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출범한 윤석열닫기윤석열기사 모아보기 정부는 지난 1년간 은행 개혁을 주문하며 은행 과점체제 해소와 금리 안정에 힘써왔다. 은행 경쟁 촉진을 위한 작업에 착수하는 한편 취약 차주 보호를 강조한 결과 급격한 금리 인상기 속 이자 부담을 소폭 낮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은행 지배구조 선진화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면서 주요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 교체도 이뤄졌다. 다만 은행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반복되면서 ‘관치’가 제도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졌고, 외국인 투자자가 금융주에서 이탈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지난해 금융권에는 대규모 CEO 교체 바람이 불었다. 윤석열 정부 취임 이후 5대 금융지주 중 회장 임기가 만료된 3곳의 수장이 모두 바뀌었다.
3연임이 유력했던 조용병닫기조용병기사 모아보기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작년 말 사모펀드 불완전 사태 등의 책임을 지고 연임 대신 용퇴를 결정했다. 이에 신한금융은 차기 회장 후보에 진옥동닫기진옥동기사 모아보기 당시 신한은행장을 선정했다.
농협금융은 지난해 12월 손병환닫기손병환기사 모아보기 회장의 후임으로 이석준닫기이석준기사 모아보기 전 국무조정실장을 선임했다. 지방금융지주인 BNK금융도 지난 1월 빈대인닫기빈대인기사 모아보기 전 부산은행장을 차기 회장으로 선정했다. 전임 김지완닫기김지완기사 모아보기 회장은 자녀와 관련한 의혹이 불거지면서 지난해 11월 7일 조기 사임을 결정했다.
당초 금융권에서는 각 금융지주가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고 있는 데다 그룹 후계 구도 등을 고려했을 때 임기가 만료된 회장들의 연임을 유력하게 전망해왔다. 하지만 신한금융을 시작으로 분위기가 바뀌면서 금융권의 장기 집권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정부가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원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원장은 같은달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들을 소집해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유능한 경영진의 선임이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권한이자 책무”라며 “CEO 선임이 합리적인 경영승계 절차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신한금융과 NH농협금융을 시작으로 BNK금융과 우리금융에서도 새로운 인물이 회장으로 낙점되면서 금융권의 연임 관행이 막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대통령이 금융지주 지배구조 투명성을 강조한 데다 금융당국도 관련 제도 개선에 나서면서 금융지주 CEO들이 우호 세력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통해 임기를 수차례 연장하는 행태는 앞으로 보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말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주인이 없는, 소유가 완전히 분산된 기업들은 과거 공익에 기여하는 기업들이었기 때문에 지배구조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에는 적어도 그 절차와 방식에 있어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특히 “은행은 국방보다도 중요한 공공재적 시스템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설립 대신 인허가 형태로 운영 중이고 과거 위기 시 은행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구조조정했던 경험이 있는 만큼 공정하고 투명한 은행의 거버넌스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을 두고 금융권 안팎에서는 정부가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봤다. 김주현닫기김주현기사 모아보기 금융위원장은 업무보고 사전 브리핑에서 “주인 없는 조직에서 CEO를 어떻게 선임하는 게 맞는 건지, 지금의 인사시스템이 누구나 납득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가진 건지 따져봐야 한다”며 “내부통제 사고와 관련해 임원 선임 절차를 개선할 여지가 있는지도 충분한 논의를 거쳐 제도개선 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임원 책임 명확화를 통해 금융권 내부통제 제도를 개선하고, 임원 선임 절차의 투명성 제고 등을 위한 제도개선을 추진할 방침이다.
◇ “은행 과점 폐해 크다”…제도 개선 착수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경쟁 촉진 방안을 수립하라’는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은행권 과점체제를 해소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은행권은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대출과 기준금리 상승의 영향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뒤 내부 임직원들의 성과급이나 퇴직금을 늘리고 주주 배당 확대에만 몰두해 ‘돈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5대 은행의 지난해 이자이익은 총 36조9288억원으로 전년(30억3062억원) 대비 21.9%(6조6326억원) 증가했다. 지난 2020년(27조309억원)과 비교하면 10조원 가까이 늘었다. 이자이익 확대에 힘입어 이들 은행이 지난해 거둔 당기순이익은 12조6908억원(잠정치)으로 전년(10조7818억원) 대비 17.7%, 2020년(8조6745억원)에 비해서는 46.3% 증가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비상민생경제회의에서 “금융·통신 분야는 민간 부문에서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으나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정부 특허에 의해 과점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며 소비자 금융 부담 완화를 위해 예대마진 축소와 취약차주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우리 은행 산업의 과점 폐해가 크다”고 지적하면서 실질적인 경쟁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감원장에 지시했다. 앞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은행들의 ‘돈 잔치’와 관련한 대책 마련을 지시한 데 이어 은행권의 과점체제로 인한 폐해를 지적하며 거듭 쓴소리를 낸 것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하고 ▲은행권 경쟁 촉진 및 구조개선 ▲성과급·퇴직금 등 보수체계 ▲손실흡수능력 제고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 ▲고정금리 비중 확대 등 금리체계 개선 ▲사회공헌 활성화 등을 6대 과제로 설정했다.
