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4주년 특별연설 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며, “부동산만큼은 정부가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됐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간 국토부 등 각 부처 장관이나 국회의원들이 정책 실패를 두고 사과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대통령이 나서 ‘할 말이 없다’며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게재 순서]
① ‘공급 충분하다’는 잘못된 믿음, 세대분화·자가점유 함정
② 임대차법에 흔들린 전월세시장…정책도 오락가락
③ 뒤늦은 대규모 공급대책, 내부 비리에 발목 잡혀
문재인정부가 부동산 대책에서 실패를 거둘 수밖에 없었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공급은 충분하다’는 관료들의 잘못된 믿음에서 기인한 것으로 파악된다.
문재인정부의 최장수 국토부장관이었던 김현미 전 장관은 지난 2017년 8.2대책을 내놓으며 “서울과 수도권 주택 공급량은 수요량을 상회한다”며 공급이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지난해에도 김 전 장관은 “서울에서 연간 4만 가구 이상 아파트가 공급되고 있고, 최근 3년간 서울의 인허가·착공·입주 물량도 평균보다 20~30% 많은 수준”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김 전 장관은 국회 국토위 전체회의에서 “2021년과 2022년에 아파트 공급이 줄어든다”며 “그 이유는 5년 전에 아파트 인허가가 대폭 줄었고 공공주택을 취소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는 답을 내놓아 빈축을 샀다.
정부는 이 같은 공급부족의 원인을 1인 가구 증가 등의 ‘세대수 분화’에서 찾았다.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 해 우리나라 인구가 감소를 했는데도 무려 61만 세대가 늘어났고 예년에 없던 세대 수의 증가"라면서 "저출산 상태가 오래 지속됐는데 그렇게 많은 세대 수가 늘어나는 연유는 앞으로 좀 더 분석해 봐야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세대가 늘어난다고 해서 꼭 주택을 구입하거나 임대하는 수요층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세대가 늘어나는 만큼 주택 수요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대통령의 말대로 1인 가구 비중은 나날이 늘고 있다. 4월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올해 인구통계 자료에 따르면 3월 31일 기준 1인 가구는 전체 가구(2315만7385가구)의 39.5%인 913만9287가구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10년 전인 2011년 3월(662만9832가구) 보다 250만9455명(37.85%) 증가한 수치다.
◇ 이미 천정부지로 높아진 서울 집값, 주택보급률은 높은데 자가점유 비율은 낮아
신규 공급이 이뤄진다고 해도, 실수요자들이 주택을 구매하기에는 이미 집값이 너무나도 비싸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대출규제를 완화한다고 해도, 사실상 ‘부모찬스’ 등의 대안 없이 청년층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을 마련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인 실정이다.
KB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올해 4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맷값은 11억1123만원으로 지난달보다 1130만원 올랐다. 2008년 12월 처음 통계를 작성한 이후 처음으로 11억 원대에 진입했다.
같은 기간 수도권 아파트 중위 매매 가격 역시 7억564만원으로 7억 원을 넘어섰고, 경기도 아파트 중위 매매 가격은 5억790만 원으로 5억 원을 넘겼다. 중위가격이란 주택이나 아파트를 가격 순서대로 나열 했을 때 매매가격이나 전세가격 등에서 가장 중간에 위치하는 주택 또는 아파트의 가격을 말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미 충분한 자산을 축적한 사람들이 추가로 신축단지를 매입해 전월세 매물로 돌리면서, 결과적으로 자가 점유 비율(일반 가구 중 자신이 소유한 주택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주택의 비율)은 높아지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KOSIS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전국 주택보급률은 지난 2019년 기준 104.8%, 서울 96%, 수도권 99.2%로 일견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같은 시기 자가점유율은 전국 58%, 서울은 42.7%에 불과했다. 10명 중 4명만이 자가에 살고 있고, 나머지 6명은 전세와 월세, 사글세 등에 흩어져 살고 있는 셈이다.
부동산 한 전문가는 “대출을 아무리 조이고 종합부동산세를 늘린다고 한들 자산가들은 그것을 버틸 수 있는 힘이 있다”며, “그와 같은 정책 방향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자산가들이 아니라 대출길이 막혀 버틸 방법이 없는 무주택·1주택자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정부가 내세웠던 공급대책의 대부분은 공공 임대주택에 치우쳐있었다. 중산층을 위해 보다 질 좋은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해 수요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했으나,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이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책을 펼친 관료들이나 국회의원들은 알짜 입지에 있는 고가 아파트를 수 채 씩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2030세대들은 평생 임대주택에나 살아야 한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은 과거 SNS에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며 “예쁘고 따뜻한 개천 만드는 데 힘을 쏟자”고 적었다. 이를 두고 ‘한번 개천에서 태어났으면 따뜻한 개천 만들어 줄테니 영원히 개천에 살라는 것이냐’는 해석이 나오는 등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장호성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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