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미국 은행 역사상 처음 나타난 블록체인 기술 도입을 위한 최대 규모의 집단행동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은행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운 연합의 명분은 금융인프라 현대화다. 하지만 본질은 암호화폐 기업이 주도하는 스테이블코인 공세에 맞선 은행권의 생존전략이라고 봐야 한다.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낸 ‘미국 은행권의 토큰화 예금체계 구축 현황 및 전망’ 자료에서 미국 주요 은행들의 스테이블코인 대응책을 분석하고 금융권의 관심을 환기했다.
스테이블코인 공세에 월스트리트 반격
미국 주요 은행들이 스테이블코인 발행 대신에 토큰화 예금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규제 리스크에 대한 복잡한 속내가 깔려 있다.토큰화 예금은 기존 예금을 블록체인상 디지털 형태로 전환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예금자보호가 그대로 적용된다. 또 은행 대차대조표와 당국의 기존 규제체계 내에서 작동한다. 이런 점 때문에 마이클 바 전 연방방준비제도 감독 부의장은 토큰화 예금이 스테이블코인보다 훨씬 견고하다며 토큰화 예금을 금융 ·온체인 결제 생태계에 통합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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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큰화 예금의 핵심적인 특징은 기존 결제망(RTP·CHIPS)과 연계된다는 점이다. 연중무휴로 결제 즉시 정산이 가능하고, 스마트계약 기반의 프로그래머블 페이먼트로 결제를 자동화할 수도 있다. 토큰화 예금의 초기 타깃은 다국적 대기업들이다. 다국적기업들은 자금관리 자동화·실시간 유동성 관리·신속한 국경간 결제를 통해 이점을 향유할 수 있다. JP모건이 자체 운용해온 JPM코인을 미국 은행권 전체로 확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 금융권 대응전략 강구 ‘발등의 불’
한국 금융권은 이 같은 미극 금융권에서의 변화 흐름을 마냥 지켜볼 여유가 없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주도하는 '프로젝트 아고라'에 한국은행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은행 6곳이 이미 참여하고는 있지만 실험단계라는 게 한계다. 변화의 주도권을 잡으려면 속도를 더 낼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다.미국이 2027년 상반기 토큰화 예금 상용화를 목표로 달리는데 국내에서는 토큰화 예금에 관한 법적 근거조차 불분명하다. 전자금융거래법·은행법의 기존 프레임에서는 블록체인 기반의 프로그래머블 결제가 빠져 있다.
한국 금융권이 뒤쳐지지 않으려면 관련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미국이 CLARITY Act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규율하면서도 토큰화 예금을 별도 트랙으로 제도화하는 것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두 가지 디지털 화폐 형태 모두에 대해 명확한 규제 체계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국내 은행권의 공동 대응 틀도 필요하다. 미국 TCH 같은 은행 공동소유 결제인프라가 없는 한국은 개별 은행들이 파편적으로 대응하다가는 실기할 우려가 크다.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와 역할 분담 논의도 구체화해야 한다. 프로젝트 아고라 방식처럼 중앙은행 준비금과 시중은행 토큰화 예금을 통합원장에서 운용하는 모델은 한은의 CBDC 전략과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다.
블록체인 기반 온체인 결제 시장은 토큰화 예금과 스테이블코인이 영역별로 분화·공존하는 방향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높다. 기관·도매 결제는 토큰화 예금이, 소매·크립토 영역은 스테이블코인이 각각 강점을 갖는 구도다.
한국 금융 당국과 은행권이 이같은 지형 변화를 읽지 못하고 규제 공백 속에 표류하면 결제 인프라 주도권은 미국과 글로벌 대형 은행들이 설계한 네트워크 규칙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 월스트리트의 집단적 움직임으로 선점 경쟁은 이미 막이 올랐다.
장종회 한국금융신문 기자 jh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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