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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직접투자, 규제 완화 전에 ‘위험분담 설계ʼ가 먼저다

기사입력 : 2026-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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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자보호·BIS·지분한도…삼중벽 막힌 투자
국민성장펀드, 은행 투자기능 확대의 첫 시험대

은행 직접투자, 규제 완화 전에 ‘위험분담 설계ʼ가 먼저다이미지 확대보기
[한국금융신문 장호성 기자] 은행권을 향한 ‘이자장사’ 비판은 커지고 있음에도, 은행이 곧바로 직접투자에 나서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예금을 받아 대출로 운용하는 은행업의 특성상 안정성이 최우선인 데다, 지분 투자 제한과 자본비율 관리 부담이 맞물리면서 직접투자 확대에는 여전히 높은 문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은행의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해서는 단순 투자 관련 규제완화보다 위험분담 구조를 먼저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객 예금을 기반으로 영업하는 은행이 증권사처럼 고위험 직접투자에 나서기는 어려운 만큼, 펀드 출자·보증 연계·정책금융기관과의 공동 투자 방식이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국민성장펀드는 이 같은 은행의 투자기능 확대 논의의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일반 주식 위험가중치를 250%로 낮추고, 정책목적 펀드에는 요건 충족 시 100% 특례를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며 은행의 투자시장 진입로를 열고 있다.

법·제도에 막힌 은행 직접투자

은행권의 수익구조는 여전히 예대마진 중심에 머물러 있다. 금융감독원 추산 올해 1분기 은행들의 이자이익은 전년동기 대비 1조원가량 늘어난 15조8000억원으로 나타난 반면, 비이자이이익은 전년대비 7000억원가량 감소한 1조3000억원에 그쳤다. 당국이 ‘손쉬운 이자장사’라는 표현을 써가며 강하게 은행권을 압박했음에도 오히려 증권시장의 호황 속에서 은행의 수수료수익 등이 감소한 영향이다.

그렇다고 은행들이 당국 요구에 따라 혁신기업, 첨단산업, 벤처·스타트업 등에 자금 공급을 늘리는 것도 쉽지 않다. 올해 1분기 기준 은행들의 주식시장 직접투자 비중은 여전히 5% 미만으로, 연기금(약 15~20%)이나 외국인(30% 이상)에 비하면 낮은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은행들은 대신 회사인 자산운용사가 만든 펀드 수익증권을 매입하거나, 고객이 맡긴 신탁 계정을 통해 주식형 상품을 운용하는 방식으로 자본시장에 우회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행 체제에서 가장 우선적인 제약은 법적인 제약이다. 현행 은행법상 은행은 다른 회사의 의결권 있는 지분을 15% 초과해 소유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일반 기업 주식을 대량 매입하는 직접투자는 법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다. 지분을 초과 보유하려면 금융위원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더 큰 제약은 은행의 자금 조달 구조다. 은행은 고객 예금을 기반으로 대출과 운용을 하는 기관이다. 예금자보호제도 아래 은행 예금은 일정 한도 내에서 보호되며, 이 때문에 은행에는 증권사나 벤처캐피탈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안정성이 요구된다. 고객 입장에서는 은행에 맡긴 돈이 언제든 인출 가능하고 원금이 안정적으로 보전될 것이라는 신뢰가 전제돼 있다.

