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등급보다 계열사 신용도와 업종 전망이 수요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기관투자자들은 더 이상 신용등급만 믿고 투자하지 않는다. 기업별 업황과 계열 리스크를 먼저 들여다보는 '선별 투자' 기조가 본격화된 것이다.
◇ 대형 발행사 독주… 발행 규모 양극화 심화

2분기 누적 최대 발행사는 SK이노베이션(AA)이 차지했다. SK증권, KB증권, 신한투자증권을 대표주관사로 선정해 2년물 3500억 원을 포함, 총 8000억 원을 성공적으로 조달했다. 고려아연이 7000억 원을, KB증권과 CJ제일제당은 각각 6000억 원씩 발행하며 뒤를 이었다.
주목할 부분은 발행 규모 면에서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졌다는 점이다.
3000억 원 이상 발행사는 17개 업체로, 이들이 조달한 금액은 전체 발행의 50.8%인 7조 6600억 원에 달했다. 이 중 A등급 발행사는 대한항공 한 곳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두 AA- 이상 우량채권으로 구성됐다.
이들 17개사의 증액 규모는 3조 2800억 원으로, 전체 증액 규모(5조 7540억 원)의 57.0%에 해당한다. 대기업 우량채에 투자 수요가 얼마나 집중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발행 규모 1000억 원 이상으로 범위를 넓히면 56개사, 14조 2440억 원이 발행돼 전체 발행의 94.5%를 차지했다. 대기업 중심의 거액 발행 구조가 사실상 시장의 기본틀로 자리잡은 셈이다.
계열 별로는 SK그룹이 6개사에서 총 2조 4500억 원을 발행하며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CJ그룹(1조 400억 원), 영풍그룹(7000억 원)이 뒤를 이었으며, 상위 5개 그룹의 발행액 합계는 전체의 36.4%를 차지했다.

◇ '계열 프리미엄' 효과 극명… 같은 등급도 희비 갈려
2분기 전체 트랜치 140건 중 112건(80.0%)은 수요예측을 통한 증액 발행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명암이 극명하게 갈렸다.현대백화점(3년물, AA+)은 500억 원 모집에 1조 100억 원의 주문이 몰리며 20.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최종 발행액은 900억 원으로 늘었다. SK네트웍스 2년물(15.7대 1), 삼천리 3년물(14.5대 1)도 흥행 대열에 합류했다.
반면 LS엠트론(3년물, A)은 500억 원 모집에 유효수요 350억 원(0.7대 1)에 그치며 2분기 유일한 감액 발행 사례로 기록됐다. CJ CGV(신종자본, 0.25대 1)와 하림지주(2년물, 0.80대 1)도 목표액을 채우지 못했다.
또 경쟁률 2배 미만을 기록한 트랜치는 총 16건, 금액 기준으로는 1조 850억 원(7.2%)에 달했다. 이들 대부분은 BBB+에서 A- 등급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수요 결정의 핵심 변수는 단순한 신용등급 구간에 국한되지 않았다.
실제로 HD현대건설기계(A, 11.55대 1), 세아홀딩스(A, 7.36대 1), 해태제과식품(A-, 7.50대 1) 등은 중위권 신용등급에도 불구하고 7배 이상의 높은 경쟁률로 흥행에도 성공했다.
수요 부진의 원인은 업종과 경영성과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건설, 석유화학, 부동산신탁 등의 업종은 불안정한 업황과 비우량 계열 구조, 실적 부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대표적으로 한국토지신탁(부동산개발, 1.02대 1), GS엔텍(플랜트/에너지, 1.62대 1), HD현대산업개발(건설, 1.93대 1) 등이 2배 미만의 유효 수요를 받는데 그쳤다.
수요예측 결과를 결정지은 건 결국 ‘A냐 B냐’ 같은 등급 자체가 아니라, ‘어디 소속인가’, ‘업황이 어떤가’, ‘실적 흐름은 어떤가’ 등 보다 본질적인 투자 판단 기준이었다는 해석이다.
◇ 대형 주관사도 '수요 부진' 직면… 전략 재점검 불가피

CJ CGV, LS엠트론, 하림지주 미매각 사태는 해당 딜의 대표주관을 맡은 KB증권과 키움증권, NH투자증권의 명성에도 흠집을 남겼다. 특히 LS엠트론은 감액 발행이라는 이례적 결과를 보였고, 나머지 두 기업도 미달 물량을 인수사가 떠안는 구조로 마무리됐다.
주관사들이 수요 기반 분석, 수요 예비 조율, 금리 밴드 설정 등 핵심 업무에서 충분한 전략을 구현하지 못한 점이 부각됐다. 이는 하반기 주관 딜 파이프라인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주관사들의 전략 재점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실제로 이번 2분기 시장 흐름은 단순 수요 확보 실패를 넘어, 투자자들의 판단 기준 자체가 달라졌음을 시사한다. 기관투자자들이 무엇을 사고, 무엇을 거르는 지를 보면 시장이 어떤 논리로 움직이고 있는지 명확히 드러난다.
결국 이번 분기 흐름은 개별 기업의 신용등급보다 '투자 신뢰도'가 중요해졌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 하반기 전망… '선별 투자' 기조 더욱 강화될 듯
업종별 회복력, 계열 신뢰도, 실적 모멘텀 등을 기준으로 한 기관 수요의 '선별화'는 3분기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용등급은 여전히 투자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지만, 이제는 ‘참고 지표’일 뿐 ‘최종 판단 기준’은 아니다.
투자자들은 과거처럼 등급만을 근거로 판단하기보단 계열 리스크, 업종 전망, 실적 모멘텀, 그룹 지원 여력 등 개별 팩터를 기준으로 한 선별적 투자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등급 상위권 기업에서도 신용 이벤트가 반복되며 '등급 = 안전'이라는 등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학습 효과가 시장에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신용등급의 실효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용평가 기관의 책임 강화와 제도적 보완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두경우 한국금융신문 전문위원 kwd1227@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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