TF는 검토 과제별 현황 파악 및 해외사례 연구 등을 통해 오는 6월 말까지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최고 8%대 넘던 금리 안정화…취약차주 상생방안도
올해 들어 주요 시중은행은 가산금리를 줄이고 우대금리를 늘리면서 잇달아 대출금리를 내렸다. 은행권의 ‘이자 장사’에 대한 대통령과 금융당국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면서 소비자의 실질적인 혜택 체감이 큰 금리인하로 대응에 나선 것이다.
윤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1년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폭은 2%포인트다. 윤 대통령 취임 전 1.50%였던 기준금리는 현재 3.50%로 뛰었고, 이에 따라 대출금리도 급등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7월 예대금리차(대출금리-예대금리) 비교 공시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은행 예대금리차 공시 제도는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금리가 높은 저소득·저신용 서민 대상 정책금융상품을 많이 취급할수록 예대금리차가 커지는 통계 착시·왜곡 현상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8월 통계부터는 정책금융상품을 제외한 예대금리차가 추가로 공시됐다.
새해 초 최고 연 8%대를 넘어선 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현재 6%대로 떨어진 상태다. 지난 3일 기준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신규 취급액 코픽스 연동)는 연 4.950∼6.890%로 집계됐다. 1월 6일(연 5.080∼8.110%)과 비교하면 한 달 새 상단은 0.130%포인트, 하단은 1.220%포인트 하락했다.
대통령의 은행 ‘돈 잔치’, ‘공공재’ 발언 이후 주요 시중은행은 공동으로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마련한 데 이어 자체적인 취약차주 지원방안 등 상생금융 대책도 발표했다. 하나은행은 지난 3월부터 새희망홀씨 대출금리의 신규 취급 적용 금리를 최대 1%포인트 인하했다. 국민은행은 제2금융권 대출 전환 상품인 KB국민희망대출을 출시했다.
신한은행은 소상공인·중소기업 고객 중 코로나19 이차보전 대출 이용 고객을 대상으로 이차보전 기간 종료에 따라 금리가 인상될 대출에 대해 자체적으로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우리은행은 소상공인 생활안정자금 5000억원 긴급대출과 연체이자 납입액 상당의 연체 원금 상환 등을 지원한다.
은행권은 모바일‧인터넷뱅킹 타행 이체 수수료, 대출 중도상환 수수료 등 각종 수수료 면제 조치를 잇달아 실시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지난 1월 금리 상승기 서민·실수요자의 주거비용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특례보금자리론’을 출시했다. 기존 보금자리론에 안심전환대출, 적격대출 등 정책모기지를 통합한 상품으로, 집값이 9억원을 넘지 않으면 소득과 관계없이 최저 연 3%대 고정금리로 최대 5억원을 대출받을 수 있다. 특례보금자리론은 출시 3개월만에 30조9408억원(13만7079건) 규모의 신청이 이뤄지면서 연간 공급 목표인 78%를 채웠다.
급전이 필요한 저신용·저소득 취약 차주를 대상으로는 최대 100만원의 자금을 신청 당일 즉시 빌려주는 ‘소액생계비 대출’을 내놨다. 지난 3월 출시 이후 한 달 만에 총 2만3532명에게 143억3000만원이 지원됐다. 코로나19 피해로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부담을 덜기 위해 새출발기금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도 했다.
◇ 은행 전방위 압박에 ‘관치금융’ 논란도 커져
정부와 금융당국의 은행권 개입이 강해지면서 ‘관치 금융’ 논란도 덩달아 커졌다. 은행연합회는 작년 1월 여야 대선 주자 캠프 측에 “은행 서비스는 공짜라는 인식, 금융산업은 다른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도구와 수단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없애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윤 정부 출범 후에도 은행권을 겨냥한 정부와 당국의 압박이 전방위로 확산하자 금리부터 배당, 보수 체계까지 정부가 간섭하는 것은 시장 논리와 질서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특히 은행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실제로 올해 급상승한 금융주 주가는 윤 대통령의 ‘공공재’ 발언 이후 조정을 받았다. KB금융의 주가는 1월 31일 5만5900원에서 3월 31일 3만7650원으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신한금융지주도 4만1550원에서 3만5350원으로 내렸다. 우리금융지주는 1만2790원에서 1만1410원으로, 하나금융지주는 4만8750원에서 4만700원으로 떨어졌다.
외국인 투자자는 1월 말부터 두달 간 KB금융을 434억원 규모로 매도했다. 신한금융은 287억원, 하나금융은 104억원, 우리금융은 56억원어치 각각 팔아치웠다. 이 기간 코스피는 2425.08에서 2476.86으로 2.14% 상승했다.
은행권에서는 주주가 있는 민간기업인 만큼 정부의 개입과 압박이 과도하다는 불만이 커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 측면에서 상생 금융을 확대하고 있지만 최근 경기침체 등에 대비한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며 “은행은 이익을 내 충당금을 쌓는 등 건전성을 유지해야 하고 동시에 주주들에게 배당을 해야 하는 민간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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