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이자 장사’ 손질에 증권사들이 신용융자 이자율을 앞다퉈 낮추고 있다. 최근 이자율이 10%대를 넘어서는 등 과도하게 높다는 지적이 언론에서 이어지자 당국 조치 전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모양새다.
신용융자는 투자자가 증권을 담보로 주식매수자금을 빌리는 걸 말한다. 일종의 ‘대출’이다. 그동안 증권사들은 담보로 잡은 주식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떨어지면 증권사가 강제 처분하는 안전장치 ‘반대매매’가 있음에도 높은 수준의 이자율을 적용해왔다.
반면, 은행으로 치면 ‘예금 금리’와 같은 고객 예탁금 이용료율은 턱없이 낮은 수준이었다. 현재 신용거래 이자율은 연 9% 안팎이지만, 고객 예탁금 이용료율은 연 0.3% 정도에 불과하다. 증권사들은 고객 예탁금을 한국증권금융(대표 윤창호)에 맡기고 연 1% 안팎의 수익을 받지만, 고객에겐 예탁금 이용료율을 3분의 1 수준으로 지급해온 것이다.
이에 최근 이복현닫기이복현기사 모아보기 금융감독원장은 “증권사가 예탁금 수익의 극히 일부만 고객에게 돌려주는 것은 구조적 문제가 있다”며 은행권에 이어 증권사들의 ‘이자 장사’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증권사들은 지난 14일 한국투자증권(대표 정일문닫기정일문기사 모아보기)을 시작으로 “고객 부담을 낮춘다”며 앞다퉈 금리 인하에 동참 중이다.
신한투자증권은 27일 신용융자 사용 비중이 가장 높은 1일~7일 기간 신용융자 이자율은 5.05%에서 3.9%로 1.15%포인트(p) 인하하기로 했다. 해당 구간 절대적인 이자율은 업계 최저로 평가받는다. 최장기간인 90일 초과분도 종전 10%에서 8.9%로 변경한다.
이자율 인하 방식을 폭넓게 적용해 혜택의 실효를 넓혔다. 특정 구간이 아닌 전 기간 이자율을 낮췄다. 발표한 이자율은 대면과 비대면 차등을 두지 않는다. 바뀐 이자율은 다음 달 2일 매수분부터 적용된다.
양진근 신한투자증권 개인 고객전략본부장은 “금리 인상기 고객들에게 실질적인 체감이 되는 혜택을 드리고자 한다”며 “공공적인 책임에 맞는 역할을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키움증권도 이날 사용 기간별 이자율을 최대 2.1%p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결정으로 키움증권 일반 고객은 신용융자 사용 시 기간별로 5.4%~9.3% 이자율을 적용받게 된다. 우수 고객의 경우엔 4.9%~8.3% 우대 이자율을 적용받는다.
7일 이내 기간 신용융자 이자율은 7.5%에서 5.4%로 낮아진다. 아울러 ▲15일 이하 이자율은 8.5% → 7.9% ▲90일 이하 이자율은 9.0% → 8.7% ▲90일 초과 이자율은 9.5% → 9.3%로 인하된다.
이는 국내 주식 시장점유율 5% 이상 상위 7개 증권사의 비대면 계좌 중 최저금리 수준에 해당한다. 우수 고객은 각 기간 0.5%~1%p 우대 이자율이 추가로 주어진다. 변경된 신용융자 이자율은 다음 달 10일 신규 매수 체결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키움증권 측은 개인투자자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 중이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최근 주식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증가하는 상황 속 신용융자 사용 고객의 이자 부담을 완화하고자 업계 최저 수준으로 신용융자 이자율 인하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업계 1위를 다투는 메리츠증권(대표 최희문닫기최희문기사 모아보기)과 미래에셋증권(대표 최현만닫기최현만기사 모아보기·이만열)은 23일 신용융자 이자율 인하를 결정했다.
