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4주년 특별연설 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며, “부동산만큼은 정부가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됐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간 국토부 등 각 부처 장관이나 국회의원들이 정책 실패를 두고 사과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대통령이 나서 ‘할 말이 없다’며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게재 순서]
① ‘공급 충분하다’는 잘못된 믿음, 세대분화·자가점유 함정
② 임대차법에 흔들린 전월세시장…정책도 오락가락
③ 뒤늦은 대규모 공급대책, 내부 비리에 발목 잡혀
문재인정부 최장수 임기를 보낸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주택공급보다는 시장규제에 집중했고, 그 결과 성과보다는 시장혼란을 더 크게 야기했다.
시장과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쏟아내자, 정부는 뒤늦게 변창흠 전 LH사장을 문재인정부의 2대 국토부장관으로 임명했다. 변창흠 전 장관은 세종대학교 주임교수를 거쳐 한국도시연구소 소장,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등을 거친 부동산·도시계획의 전문가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따라서 공급 태부족이라는 현 정부의 부동산 문제점을 해결해줄 적임자로 기대를 모았다.
이러한 기대대로 변 전 장관은 취임 직후 현장은 물론 서울시를 비롯한 유관기관, 부동산 전문가들과의 적극적인 간담회가 협의를 거치며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취임 초기 변 전 장관의 행보를 두고 업계 한 관계자는 “김현미 장관 시절에는 이런 간담회 자리가 거의 없었는데, 변 장관 체제에서는 무언가 변화가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변 장관 취임 2개월 후, 정부는 2025년까지 서울 32만 호, 전국 83만 호의 주택 부지를 추가로 공급하는 ‘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해당 대책은 공공이 사업을 주도하는 대신 용적률와 층수 등 건축규제와 기부채납 비율을 대폭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부는 해당 대책을 발표하며 “도시가 변화하지 못하고 쇠퇴하는 것은 토지주, 세입자, 상인들의 이해관계가 다양․복잡하고, 마땅한 개발수단이 없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어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은 그간 도심 공급에 큰 역할을 해왔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조합원간 이해상충으로 사업에 장기간이 소요되었다”고 설명했다.
홍남기닫기홍남기기사 모아보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4대책을 두고 "공급 쇼크 수준"이라고 평가하며 주택시장의 안정세를 확신하기도 했다.
◇ 文정부 부동산대책에 대못 박은 LH, 사전투기 사태에 공공주도 신뢰성 나락으로
실제로 2.4대책이라는 굵직한 공급 시그널이 시장에 전해지자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 상승폭이 완화되는 등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는 듯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청사진은 LH의 내부 비리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3월 2.4 부동산대책 후속으로 발표된 6번째 3기신도시 광명·시흥 토지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사전에 사들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토지대장 등에서 LH 직원 여러 명이 지분을 나눠 매입한 정황을 확인했다"며 "이는 공직자윤리법상 이해충돌 방지의무 위반과 부패방지법상 업무상 비밀이용 금지 위반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합동조사 결과 이러한 의혹이 충격적이게도 사실로 밝혀지면서, ‘공공주도’를 핵심 키워드로 내세웠던 정부의 공급대책 신뢰도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일부 LH 직원들이 블라인드(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서 “LH 직원이면 투자도 못하냐”며 적반하장식의 대응을 내놓으면서 여론을 더욱 악화시키는 사태도 발생했다.
부동산 한 전문가는 “광명시흥 자체는 예전부터 투자 유망지역으로 여러 곳에서 거론됐던 장소이므로 투자가 이뤄져도 이상할 것은 없지만, 100억 원대라는 거액의 투자금이 공공기관 직원을 통해 거래됐다는 부분은 충분히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바닥을 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동분서주해도 모자랄 마당에 이런 논란이 터진 것은 상당히 치명적”이라고 덧붙였다.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도 “자기들의 도덕성도 제대로 관리 못하면서 공공주도를 하겠다며 땅을 내놓으라는 것은 앞뒤가 안맞는다”, “예전부터 이상한 낌새가 많았는데 이제야 터질 것이 터졌다”, "소 잃고 외양간도 제대로 못 고친다"는 등 비판적인 여론이 형성됐다.
LH 사장직을 지냈던 변창흠 전 장관은 결국 역대 최단기 장관이라는 오명을 쓴 채 퇴진했고, 공급대책의 핵심 인물이었던 변 전 장관의 낙마로 정부의 부동산정책 역시 힘을 잃었다.
정부는 부랴부랴 외부 인사이자 재무통으로 손꼽히던 노형욱 장관을 새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선임했지만, 이미 떠나간 부동산 민심을 회복하는 것은 임기 내에는 어려울 전망이다.
장호성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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