버지 ‘배재규’ 대표가 어떤 마법을 부릴지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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