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필자는 최근 뉴욕의 기자와 인플루언서들을 초대해서 함께 김밥을 만드는 자리를 마련했다. 김밥을 직접 말아본 뒤에 준비한 다른 한식과 곁들여 함께 식사하는 자리였다. 그날 전하고 싶었던 것은 김밥을 만드는 방법만은 아니었다. 김밥 한 줄이 상징하는 한국 음식의 정서와 환대, 그 안에 담긴 식문화가 핵심이었다.
사실 음식의 이름을 알리는 것과 그 음식의 가치를 이해시키는 것은 다르다. 김밥을 먹어본 사람이 재료를 각각 준비하는 과정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닌 것처럼. 한국식 바비큐를 좋아하는 사람이 주문한 고기 옆에 왜 반찬과 쌈, 소스, 밥과 찌개가 곁들여지는지, 그 의미까지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밥 한 입에 담긴 가치
그날 김밥을 소개하면서 아이들의 소풍이나 연인과의 나들이를 위해 김밥을 준비하는 이의 마음을 이렇게 전했다.“김밥을 만들려면 재료를 하나씩 따로 준비해야 한다. 당근은 채 썰어 볶고, 시금치는 데쳐 물기를 짠다. 계란은 지단을 부치고, 불고기는 양념이 잘 배도록 조린다. 밥은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한다.
따로 손질한 재료들이 김 안에서 하나가 되고, 김밥 한 조각에도 여러 재료의 맛이 어우러진다. 간단해 보이는 한 줄이지만, 그 안에는 먹는 사람이 다양한 재료를 맛있게, 골고루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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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한 입에 담긴 것은 재료뿐 아니라, 먹는 사람의 한 끼를 챙기는 마음이라는 생각이었다. “There is a little of everything in each bite”라는 설명에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밥의 가치는 컬러풀한 사진과 재료 목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재료들을 먹는 사람을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조합했는지에 담겨 있다. 경영자로서 해야 할 일은 그 가치를 좋은 의도로만 남겨두지 않고, 손님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음식과 서비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갈비 한 접시인가, 잘 차린 한 끼인가
한국식 바비큐 식당에서 손님이 갈비를 주문하면 식탁에는 고기만 놓이지 않는다. 김치와 여러 반찬, 밥과 쌈 채소, 찍어 먹는 소스가 함께 나온다. 국이나 찌개도 곁들여진다.이렇게 놓여지는 반찬은 영어로 ‘complimentary side dishes’라고 소개된다. 별도 요금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이해하기 쉬운 표현이다. 하지만 그런 표현만으로는 한국식 바비큐에서 왜 고기와 함께 여러가지 반찬을 함께 준비하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
갈비 한 점을 상추에 싸서 밥과 파절이를 올리고, 된장소스와 풋고추를 더하면 고기만 먹을 때와는 다른 식사가 된다. 이렇게 여러 음식을 조합해 즐기는 방식에는 한국의 식문화가 담겨 있다. 반찬을 함께 먹도록 한 것은 단지 맛과 식감을 바꾸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고기와 밥, 채소와 김치를 한 입에 담아 먹게 한 구성에는 손님이 고기 한점에도 여러 음식을 골고루, 맛있게 먹었으면 하는 한국의 정서와 환대 문화가 스며 있다.
한식의 아름다움은 ‘여러 음식이 어우러져 한 끼를 완성하는 한 상의 조화’이다. 그 균형에는 영양 뿐 아니라 진한 맛과 담백한 맛, 따뜻한 음식과 차가운 음식, 부드러운 것과 아삭한 것 사이의 조화도 포함된다.
그런 의미에서 반찬은 갈비를 주문했기 때문에 덤으로 얹어주는 음식만은 아니다. 한 끼 식사를 완성하는 요소다. 별도 가격이 붙어 있지 않다고 해서 그 역할과 가치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잘 차린 한 상을 손님에게 드리려는 한국식 환대가 그 구성 안에 오롯이 담긴 탓이다.
이 차이는 경영자가 식사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와 연결된다. 갈비 한 접시를 중심에 놓고 나머지를 부수적인 것으로 볼 것인지, 갈비와 어우러지는 한 상 전체를 볼 것인지에 따라 손님에게 약속하는 음식의 가치도 달라진다. 필자가 손님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후자다. 고기만 맛있게 먹는 것을 넘어서 함께 준비한 음식으로 만족스러운 한 끼를 즐기는 경험이다.
한국식 환대를 브랜드의 경험으로
한국식 환대(Korean hospitality)의 중요한 지점은 먹는 사람이 ‘한 상 전체’에 관심을 두도록 하는 데 있다. 주문한 음식을 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그 식사를 충분히 즐기고 있는지까지 살피는 것이다.다만 식당에서 이런 환대를 제공하려면 ‘정성껏 대접한다’는 말보다 더 구체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어떤 반찬이 고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지, 쌈과 소스를 어떻게 안내할지, 처음 한식을 먹는 손님에게는 무엇을 설명해야 할지 음식을 내놓는 사람은 염두에 둬야 한다.
무조건 접시를 많이 늘어 놓거나 음식을 더 주는 것만으로 환대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손님이 음식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편하게 먹지 못한다면 준비한 마음이 충분히 전해지기 어렵다. 반대로 짧은 설명 한마디가 식사를 훨씬 즐겁게 만들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경영자의 책임이 크다. 접객하는 입장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직원 개인의 친절이나 손님의 이해에만 맡겨 둘 수는 없다. 식사의 구성과 안내, 서비스 방식이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도록 배치해야 한다. 주방에서 생각한 음식의 조합을 홀에서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메뉴에서 약속한 식사가 실제 식탁에서도 완성되어야 한다.
브랜드의 가치는 경영자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고객이 그것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홍보에서는 정성과 환대를 말하면서 현장에서 음식과 설명이 따로 움직인다면, 의도한 가치는 손님에게 충분히 전달되기 어렵다.
가치는 손님이 느껴야 비로소 전달된다
해외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면서 경계하는 것이 있다. 좋은 음식을 준비했으니 손님도 그 가치를 당연히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식사 방식이 다른 문화의 손님에게도 자연스럽게 읽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에게는 당연한 밥과 반찬의 조합이 누군가에게는 설명이 필요한 경험일 수 있다. 그 차이를 손님의 이해 부족으로만 치부해서는 안된다.그렇다고 음식에 담긴 모든 이야기를 길게 설명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손님은 강의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니라 식사를 즐기러 왔다. 필요한 만큼 안내하고, 음식 자체가 그 설명을 뒷받침하도록 해야 한다.
음식에 들인 수고를 알아 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손님이 식사를 더 잘 즐기도록 돕는 것은 다르다. 한식 운영자로서 하고 싶은 일은 후자다. 이야기는 음식을 실제보다 특별하게 꾸미는 수단이 아니라, 음식 안에 이미 있는 가치를 발견하도록 해주는 안내여야 한다.
한식당이 성장하려면 맛을 재현하는 기준과 지속 가능한 운영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을 반복해서 제공할 것인지에 앞서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약속하는 식당인지부터 분명해야 한다. 한식의 정서와 환대를 브랜드의 가치로 삼았다면, 그 약속이 음식의 구성과 직원의 안내, 손님이 대접받는 경험에서 드러나야 한다.
경영자의 역할은 한식에 좋은 가치가 담겨 있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가치를 손님이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식사로 만드는 데 있다.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나는 한식을 판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식의 맛과 조화, 한국식 환대가 담긴 한 상’의 가치를 판다.
조아라 THE EDITION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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