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하지만 서민금융연구원과 추심업체 등에서는 추심업계 구조조정이 채무자 보호로 이어지기는 커녕 제도권에서 퇴출된 업체와 추심 수요가 음성화해 채무자 피해가 커질 것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5월 28일 발표한 매입채권추심업 개편 방안에 따르면 기존 등록제이던 추심업을 인·허가 체계로 바꿀 예정이다. 인허가 요건 핵심은 법정 자본금 30억원 이상, 상시 고용인원 20명 이상(전문인력 5명 이상)이다.
등록제 여신전문금융사와 형평 어긋나
수십조원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면서 서민 금융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여신전문금융회사(카드·캐피탈사)는 등록제로 관리된다. 그런데 수신 기능이 없고 예금자보호 대상도 아닌 매입채권추심업체에만 높은 진입장벽을 두르는 게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영세 추심업체가 난립하는 것은 오랫 동안 골칫거리로 치부되어 온 게 사실이다. 개인정보 관리가 취약할 수 있고, 내부통제가 부실한 업체도 있는 만큼 불법추심을 막기 위한 당국의 감독 강화는 당연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규모가 작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서민금융연구원 정책연구보고서의 지적이다. 실제 위험은 자본금만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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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화로 채무자 피해 우려 ‘규제의 역설’
시장에는 이미 채권관리와 추심에 대한 수요가 상존한다. 소규모 합법적인 업체를 대거 퇴출시킨다고 해서 채권관리와 추심 수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부 사업이 무등록 추심이나 비공식 거래로 옮겨갈 가능성이 적잖다. 서민금융연구원 보고서는 이를 전형적인 '풍선효과'로 규정한다. 제도권 사업자 수는 줄지만 금융감독 당국이 실제로 들여다볼 수 없는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진단이다.소비자보호를 강화하고 피해를 줄이려고 인가제를 도입하는 것인데 감독할 수 없는 시장이 커지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피해가 집중될 곳은 불법추심에 대응할 법률적·경제적 여력이 부족한 취약 채무자다. 정책이 의도한 보호 대상이 오히려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것이다.
시장건전성 도리어 해칠 수도
부실채권 시장의 경쟁구조도 왜곡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진단이다. 매입채권 추심업체가 대거 사라지면 부실채권을 사들일 수 있는 수요자가 줄고, 채권 매각 경쟁도 약해진다. 그러면 소액·장기연체처럼 회수가 어려운 채권은 대형사가 외면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소수 대형사 중심으로 추심업 시장이 재편되면 매수자의 협상력이 커지고 가격 형성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사업자 수를 줄이는 것'이 '시장건전성을 높이기 보다 해치는 꼴’이 된다는 게 서민금융연구원 측 분석이다.정부의 새도약기금이 부실채권을 매입하도록 하는 방안도 문제 투성이라고 서민금융연구원은 지적했다. 서민금융연구원은 일부 민간업체가 연체채권을 액면가의 15~20% 수준에 매입하는 데 비해 공공 수탁기관의 매입 과정에서는 5~6% 수준의 가격이 제시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인허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업체가 영업을 지속하기 어려울 때 정부의 저가 매입까지 겹치면 사실상 급매 압박으로 받아 들이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물론 민간 취득가격과 공공 매입가격의 격차에는 개별 채권의 특성까지 포함되어 있어 '정부의 강제 헐값 매입'을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다만 그런 불신이 생길만한 구조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금융 규제는 시장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채권추심은 부실채권시장 작동의 한 축
매입채권 추심업은 외형상 금융시장의 변두리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금융회사 등이 보유한 연체·부실채권을 사들여 관리하고 회수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장기 연체채권이나 소액채권을 전문적으로 관리한다는 점에서 부실채권 시장이 작동하는 데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추심업은 동시에 채무자의 개인정보와 금융정보를 다루고 있어 개인 생활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도 만만치 않다. 추심업 건전성을 높이고 불법추심을 막는 게 긴요한 까닭이다. 다만 규제가 필요 없다기 보다는 어떤 방식을 취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규제를 푸는 게 능사가 아니고 규제를 하더라도 더 정교하게 틀을 짜는 게 중요하는 얘기다. 서민금융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상생형 인가·등록 이원화'를 제안했다. 대형사는 금융기관 출자 허용이나 사업범위 확대 같은 실질적 인센티브를 통해 인가제로 유도하고 소형사는 강화된 형태의 등록제로 관리하자는 주장이다. 소형사 등록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공동 전산망과 개인정보보호 시스템, 공동 준법감시·교육체계를 지원해주자는 것이다.
서민금융연구원은 최소 5년의 경과기간을 두는 방안도 제시했다. 매입채권은 단기간에 회수되는 자산이 아니다. 기존 사업자가 갑자기 영업자격을 잃으면 보유채권을 급히 처분해야 하고, 대규모 급매가 발생하면서 채권가격 자체를 흔들 수 있다. 따라서 5년의 유예기간을 둬 시장 충격을 완화시키는 안전판으로 삼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지난 2001년 금융감독원 선임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고리사채 피해 신고를 직접 접수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금융의 역사는 규제로 시장을 억누를 때마다 '음성화'라는 더 큰 괴물이 탄생했음을 증명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의 관리 편의를 우선할 것이 아니라 금융이용자 입장에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책 성패는 추심업체 수 아닌 거래투명성에 달려
금융 당국이 신경써야 할 것은 추심업체 수가 아니라는 게 서민금융연구원 보고서의 지적이다. 불법추심 민원이 줄었는지, 개인정보 침해가 감소했는지, 취약채무자의 채무조정 접근성이 좋아졌는지, 감독 당국이 시장을 더 볼 수 있는지, 부실채권 거래가 투명해졌는지 등이 더 중요하다는 것. 추심업 관련 정책의 성패를 911개이던 추심업체를 30개로 줄였다는 숫자로 제시하는 것은 행정편의주의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서민금융연구원은 오히려 추심업체 숫자를 그렇게 줄이고 불법추심이 늘어난다면 규제만 키우고 정책에선 실패한 게 된다고 꼬집었다.지난 2002년 대부업법의 출발점도 사금융을 무조건 몰아내는 데 있지 않았다. 음지에 있던 사금융을 제도권으로 끌어내고 등록과 감독을 통해 이용자를 보호하자는 취지였다. 조성목 원장은 “양성화의 반대편에는 음성화가 있다”면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시장의 문을 지나치게 좁히면 그 문밖으로 밀려나는 것은 사업자만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가장 약한 처지에 있는 채무자가 그 비용을 떠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위가 추진하는 이번 추심업 인허가제 개편 방안은 단순한 업계 구조조정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강한 규제'가 '좋은 규제'가 될 수 있을 것인지를 묻는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 당국이 선택해야 할 것은 퇴출의 속도가 아니라 제도권 안에서 더 엄격하게 감시하고 위법한 사업자를 골라내 확실하게 퇴출시키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지적에 당국이 어떻게 반응할 지 주목된다.
장종회 한국금융신문 기자 jh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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