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 1992

대한민국 최고 금융경제지

닫기
한국금융신문 facebook 한국금융신문 naverblog 한국금융신문 instagram 한국금융신문 youtube 한국금융신문 newsletter 한국금융신문 threads

[장종회 칼럼] 선즉제인(先則制人)의 시간 맞은 탄소크레딧 시장

기사입력 : 2026-11-09 00:00

  • kakao share
  • facebook share
  • telegram share
  • twitter share
  • clipboard copy

어물쩍 거리다간 ‘기후 청구서ʼ 날아들 판
韓 측정·검증·등록·거래 인프라 시급

▲ 장종회 전무 겸 편집본부장
▲ 장종회 전무 겸 편집본부장
[한국금융신문 장종회 기자] 사마천의 《사기》 〈항우본기〉에는 ‘선즉제인(先則制人, 後則爲人所制)’ 고사가 나온다. 진나라 말기 회계군 태수 은통이 항량에게 반란을 제의하며 건넨 말이다. 먼저 하면 제압하고, 뒤처지면 제압당한다는 뜻이 담겼다. 국제 탄소크레딧 시장에는 이 말이 딱 들어맞는다. 준비가 늦으면 탄소 비용만 더 치르는데 그치지 않는다. 남이 만든 규칙을 따라야 한다. 시장의 주도권까지 내줄 수 있다.

탄소 규제는 이미 기업의 장부에 들어왔다. 당장 내년에는 국제항공 탄소상쇄·감축제도 (CORSIA)가 2단계에 들어간다. 국제선을 운항하는 항공사가 정해진 기준보다 탄소를 더 배출하면 초과분만큼 탄소크레딧을 사서 메워야 한다.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내 항공사들이 2024~2026년 탄소상쇄에 지출할 돈은 3354억 원으로 추산됐다. 대한항공 한 곳의 부담액만도 2260억원에 이른다. 3년간 발생한 상쇄의무를 2028년 1월까지 이행해야 하는데 준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제조업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지난 1월 본격 시행됐다. 철강·시멘트·알루미늄·비료·전력·수소 등이 우선 적용 대상이다. 관련 품목을 EU에 수출하려면 생산 과정에서 배출한 탄소량을 신고하고 상응하는 인증서를 내야 한다. 반도체는 아직 CBAM의 직접 적용 대상은 아니지만 전력과 소재의 탄소 비용은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탄소는 더 이상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에 그치지 않는다. 제품 가격을 바꾸고 수출 계약을 좌우한다. 투자 판단에도 영향을 미친다. 감축 실적을 입증하지 못하거나 규정에 맞는 자료를 내지 못하면 거래처에서 밀려날 수 있다.

탄소크레딧 거래, 신뢰가 핵심

탄소크레딧은 온실가스 1tCO₂e(이산화탄소 환산 톤)을 줄인 실적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인정한 단위다. 배출량을 줄였다는 사실만으로 국제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감축량을 측정하고 보고해야 한다. 독립적인 검증도 거쳐야 한다.

파리협정에 따라 감축 실적을 국가 간 이전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활용하려면 절차는 더 까다롭다. 당사국의 승인과 보고가 필요하다. 이전한 감축량을 양국이 중복 계산하지 않도록 조정해야 한다. 배출권이 정부가 정한 배출 총량 안에서 기업에 할당·거래하는 권리라면 크레딧은 특정 사업에서 실제로 발생한 감축·제거 실적을 인증한 것이다. 가치는 측정 자료와 검증 기록, 소유권, 사용 이력에서 나온다. 이미 사용한 크레딧을 다시 쓰지 못하도록 사용 종료 후 폐기 여부를 확인하고 기록을 영구보존하는 절차도 필수다. 결국 핵심은 숫자라기 보다 인증과 신뢰다.

‘락인효과’ 노리는 글로벌 은행

글로벌 금융사들은 탄소크레딧 거래 인프라를 선점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대표적인 게 카본플레이스(Carbonplace)다. BNP파리바와 UBS, 스탠다드차타드 등 9개 은행이 2023년엔 4500만달러 규모의 투자로 마켓플레이스형 탄소크레딧 정산시스템을 구축했다.

카본플레이스는 여러 등록부에 흩어진 크레딧을 관리하고 거래하는 플랫폼이다. 은행을 통해 구매자와 판매자를 연결한다. 아직 스위프트(SWIFT) 같은 글로벌 금융결제망 수준은 아니지만 거래 규모가 커지면 락인효과가 클 것으로 관측된다.

주목할 대목은 금융인프라 선점경쟁이다. 글로벌 은행은 탄소 데이터와 금융서비스를 연결해 새로운 기업금융 시장을 만들려 한다. 그래서 프로젝트 투자와 대출을 제공하고 크레딧 중개와 가격 관리, 결제, 보관서비스에 나선 터다.

국내 금융사도 미적거리며 탄소크레딧 단순 중개에만 머물러선 안된다. 기업의 탄소 데이터를 읽고 양질의 크레딧을 골라내야 한다. 거래부터 사후관리까지 지원할 역량도 갖춰야 한다. 탄소크레딧 거래소 하나로 경쟁력이 생기지는 않는다. 국제 기준에 맞는 데이터와 검증 체계, 다양한 등록부와 연결되는 인프라가 긴요하다.

감축 넘어 관리·금융인프라로

일본은 자체 온실가스 국체감축 프로그램인 JCM을 통해 해외 감축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JCM 협력국은 34곳에 달한다. 2030년까지 1억t, 2040년까지 2억t의 국제 감축·흡수 실적을 낼 계획이라고 한다.

한국도 일본의 접근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불록체인 기반 탄소크레딧 관리플랫폼 키우다(KIUDA)를 개발해 아프리카, 남미, 중동, 서·남아시아 국가에 인프라 구축을 추진 중인 리챠드윤 대표는 “한국에 시급한 건 탄소 감축 실적을 만들고 거래하는 전 과정을 잇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사업에서는 크레딧의 양보다 질이 먼저다. 값싼 크레딧을 대량으로 확보하는 전략은 오히려 기업 평판과 규제 대응에 부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제 기준과 거래 관행, 금융 서비스가 지금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한국은 탄소를 줄이는 나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감축 실적을 정확히 증명하고 관리해 금융으로 연결해야 한다. 그것이 탈탄소 시대 한국 기업의 생존력을 높이는 길이다.

장종회 한국금융신문 기자 jhchang@fntimes.com

데일리 금융경제뉴스 Copyright ⓒ 한국금융신문 & FNTIMES.com

저작권법에 의거 상업적 목적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 금지

가장 핫한 경제 소식! 한국금융신문의 ‘추천뉴스’를 받아보세요~

issue
issue

오피니언 BEST 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