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센터(KCIF)가 발표한 ‘대만 사례를 통해 본 우리경제 성장 여력 점검’ 보고서는 한국과 대만의 격차 원인을 단순한 수출액 차이가 아닌 ‘쏠림의 질, 중국의 추격 속도, 국내 산업생태계의 파급력’이라는 구조적 차이에서 찾고 있다.
반도체 호황에 한국도 잰걸음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귀환으로 한국 경제의 외형은 완연한 회복세다. 올해 1~3월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은 608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27% 급증했다. 이 추세라면 연간 반도체 수출 증가율은 70%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전망이다.증시 역시 뜨겁다. 올해 코스피 상승률은 78%(5월 18일 기준)에 달해 대만(41%)과 전 세계 평균(8%)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역대급 장기공급 계약(3~5년) 확충과 선급금(약 20%) 유입으로 기업의 내실이 단단해진 결과다. 주가 상승분의 1.3%가 소비로 연결되는 한국 경제 특성상 민간소비 활성화라는 선순환 기대감도 무르익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표의 화려함' 뒤에는 대만과 비교했을 때 뼈아픈 구조적 취약성이 숨어있다.
대만 ‘전방위 생태계’ vs 한국 ‘메모리 외길’
실물 경제의 기초체력을 보면 대만은 한국보다 한 수 위다. 대만은 지난해 8.7% 성장에 이어 올해도 8.0% 고성장이 예견되며 2년 연속 8%대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GDP 대비 수출 비중(대만 73% vs 한국 45%)과 수출 중 반도체 비중(대만 33% vs 한국 20%) 모두 대만이 압도적으로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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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메모리 편중은 자국 내 고용과 낙수효과의 한계로 직결된다. KDI 분석에 따르면 한국 반도체 산업의 타 부문 수요 유발 효과는 0.09로 자동차(0.49), 선박(0.45)의 5분의 1 수준이다. 취업유발계수도 2.1명으로 전체 제조업 평균(6.2명)의 3분의 1에 그친다. 바클레이즈의 지적대로 최근의 수출 호조가 물량 확대보다 '가격 상승'에 기인한 탓에 국내 고용이나 중간재 공급망으로 온기가 퍼지지 못하는 구조다. 반면 대만은 시가총액 100억~1,000억 달러 규모의 중대형 반도체 생태계 기업(미디어텍, UMC 등)이 6개나 포진해 반도체 호황의 과실을 경제 전반이 골고루 나누어 갖고 있다.
턱밑까지 차오른 중국의 범용 침식
가장 시급한 위험은 중국의 무서운 추격 속도다. 대만이 3나노 이하 최첨단 공정의 90% 이상을 독점하며 독점적 초격차를 유지하는 반면 한국의 주력인 범용 메모리 시장은 중국의 직접 타격권에 들어섰다. 중국 창신메모리(CXMT)의 DDR5 출하량 기준 점유율은 2025년 초 1%에서 연말 7%로, LPDDR5는 0.5%에서 9%로 폭증했다. 실제 한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비중은 2017년 40%에서 2026년 1분기 34%로 축소됐고, 수입 비중은 32%에서 39%로 늘어나 안마당까지 중국산 범용 반도체가 침투하고 있다.여기에 국내 '여타 산업의 부진'은 반도체 외길 성장의 위험을 가중시킨다. 지난해 자동차를 제외한 제조업 생산이 역성장(-0.1%)하고 건설투자가 부동산 PF 리스크 등으로 10% 급감하면서, 반도체가 벌어온 세수와 정책 여력이 내수 활성화로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소득 계층별·산업별 양극화가 심화되는 'K자형 경제 공동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파운드리 틈새와 융합 생태계 ‘돌파구’
한국 경제에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AI 칩 주문 폭증으로 대만 TSMC의 인도 대기 기간이 6개월 이상 장기화하고 대만 내 전력난 우려가 겹치면서 빅테크들의 시선이 한국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TSMC의 3분의 2 수준의 웨이퍼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테슬라와 AI 칩 계약을 성사시켰고,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의 추가 수주 가능성도 열려 있다. 조선(자율운항 선박), 기계(데이터센터 변압기), 방산(무인기)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전통 산업의 반도체 연관 범위를 넓히는 복합 융합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장기적으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고령화와 혁신 둔화로 인해 2020년대 후반 1.8%에서 향후 1%대 초반까지 급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분간 이어질 메모리 사이클 호황에 안주할 여유가 없다. 이번 슈퍼사이클을 메모리 단가 상승에 따른 착시 효과를 즐기는 기간이 아닌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전면 재구축하고 산업 간 파급 경로를 복원하는 마지막 '골든타임'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종회 한국금융신문 기자 jh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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