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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호기심 천국] 세계 역사에 남은 재난 ‘런던 대화재’가 ‘최초의 화재보험’을 낳았다?

기사입력 : 2019-09-1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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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의 변화가 불러온 보험의 탄생 이야기

△사진=픽사베이이미지 확대보기
△사진=픽사베이
[한국금융신문 장호성 기자]

# 1666년 9월 2일 주일날이었다. 하녀 몇이 오늘 잔치를 준비하기 위해 어젯밤 늦게까지 자지 않고 있었는데, 제인이 새벽 세 시쯤 우리를 깨워 시내에 큰불이 났다고 알려주었다. (중략) 우리는 어둠 속에서 다리 이쪽에서 저쪽까지 불길이 하나의 아치를 그리고, 또 언덕 위쪽으로 활 모양을 그려 1마일이 넘는 불의 아치를 이루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교회와 집들이 한꺼번에 불타고 있었고 쓰러지는 집들의 부서지는 소리가 불길 속에서 쏟아져 나오며 사람의 마음을 괴롭혔다.

이 글은 영국의 행정관이었던 새뮤얼 핍스가 남긴 ‘런던 대화재(Great Fire of London)’와 관련된 회고록이다. 런던 대화재는 1666년 9월 2일 새벽 2시경, 런던의 한 빵 공장에서 일어난 불이 시내로 번진 대화재를 말한다.

17세기 런던은 급격한 도시화 현상으로 인해 인구가 몰리면서 판자로 지은 임시 목재건물이 우후죽순 세워져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발생한 당시 화재는 소방담당자의 무책임으로 인해 조기에 진화되지 않으면서 무려 5일간 1만 3000채의 집을 태웠다. 그 결과 런던인구 8만 명 중 7만여 명이 집을 잃고 노숙자가 되는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1년 뒤, 치과의사였던 니콜라스 바본은 화재 피해자 구제와 더불어 앞으로 발생할지 모를 만약의 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사무실을 열었다. 이 때 그가 열었던 사무소(fire office)가 오늘날 ‘OO화재’ 등으로 불리는 ‘화재보험’의 시초로 알려져있다.

런던 시민들의 큰 지지를 얻은 이 사무소는 빠르게 성장해 세력을 키웠고, 이 성공을 벤치마킹해 수많은 화재보험사들이 설립됐다. 이전에도 화재로 인한 피해를 보상해주는 보험의 개념은 존재했으나, 상인조합이나 공제 등에서 제한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런던에서 시작된 화재보험은 일반 시민들에게도 개방된 최초의 화재보험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중세시대 사람들은 화재나 태풍 등의 재난을 ‘신이 주신 시련’이라고 여기며 당연히 감내해야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17세기 과학혁명과 함께 ‘신’의 존재가 의심되고, 부르주아 계층을 중심으로 ‘사유재산’을 지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늘면서 화재보험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화재보험이 성공을 거두자 이후 유럽 등지에서는 해상보험과 자녀보험, 배상책임보험 등 다양한 보험들이 속속 등장하며 본격적인 보험업의 태동을 알렸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격언이 말해주듯, 오늘날 보험의 형태 또한 인간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발명된 ‘필요의 산물’이 아닐까.

장호성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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