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닫기윤석열기사 모아보기 대통령이 연일 은행권을 향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후속 대책을 놓고 금융당국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고금리 장기화로 막대한 이자 이익을 낸 은행권의 초과이익을 환수하는 이른바 ‘횡재세(windfall tax·초과이윤세)’ 도입 추진에 나섰다.
다만 추가 징세를 통해 초과 이익을 환수할 경우 이중과세 등 위헌 논란과 금융시장 교란과 같은 부작용 우려가 있는 만큼 금융당국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횡재세 대신 은행의 출연금이나 기부금을 확대해 서민금융상품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올 연말까지 정책 서민금융 효율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해당 방안에는 서민금융 재원 확충 등의 내용이 담긴다. 이와 관련해 서민금융상품에 출연하는 은행의 부담금을 늘리는 방안이 거론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진행한 내년도 예산안 관련 국회 시정연설에서 “장기간 지속돼 온 고금리로 생계비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며 “서민금융 공급 확대를 통해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부담 완화 노력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은행 등 금융사는 지난 2021년부터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서민금융법) 시행령’에 따라 가계대출 잔액의 0.03%를 서민금융 재원으로 출연하고 있다. 0.1% 범위에서 출연요율을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어 정부가 국회 의결 없이도 은행 부담 비율을 높일 수 있다.
은행권 이자이익은 지난해 55조9000억원으로 전년보다 9조9000억원 늘면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올 상반기 은행이 거둔 이자이익은 1년 전보다 12% 증가한 29조4000억원에 달한다.
고금리에 따른 은행들의 이자이익이 날로 늘어나자 정치권에서는 횡재세 도입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횡재세는 일정 기준 이익을 얻었을 때 이익 초과분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을 의미한다.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7일 정무위원회의 금융당국 종합 국정감사에서 금융당국이 추진해 온 상생금융의 한계를 지적하며 유럽 각국의 횡재세 도입 움직임을 언급했다.
김 의원은 “조세저항, 소급 금지 원칙 위배 등 초과이윤세 도입에 논란이 있을 수 있어 유럽연합(EU)은 연대기금을 도입하고 있다”며 “법인세에 대해서도 지난 4년간 20% 넘게 이익이 늘어난 부분을 초과 이윤으로 보고, 여기서 거둬들인 세금을 에너지 취약계층과 중소기업의 쓰는 방안을 우리나라도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U는 지난해 12월부터 화석연료 기업으로부터 횡재세 격의 ‘연대 기여금’을 걷어 일반 가정과 중소기업 등을 지원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을 포함한 모든 전력생산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지난 4년간의 평균보다 20% 넘게 늘어난 이익을 초과이윤으로 보고 이에 대해 최소 33%의 세율로 부과하는 것이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은행에 일종의 횡재세를 부과하는 서민금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준금리가 1%포인트 이상 오르는 금리 상승기에 은행들의 이자 순수익이 직전 5년 평균의 120%를 초과하는 경우 초과금의 10%를 서민금융진흥원에 출연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올 초에도 고금리 기조로 서민의 상환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이자 장사로 막대한 이익을 남겨 성과급·퇴직금 등 ‘돈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횡재세 도입 필요성이 거론된 바 있다.
정부는 그간 횡재세 도입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추경호닫기추경호기사 모아보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 2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기업이 때로는 경기나 시장 여건에 따라서 이익을 볼 때도 있고 손실을 볼 때도 있다”며 “돈을 번 만큼 누진적 법인세를 많이 내서 기여하면 되는 것이지 횡재세는 우리의 시장 원리나 경제 기본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횡재세 도입을 두고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주현닫기김주현기사 모아보기 금융위원장은 최근 국감에서 횡재세 관련 질의에 “고금리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나라마다 정책내용이 다른 것은 각 장단점이 있고 그 나라 특유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 정부의 생각은 어려운 분들이 고비를 넘기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다는 것”이라며 “어떤 방법이 좋은지는 여러가지를 고려해 우리나라의 특성에 맞게끔 하겠다는 원칙 하에서 보고 있다. 종합적으로 계속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체코, 리투아니아, 스페인, 헝가리 등이 은행에 횡재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지난 8월 1년간 은행 순이자수익의 40%를 횡재세로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횡재세를 부과하면 재정 확보와 소득 재분배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미 법인세를 내는 기업에 또 세금을 물린다는 점에서 이중과세 등 위헌 소지가 크다는 문제가 있다.
이와 함께 시장 교란이나 민간기업인 은행의 외국인 투자자 이탈 우려 등도 제기된다. 실제 이탈리아에서는 횡재세 부과 방침을 밝힌 뒤 은행주가 폭락하자 유럽중앙은행(ECB)까지 나서 철회를 권고하는 등 후폭풍이 거셌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횡재세 도입보다는 은행에 출연·기부금 등을 확대해 서민금융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금융당국이 은행들에 횡재세 성격의 초과이익 환수 방안을 검토한다는 보도 이후 배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초과이익의 일부를 세금으로 거두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준비금을 적립하는 방향이라면 순익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없겠지만 배당에는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임형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앙은행 통화정책, 은행 자금조달 전략 및 사회공헌활동 등에 있어 한국은 유럽과 다른 상황인 만큼 초과이득세 도입 필요성이 높지 않다”며 “ECB 양적완화조치에 기인하여 예금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없었던 유로지역 은행과는 제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초과이득세 논의의 실효성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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