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벤처캐피탈 및 기술 스타트업 전문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의 주된 원인으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가파른 금리 인상이 지목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은행들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정부는 SVB 사태가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모니터링을 강화하며 예의주시하겠다는 방침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SVB 파산이 금융시장 변동성을 확대할 가능성은 있지만 국내 은행에 미칠 파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내 은행과 SVB의 사업 모델이 다른 데다 국내 은행의 전반적인 건전성도 양호하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10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을 폐쇄했다.
SVB 파산은 고금리 충격에 따른 SVB의 재무구조 악화가 주요 고객이던 벤처기업의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로 이어지면서 벌어졌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기술기업에 몰리면서 SVB의 총 예금은 2021년 한해 86% 급증했다. SVB는 늘어난 예금을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 등에 투자했다.
이후 지난해 미 연준이 인플레이션(물가상승) 대응을 위해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밟으면서 금리가 급등했고 자금줄이 막힌 기술기업들은 예금 인출을 늘렸다.
이에 유동성 압박을 겪은 SVB는 자금 마련을 위해 국채 가격이 급락한 상황에서 손실을 확정하며 채권을 매각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태가 자금조달과 투자가 편중된 미국 일부 은행만의 문제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상원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최근 캘리포니아주(州) 내 중소은행들의 잇따른 유동성 불안 사태는 자금조달과 투자가 편중된 일부 은행만의 문제일 수도 있다”며 “다만 경제 및 금융 불확실성이 재차 확대될 가능성이 큰 만큼 구조적으로 취약한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신뢰도 문제가 산발적으로 재발할 수 있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이번 SVB 사태는 일견 한국의 레고랜드와 PF사태와 닮아 있지만, 은행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한다”며 “미국 은행권 총 자산의 50%는 상위 10개 은행에 몰려 있고 그 중 약 40%는 상위 5개사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SVB의 주요 고객이 실리콘밸리 지역의 스타트업 또는 VC 등 현금이 부족한 기업들이었기에 금리 상승 여파가 현금 소진 및 뱅크런으로 이어진 것”이라며 “은행권 전반이나 대형 은행의 뱅크런으로 전염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국내 은행의 경우 SVB와 달리 팬데믹 기간 늘어난 유동성을 유가증권 등 고위험 상품 투자 대신 대출을 늘리는 데 활용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예금은행의 수신 잔액은 지난해 12월 말 2243조5000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107조4000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은행을 포함한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은 8조7000억원 감소한 반면 은행 기업대출은 104조6000억원 불었다.
국내 주요 은행도 지난해 금리 상승과 시장 변동성 확대 등의 영향으로 유가증권 관련 이익이 줄긴 했지만 전체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대출을 크게 늘렸지만 국내 은행의 건전성은 양호한 상태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0.25% 수준이다.
다만 지속된 금리 상승 누적 효과와 경기 둔화 등의 영향으로 주요 은행 연체율 상승세가 본격화하고 있어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잠재해있다.
KB국민·하나·우리·NH농협 등 4대 시중은행의 지난 1월 신규 연체율 평균은 0.09%로 지난해 12월(0.07%) 대비 0.02%포인트, 1년 전인 지난해 1월(0.04%)에 비해서는 2배 이상 높아졌다.
국내에서는 SVB 사태를 촉발한 뱅크런 가능성도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이 주 고객인 SVB는 예금 대부분이 예금자보호한도(25만달러)를 넘는 고액인 반면 국내 은행은 기업보다는 가계, 고액보다는 소액 예금 비중이 크다.
실제로 작년 1분기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저축성예금 계좌 238만6440개 중 99.5%인 237만4540개 계좌의 잔액이 1억원 이하로 집계됐다. 국내 예금자보호법상 보호 한도는 5000만원이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SVB는 국내 은행의 사업 모델과 다르기 때문에 국내 은행의 유동성 위기로 번질 우려는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SVB 사태가 금융권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도 모니터링을 강화하며 사태 추이를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추경호닫기추경호기사 모아보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수출투자책임관 회의를 열고 “아직은 이번 사태가 글로벌 금융·경제 전반의 리스크로 확산되지 않고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향후 여파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만큼 우리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관계기관 합동으로 실시간 모니터링을 한층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주현닫기김주현기사 모아보기 금융위원장도 이날 오전 금융시장 점검 회의를 열고 “아직은 이번 사태가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 시각이 우세한 상황”이라면서도 “향후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관계부처 및 관계기관과 함께 국내외 금융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해달라”고 주문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나라는 과거 다양한 위기를 겪으며 상황별 대응 장치가 잘 돼 있는 만큼 금융시스템을 재점검하며 긴장을 늦추지 말고 필요시엔 신속한 시장안정조치를 시행해야 한다”면서 “특히 금융감독원 등 유관기관과의 협조를 통해 국내 금융회사의 건전성, 유동성 등도 신속하게 재점검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복현닫기이복현기사 모아보기 금융감독원장 역시 이날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개최하고 “미국 정부 및 감독 당국이 모든 예금자를 보호하기로 함에 따라 시스템적 리스크로 확대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이 원장은 “유사한 영업구조를 갖는 미국 내 금융회사 등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등 당분간은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을 경계감을 갖고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도 이날 시장상황 점검회의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은행들의 건전성이 개선돼 온 점, 미 재무부·연준·FDIC가 예금자 전면 보호조치를 즉각적으로 시행한 점 등을 고려할 때, 현재로서는 SVB, 시그니처뱅크 폐쇄 등이 은행 등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이번 사태가 투자 심리에 미치는 영향, 오는 14일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결과 등에 따라서는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번 사태가 국내 금리·주가·환율 등 가격변수와 자본 유출입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하면 적절한 시장 안정화 조치를 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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