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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이탈·건전성 악화”…은행권 속앓이 ['횡재세 법안' 발의, 금융권 파장은]

기사입력 : 2023-11-15 18:00

(최종수정 2023-11-1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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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은행 철수 우려도…금융당국, 도입 신중론

“주주 이탈·건전성 악화”…은행권 속앓이 ['횡재세 법안' 발의, 금융권 파장은]이미지 확대보기
[한국금융신문 한아란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고금리 장기화로 막대한 이자 이익을 낸 은행권의 초과이익을 환수하는 이른바 ‘횡재세(windfall tax·초과이윤세)’ 도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은행권에서는 주주 이탈과 배임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은행의 손실흡수능력이 줄면서 거시 건전성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전날 일명 횡재세 법안인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부담금관리 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금융회사가 직전 5년 동안 평균 순이자수익의 120%를 초과하는 순이자수익을 얻을 경우 해당 초과 이익의 4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상생금융 기여금’을 내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김성주 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에 따르면 2023년 회계연도부터 이 법안을 적용할 경우 올해 상반기 이자 순수익을 고려할 때 은행권에서 약 1조9000억원의 기여금이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김 수석부의장은 “은행권의 금리 인상으로 작년과 올해 막대한 이자 순이익을 얻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통과시켜서 올해 이자 순수익에 대해서 기여금을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해당 법안에 대해 예산부수법안 지정도 신청했다.

걷힌 기여금은 장애인·청년·고령자 등 금융 취약계층과 소상공인 등 금융소비자의 금융 부담을 완화하는 데 사용된다. 기업은 이미 법인세를 내고 있어 횡재세를 도입하면 이중과세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부담금 형태로 환수하는 방식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횡재세는 일정 기준 이익을 얻었을 때 이익 초과분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을 의미한다. 현재 체코, 리투아니아, 스페인, 헝가리 등이 은행에 횡재세를 부과하고 있다. 횡재세를 부과하면 재정 확보와 소득 재분배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미 법인세를 내는 기업에 또 세금을 물린다는 점에서 이중과세 등 위헌 소지가 크다는 문제가 있다.

고금리에 따른 은행들의 이자이익이 날로 늘어나자 정치권에서는 야당을 중심으로 횡재세 도입 목소리가 커져왔다. 올 초에도 고금리 기조로 서민의 상환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이자 장사로 막대한 이익을 남겨 성과급·퇴직금 등 ‘돈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횡재세 도입 필요성이 거론된 바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해 이자이익은 총 36조9288억원으로 전년(30억3062억원) 대비 21.9%(6조6326억원) 증가했다. 지난 2020년(27조309억원)과 비교하면 10조원 가까이 늘었다. 올해도 이자이익 증가세는 이어지고 있다. 5대 은행의 올 3분기 누적 이자이익은 30조9366억원으로 전년 동기(28조8052억원)와 비교해 7.4% 늘었다.

은행권은 횡재세 도입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간 은행 이자 장사에 대한 여론이 악화돼온 데다 횡재세 도입 여부를 두고 정부와 여야 간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만큼 섣불리 반대 의견을 공론화하는 것에는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하지만 실제로 횡재세가 도입될 경우 당장 외국인 주주 이탈과 배임 논란이 불거질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4대 금융지주의 외국인 지분율은 60~70% 수준으로 외국인 비중이 높다. 실제 이탈리아에서는 지난 8월 정부가 은행권 초과 이익의 40%를 횡재세로 부과한다는 방침을 발표한 뒤 은행주가 폭락한 바 있다. 당시 이탈리아 은행주 지수는 7.3% 급락했고, 유로존 은행지수(SX7E)도 3.7% 하락하며 이탈리아발(發) 금융 불안이 유럽 금융권으로 확산했다. 결국 유럽중앙은행(ECB)까지 나서 철회를 권고하자 이탈리아 정부는 은행이 납부해야 할 세금의 2.5배를 준비금으로 쌓도록 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금융당국이 은행들에 횡재세 성격의 초과이익 환수 방안을 검토한다는 보도 이후 배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초과이익의 일부를 세금으로 거두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준비금을 적립하는 방향이라면 순익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없겠지만 배당에는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주주가 있는 민간기업인데 횡재세가 도입되면 주주 이익 침해뿐 아니라 배임 문제도 제기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은행 경영진은 배임 논란을 피하기 위해 위헌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영업 환경이 악화된 외국계 은행이 국내 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은행의 손실흡수능력이 줄면서 금융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안정적으로 수익을 확보하면서 건전성을 유지해 경제위기 때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한다”며 “횡재세로 은행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고 외국인 투자자 이탈 시 자금 조달에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미 은행권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취약계층 등에 대한 금융지원 방안을 발표하며 상생금융 규모를 늘리고 있다”며 “여기에 횡재세까지 부과해야 하는 것은 과도한 압박”이라고 토로했다.

임형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앙은행 통화정책, 은행 자금조달 전략 및 사회공헌활동 등에 있어 한국은 유럽과 다른 상황인 만큼 초과이득세 도입 필요성이 높지 않다”며 “ECB 양적완화조치에 기인해 예금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없었던 유로지역 은행과는 제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초과이득세 논의의 실효성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횡재세 도입을 두고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주현닫기김주현기사 모아보기 금융위원장은 지난 9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횡재세 문제는 장단이 있어 여러 고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횡재세 같은 세금보다는 가이드라인 관점에서 햇살론 등 정부 서민금융 상품에 은행의 출연이 이뤄지도록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윤창현닫기윤창현기사 모아보기 국민의힘 의원의 지적에는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며 “다각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서민 이자 부담은 날로 증가하는데 반대급부로 은행 이익은 역대 최대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횡재세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이 같은 맥락에서 횡재세 도입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횡재세 도입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추경호닫기추경호기사 모아보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횡재세 도입에 대해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검토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한덕수닫기한덕수기사 모아보기 국무총리도 지난 10일 “횡재세 도입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며 “도입 시 그 회사들이 대외 여건에 의해 손해를 보면 또 국가가 보조금을 줘야 하는가. 횡재세보다는 환경이 좋아서 돈을 많이 벌었으면 기존 누진적 세금 체계를 통해 내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횡재세 도입보다는 은행에 출연·기부금 등을 확대해 서민금융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올 연말까지 정책 서민금융 효율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해당 방안에는 서민금융 재원 확충 등의 내용이 담긴다.

이와 관련해 서민금융상품에 출연하는 은행의 부담금을 늘리는 방안이 거론된다.은행 등 금융사는 지난 2021년부터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서민금융법) 시행령’에 따라 가계대출 잔액의 0.03%를 서민금융 재원으로 출연하고 있다. 0.1% 범위에서 출연요율을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어 정부가 국회 의결 없이도 은행 부담 비율을 높일 수 있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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