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과 빅테크 간 플랫폼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뱅킹 애플리케이션(앱) 하나로 금융 업무는 물론 비금융 서비스까지 지원하는 ‘종합생활금융플랫폼’을 구현하는 데 공을 들이는 중이다. 특히 카카오나 토스처럼 은행, 보험, 증권 등 다양한 서비스를 하나의 앱에서 제공하는 ‘슈퍼 앱’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제도적 뒷받침까지 약속하면서 시중은행들의 슈퍼 앱 전환 전략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지난 27일 모바일뱅킹 앱 ‘KB스타뱅킹’을 개편해 새롭게 선보였다. 새 KB스타뱅킹은 국민은행 내 흩어진 앱뿐 아니라 KB금융 계열사 앱도 하나로 모은 통합 플랫폼이다. KB증권의 ‘이지(Easy) 주식 매매’, KB국민카드의 ‘KB 페이(Pay) 간편결제’, KB손해보험의 ‘스마트 보험금 청구’ 등 KB금융그룹 6개 계열사의 핵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국민은행은 확장형 플랫폼을 구현하기 위해 별도 앱 설치 없이도 앱 내에서 새 창이 열리는 ‘인앱 브라우저’ 방식을 활용했다. 한동환 KB금융 디지털플랫폼총괄(CDPO) 부사장은 지난 21일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계열사 서비스가 담기면서 앱이 무거워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을텐데 인앱 브라우저라는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 기술을 적용해서 용량 문제가 없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은행들은 강력한 플랫폼을 무기로 금융업에 진출하고 있는 빅테크에 대응하기 위해 뱅킹 앱 고도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인터넷전문은행들은 1~2개의 앱만 운영하고 있다. 이달 초 출범한 토스뱅크는 별도 앱을 만드는 대신 기존 토스 앱에 은행 서비스를 얹는 원앱 전략을 내세웠다. 토스증권도 새로운 앱이 아닌 기존 토스 앱에 들어가 탭만 달리하고 있다. 카카오뱅크 역시 단 한 개의 앱으로 모든 업무를 볼 수 있다. 케이뱅크는 기업뱅킹과 개인뱅킹을 나눈 2개 앱뿐이다.
시중은행들도 모바일 고객 확보를 위해 수십 개의 앱을 쪼개 출시했던 전략 방향을 수정 중이다. 다양한 앱을 하나로 통합하거나 기능이 중복되는 앱을 정리하는 식의 ‘앱 다이어트’에 나서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앱 개편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원스톱 뱅킹’과 ‘종합금융플랫폼’ 구현이다. 기존의 단순한 금융 업무만 보던 뱅킹 앱에서 다양한 금융·비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슈퍼 앱을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미래 고객인 MZ(밀레니얼+Z) 세대를 잡는 등 디지털 고객 기반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2018년 ‘신한S뱅크’, ‘써니뱅크’, ‘스마트실명확인’ 등 6개 앱을 하나로 합친 통합 앱 ‘신한 쏠(SOL)’을 출시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8월 모바일뱅킹 앱을 전면 개편해 하나의 앱에서 전 계열사 금융 서비스와 생활밀착형 제휴서비스를 담은 ‘뉴 하나원큐’를 선보였다. 현재 하나원큐를 원 앱·슈퍼 앱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우리은행은 2019년 8월 내놓은 새 모바일뱅킹 앱 ‘우리원(WON)뱅킹’에 최근 우리페이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원스톱 서비스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NH농협은행은 현재 운영 중인 7개 앱을 2024년까지 ‘NH스마트뱅킹’, ‘NH기업스마트뱅킹’, ‘올원뱅크’ 등 3개로 통합할 예정이다. 이에 더해 은행들은 택배, 중고차 직거래 등 다양한 비금융·생활 편의 서비스도 앱에 탑재하고 있다.
다만 시중은행의 뱅킹 앱이 완전한 원 앱이나 슈퍼 앱으로 전환하는 데는 아직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계열사 간 고객 정보공유 제한이나 금산분리 규제 등 은행들의 관련 법 위반 소지 우려가 통합 앱 구축이나 플랫폼 사업 진출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광수닫기김광수기사 모아보기 은행연합회장은 최근 우리금융연구소에 기고한 ‘시대변화에 맞는 금융지주회사 제도 개선 제안’을 통해 “일부 빅테크가 강력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기존 금융회사의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그룹은 생존을 위해 자회사 간 시너지 창출과 디지털 전환을 위해 노력 중이나 변화한 금융환경에 부합하지 않는 금융지주 제도로 인해 한계를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지금처럼 산업의 일방적인 금융 진출만을 허용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방치할 경우 금융의 플랫폼 종속을 초래해 경제력 집중과 위험 전이 우려가 오히려 더욱 커질 것”이라며 “금융지주의 ICT·플랫폼 진출을 일정 수준 허용해 공정경쟁과 혁신을 유도하고, 현재 금융권 수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있는 빅테크에 대해서는 엄격한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 적용을 통해 위험 전이 우려를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시중은행들의 슈퍼 앱 전환에 힘을 싣기로 했다. 고 위원장은 지난 28일 5대 시중은행장과의 첫 간담회에서 ‘디지털 유니버설 뱅크’를 언급하며 이를 위한 제도적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디지털 유니버설 뱅크는 하나의 앱에서 은행, 보험, 증권 등의 다양한 서비스를 통합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고 위원장은 “미래의 은행은 단순히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을 넘어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금융 플랫폼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하나의 슈퍼 앱을 통해 은행, 보험, 증권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 유니버설 뱅크가 되도록 제도적 여건을 조성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플랫폼 사업 등 은행의 겸영·부수 업무 확대도 검토한다. 카카오, 네이버 등 빅테크의 플랫폼 사업을 은행도 할 수 있도록 디지털 혁신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다는 것이다. 현재 신한은행은 음식배달 플랫폼을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받아 올 연말 출시할 예정이다. 국민은행은 한시적으로 알뜰폰 서비스를 하고 있다. 고 위원장은 “현재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받아 운영 중인 플랫폼 사업 등에 대해 사업의 운영 성과와 은행업의 환경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은행의 부수업 무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간 빅테크 지원 사격에 나서왔던 금융위는 금융권과 빅테크 간 규제차익도 없앤다는 방침이다. 빅테크들은 금융당국으로부터 혁신 서비스로 지정돼 완화된 규제를 적용받거나 금융업자로 등록되지 않아 규제 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은행들 사이에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불만이 컸다. 고 위원장은 취임 후 줄곧 금융사와 빅테크의 규제 차이 해소를 위해 '동일기능, 동일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혀왔다. 그는 “금융혁신 과정에서 정부는 금융권과 빅테크 간 불합리한 규제차익이 발생하지 않는 공정한 경쟁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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