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BNK경남은행에서 발생한 수백억원대 횡령 사건에 이어 KB국민은행 직원들이 고객사 미공개정보를 활용해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가 적발되면서 은행 내부통제 부실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들 직원은 지난 2021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61개 상장사 무상증자 업무를 대행하면서 무상증자 규모 및 일정에 관한 정보를 사전에 취득해 본인 및 가족 명의로 해당 종목 주식을 매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무상증자 공시로 주가가 상승하면 주식을 매도해 시세 차익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총 66억원 규모의 매매 이득을 얻었다.
이번에 적발된 직원 중 일부는 은행 내 다른 부서 동료, 가족, 친지, 지인 등에게 무상증자 정보를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정보 수령자가 얻은 이익 규모도 약 6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본인과 가족 및 친지 지인이 거둔 추정 부당이익 규모는 총 127억원이다.
금융당국이 금융회사에 강력한 내부통제를 주문하고 있고 주요 금융지주가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반복되는 도덕적 해이와 금융사고에 은행 내부통제 시스템이 사실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금융권에서 발생한 횡령 규모는 580억7630억원이다. 지난해(826억8200만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액수다. 지난 2017년부터 올해 7월까지 금융권에서 발생한 횡령 규모는 1816억590만원에 달했다. 2017년 89억8870만원에 그쳤던 횡령 액수는 2021년 156억4860만원으로 급등한 뒤 매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업권별 횡령 금액은 은행이 1509억8010만원으로 전체의 83.1%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도 금융사들의 자율적인 내부통제 기능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대형 금융 사고가 잇달아 터지자 금감원은 지난 17일 17개 은행장들을 소집해 은행장이 주관해 직접 내부통제 시스템이 실효성 있게 작동하는지를 종합 점검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은행장들은 이달 말까지 내부통제 혁신방안 이행 상황과 최근 사고 관련 유사사례, 사고 예방을 위한 내부통제 현황을 점검하고 결과를 금감원에 제출해야 한다. 이와 함께 금감원은 단기 실적 위주의 성과지표(KPI)를 개선하고, 위법·부당사항에 대해 관용 없는 조치를 내리는 등 내부통제에 대한 자체 유인체계를 마련해달라고 당부했다.
금감원도 사고 예방을 위한 감독·검사 기능을 강화하기로 했다. 당분간 정기 검사 시 본점과 영업점의 현물(시재) 검사를 확대하고, 은행 자체점검에 대해서도 교차검증을 실시할 예정이다. 은행 경영실태평가에서 내부통제 평가 비중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금융당국은 은행 고위 경영진에게 내부통제 관리 의무를 부여하고 책무구조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지배구조법 개정안의 조기 입법에도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금융당국이 지난 6월 발표한 ‘금융회사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은 금융사가 임원별 내부통제 책무를 사전에 명확히 구분하고, 각 임원이 금융사고 방지 등 내부통제 의무를 적극적으로 이행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방안에 따라 금융회사 대표이사는 임원별로 내부통제 책임을 배분한 ‘책무구조도’를 작성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올 하반기 중 지배구조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공포 1년 이후 금융지주와 은행 대표이사는 책무구조도를 마련해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금융권에서 많은 내부통제 관련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금융권 자체적인 노력이 상당히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기본적으로 지배구조법 개정안의 취지가 금융권 스스로 내부 통제 제도를 만들어서 잘 이행해야 한다는 측면이 많기 때문에 법안이 통과되기 이전에라도 금융권에 그런 취지에 맞게 가능하면 빨리 내부통제에 대해 자율적으로 노력하라는 메시지를 계속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개정안에 최고경영자(CEO) 처벌과 관련한 내용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주현닫기김주현기사 모아보기 금융위원장은 지난 16일 내부통제 부실과 관련한 CEO 제재 가능성에 대해 “누구든지 잘못했으면 책임을 지고, 그런 모습을 통해 긴장하고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며 “CEO뿐만 아니라 감독당국도 필요하면 잘못한 사람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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