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닫기윤석열기사 모아보기 정부가 금융 부문 핵심 정책 중 하나로 내놓은 금융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출범 100일을 맞은 윤 정부는 그간 고금리·고물가에 따른 민생경제 안정을 위해 새출발기금, 안심전환대출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놨지만 은행권에 대한 부담 전가와 도덕적 해이, 형평성 논란 등이 뒤따르면서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빚 탕감' 새출발기금, 도덕적 해이·형평성 논란
17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오는 18일 금융권을 대상으로 새출발기금 설명회를 개최해 업계 의견을 수렴한다. 금융위는 당초 18일 예정돼 있었던 새출발기금에 대한 운영 방향 발표를 연기했다. 금융위는 연기 사유로 “금융권과 유관기관 등과의 세부사항 추가 소통과 점검을 위한 추가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정부는 지난달 14일 제2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125조원+α 금융 민생안정 대책’을 발표하고 올해 2조2000억원, 내년 2조6000억원의 정부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민생안정 대책은 자영업자·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41조2000억원 규모의 ‘경쟁력 강화 지원 프로그램’, 8조5000억원 규모의 ‘저금리 대환 프로그램’, 30조원 규모의 ‘새출발기금’ 운영 등을 골자로 한다.
서민 주거 부담 경감을 위해 변동형 주택담보대출을 고정형으로 바꿔주는 ‘안심전환대출’(45조원), 저금리 전세대출 보증 한도 확대(2억원→4억원) 등의 내용도 담겼다. 저신용층 금융지원 강화 차원에서 정책서민금융공급(10조원), 저신용 청년 특례채무조정 등도 추진한다.
이에 대해 금융권에선 부실 차주 양산과 도덕적 해이,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문제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제도 운영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은행권은 최대 90%에 이르는 과도한 원금 감면율 탓에 금융사의 손실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김주현닫기김주현기사 모아보기 금융위원장은 직접 “제도에 대한 오해”라고 해명에 나섰다. 김 위원장은 지난 8일 대통령 업무보고 브리핑에서 “금융권, 보증기관, 중소벤처기업부, 지자체 등과 논의 과정을 통해 제도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면 여러 가지 오해가 대부분 해소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다른 신용회복지원제도보다 탕감률을 높이겠다는 것이 아니고 다른 회생제도에서 인정해주는 탕감률 범위 내에서 운영하겠다는 게 기본적인 정신”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서민·실수요자가 변동형 주택담보대출을 저금리의 고정금리 주담대로 갈아탈 수 있는 25조원 규모의 ‘안심전환대출’도 다음달 15일부터 공급한다. 대출자는 부부합산 소득 7000만원 이하인 1주택자여야 하고 주택가격이 시세 4억원 이하(KB시세 ·한국부동산원 시세)인 경우 신청할 수 있다.
안심전환대출 금리는 최저 연 3.7% 수준으로 정해졌다, 대출 한도는 기존대출 범위 내 최대 2억5000만원이다. 기존 주담대를 해지할 때 통상 1.2%로 책정되는 금융기관의 중도상환수수료도 면제된다. 정부는 금융위는 안심전환대출 지원 대상을 23만~35만명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금융위는 신청 물량이 25조원을 초과하면 주택가격이 낮은 순으로 지원자를 선정한다. 이에 시장에서는 금리변동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고정금리를 선택했던 차주와의 형평성 논란이 제기됐다. 무주택·전세대출자들 사이에선 ‘역차별’이라는 불만도 나온다.
코로나19 피해 자영업자·소상공인의 고금리 대출을 최고 연 6.5%대의 보증부대출로 바꿔주는 프로그램은 9월 말부터 시행된다. 대환 대상 대출은 금융권으로부터 받은 설비·운전자금 등 사업자 대출로, 대환 신청 시점 기준 금리가 연 7% 이상이어야 한다. 대환 한도는 개인사업자는 5000만원, 법인 소기업은 1억원이다. 대환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이 부담하는 금리와 보증료는 은행권 기준으로 최고 6.5%로 실제 적용받는 금액은 차주 신용도에 따라 차등적으로 결정된다.
은행권 일각에선 안심전환대출로 금리 상승기 변동금리 채권이 주택금융공사의 장기 고정금리 채권으로 바뀌면서 은행 이익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소상공인·자영업자 대환 프로그램의 경우 은행에 저신용자가 유입되면서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안심전환대출과 자영업자·소상공인 대환 프로그램이 은행권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안심전환대출은 지원 대상이 부부합산소득 7000만원 이하, 시세 4억원 이하 주택으로 제한돼 있고, 은행 외에 제2금융권 포함 25조원이므로 은행별 대출 감소의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라며 “자영업자·소상공인 대환 프로그램의 경우 자행이 아닌 타행 대출이 신규로 유입될 경우 리스크가 커질 수도 있지만 보증 비율이 90%라는 점에서 부정적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도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안심전환대출의 금리 수준을 고려하면 은행업권보다는 저축은행 등의 차주로부터 전환 수요가 발생할 전망”이라며 “은행 NIM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금융판 BTS' 예고…금산분리 등 규제 완화 추진
정부의 금융규제 완화는 은행권의 환영을 받는 분위기다. 국내 금융사들은 강력한 플랫폼 기반을 무기로 사업 영역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는 빅테크에 대응해 디지털·비금융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각종 규제로 인해 실질적인 사업 확장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었다.금융당국은 금산분리 완화 등 금융규제 원칙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다.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진 '빅블러(Big-blur)' 시대에 맞춰 금융규제가 금융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발목 잡지 않도록 과감하게 바꾸겠다는 방침이다. 금융산업에서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를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금융위가 지난달 19일 발표한 금융규제혁신 추진 방향에는 ▲디지털 전환 촉진 ▲혁신 인프라 구축 ▲자본시장 선진화 ▲감독행정 개선 등 4대 분야의 9개 주요 과제, 36개 세부과제가 담겼다.
금융위는 특히 금융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뒷받침하기 위해 금산분리 제도 개선, 비금융정보 활용 활성화 등을 통한 금융·비금융 간 서비스·데이터 융합 촉진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금융지주는 비금융회사 주식을 5% 이상 보유할 수 없고, 은행과 보험사는 다른 회사 지분에 15% 이상 출자가 불가능하다.
은행권은 각종 규제에 가로막혀 글로벌 금융사나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에 대응한 경쟁력 강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규제 완화를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를 바로잡아달라고 요구해왔다. 정부의 금융규제 혁신이 실제로 이뤄지면 은행 등 전통 금융사들의 플랫폼 사업과 비금융 업종 진출이 본격적으로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빅테크와 유의미한 플랫폼 경쟁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우선 자회사 투자 제한이 풀리면 은행도 사용자환경 및 경험(UI·UX) 디자인회사나 부동산 등 생활 서비스업체, 중소기업 사업지원을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 영상‧문서 관련 디지털 인식기술 업체 등을 인수할 수 있게 된다. 부수 업무 규제 완화를 통해선 음식배달중개 플랫폼 등의 사업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신한은행의 배달 플랫폼인 ‘땡겨요’는 일정 기간 규제 예외를 적용받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한시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부수 업무로 인정될 경우 서비스를 지속할 수 있다.
정순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제의 디지털화에 대응하기 위한 금융회사의 기능 확대라는 관점에서 금융회사의 자회사 투자 및 업무 범위를 중심으로 금산분리 규제를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면서도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규제는 빅테크의 은행업 진출에 따른 리스크 등을 고려해 장기과제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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