메리츠증권은 ‘슈퍼(Super)365 계좌’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을 최대 2.4%p 내렸다. 이번 금리 인하로 이자율은 6.9%에서 5.9%로 변경된다. 또한 30일 이하 이자율은 최대 8.4%에서 6.9%로, 30일 초과 이자율은 최대 9.8%에서 7.4%로 바뀐다. 올해 들어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을 내린 모든 증권사 가운데 가장 큰 폭의 금리 인하다. 변경된 이자율은 다음 달 2일 매수 체결된 물량부터 적용된다.
미래에셋증권은 최고 금리를 기존 9.8%에서 9.5%로 0.3%p 하향 조정했다. 변경된 이자율은 다음 달 20일부터 적용할 방침이다.
앞서 KB증권(대표 김성현닫기김성현기사 모아보기·박정림)도 20일 신용거래융자·주식 담보대출 이자율을 최고 연 9.8%에서 9.5%로 0.3%p 내렸다. 주식 담보대출은 다음 달 1일 신규 대출분부터, 신용융자는 체결일 기준 다음 달 2일(결제일 기준 다음 달 6일) 매수분부터 이자율이 바뀐다.
한국투자증권은 14일 업계에서 가장 먼저 은행 또는 비대면 개설 계좌 ‘뱅키스’(BanKIS) 고객을 대상으로 신용융자 최고구간인 30일 초과 이자율을 현행 9.9%에서 9.5%로 0.4%p 낮췄다. 삼성증권(대표 장석훈닫기장석훈기사 모아보기) 역시 17일 신용융자 이자율을 구간별로 최대 0.4%p 내린 바 있다.
이 밖에 카카오페이증권(대표 이승효)과 현대차증권(대표 최병철닫기최병철기사 모아보기) 등도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을 낮춘다고 밝힌 상태다.
증권사들이 줄줄이 이자율을 인하하는 배경으론 ‘금융당국의 이자율 점검’이 꼽힌다.
기준금리 하향에 따라 고객 금융부담을 줄여주기 위함도 있지만, 아무래도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이어 1조원이 넘는 증권가 ‘이자 장사’를 점검하겠다고 발 벗고 나선 만큼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최근 이자율이 10%대를 넘어서면서 과도하게 올랐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왔었다.
지난 21일 금융감독원(원장 이복현)은 관련 기관과 임시 조직(TF·Task Force)를 구성해 금융 투자상품 거래 관련 이자 및 수수료율 지급·부과 관행을 종합 점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증권사가 예탁금 이용료율과 신용융자 이자율을 선정하면서 기준금리 등 시장 상황 변동을 반영하지 않거나, 주식대여 수수료율이 공시되지 않아 투자자 보호가 취약해졌다는 판단이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에서 “증권사 예탁금 이용료율과 주식대여 수수료율, 신용융자 이자율 산정체계를 합리화하기 위한 세부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했었다.
실제로 지난해 증권사들은 증시 부진에 실적이 타격받는 와중에도 신용공여 이자 수익은 견고하게 유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투자협회(회장 서유석)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29곳의 지난해 누적 신용 이자 수익은 1조5969억원이다. 삼성증권이 2592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키움증권 2368억원 △미래에셋증권 2236억원 △NH투자증권(대표 정영채닫기정영채기사 모아보기) 1911억원 △한국투자증권 1529억원 △KB증권 1383억원 순으로 확인됐다.
금융당국은 증권사들이 기업금융(IB·Investment Bank) 부문에서 수익을 더 창출하도록 유인하고 있다. 자기자본 규모가 커지도록 대형화를 유도하고 IB 업무 등 고부가가치 사업 역량 강화에 지원을 쏟는 식이다. 단순히 브로커리지(Brokerage·위탁매매) 수익에 기대지 말고 투자자와 기업을 연결하는 기업금융 업무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요구라 보면 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이 이례적으로 증권사 예탁금과 신용융자 수익 등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는 이유는 단순히 소비자 부담을 줄이라는 압박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땅 짚고 헤엄치는 이자 장사에 머무르지 말고 근본적으로 업(業)의 체질을 바꾸라는 주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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