이런 구조에서 은행이 고위험 직접투자에 적극 나설 경우 손실 책임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투자 실패에 따른 손실을 은행 주주가 부담할 것인지, 예금 기반으로 조달한 자금을 운용한 은행 경영진이 책임질 것인지, 금융시스템 안정 차원에서 공적 안전망이 개입해야 하는지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BIS 자기자본 규제도 부담이다. 은행은 보유 자산의 위험도에 따라 위험가중자산(RWA)을 산출하고, 이에 맞춰 자기자본비율을 관리해야 한다. 주식, 비상장기업 지분, 벤처펀드 출자 등은 대출보다 높은 위험가중치가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투자 규모가 커질수록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낮아지고, 이는 대출 여력과 주주환원 여력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나 변동성이 큰 주식시자이 하락기에 접어든다면 건전성 문제까지 겹쳐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증권사와 은행 간 투자금융 역량 격차가 예전보다 좁혀진 것은 사실이지만, 은행은 결국 고객 돈을 다룬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며 “직접투자를 늘리려면 수익성보다 먼저 손실 발생 시 책임 구조와 자본 부담을 어떻게 설계할지가 정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여준 PwC컨설팅 상무는 “현재 금융지주들은 안정성을 일정 부분 확보한 만큼 자본관리 체계의 적합성, 생산적·포용·상생금융 실행 체계와의 정합성, 글로벌 규제 정합성 등 세 축을 중심으로 정책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안정성 우선, 데이터 기반 검토, 단계적 추진, 사후 모니터링의 네 단계를 거쳐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며 “필요한 것은 규제완화가 아니라 자본흐름의 구조적 전환을 통한 규제체계 정교화”라고 덧붙였다.

‘전략적 지분투자’ 대안 제시

금융연구 기관들은 글로벌 기준에 맞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이나 한국처럼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장벽을 엄격하게 두는 '전업주의'에서 벗어나, 유럽처럼 은행이 증권, 보험 등 모든 금융 업무를 한 지붕 아래서 수행할 수 있는 유니버셜 뱅킹 체제로의 전환이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볼커룰’을 제정해 은행의 자기계정 단기매매와 헤지펀드·사모펀드 투자를 강하게 제한하고 있긴 하지만, 시장조성·인수·헤지 등 고객 또는 리스크관리 목적의 거래는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유럽은 이보다 느슨하게 은행이 주식 익스포저를 보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바젤 기준에 따라 일반 주식에는 250%, 투기적 비상장 주식에는 400%의 높은 위험가중치를 적용하는 식으로 통제하고 있다. 은행의 투자 기능을 열어두되, 그에 상응하는 자본 부담을 지우는 셈이다.

호주는 각 투자처별로 위험가중치를 섹터별로 다양하게 마련하고 강화하고 있으며, 2주택자 주택담보대출에는 더 높은 위험가중치를 적용하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흐름을 감안해 은행의 직접투자 규제를 일부 합리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석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위험자본 공급”이라며 “위험을 과도하게 강조하면 오히려 금융회사의 위험 추구 행위를 억누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은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하는 가계 예금 의존도가 높고, 은행에 대한 원금 보장 기대가 강한 만큼 유럽식 유니버셜 뱅킹을 그대로 도입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은행이 증권사나 벤처캐피탈처럼 직접 주식투자에 나서는 방식보다는, 정책 목적이 명확한 펀드 출자나 보증 연계 투자, 장기 보유 목적의 전략적 지분투자에 한해 위험가중치를 합리화하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금융당국은 생산적금융 대전환을 촉구하며 은행의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한 위험가중치 조정에 나섰다. 기존 국내 규정은 은행이 보유한 비상장주식에 원칙적으로 400%의 위험가중치를 적용하고, 상장주식이나 장기 경영관계 목적의 비상장주식에만 예외적으로 250%를 허용해왔다.

이를 BIS 기준에 맞춰 일반 주식에 원칙적으로 250%를 적용하고, 단기매매 목적의 비상장주식이나 벤처캐피탈 등 투기적 성격의 주식에만 400%를 적용하는 방향으로 개선했다. 사실상 유럽과 유사한 수준으로 규제 합리화에 나선 것이다.

추가로 국민성장펀드와 같은 정책목적 펀드는 특정 경제분야 지원, 정부·정책금융기관의 보조 또는 투자, 금융당국의 감독 요건을 충족할 경우 100% 위험가중치 특례를 적용받을 수 있다.

은행 투자 가늠자 ‘국민성장펀드’

향후 은행권 투자금융 확대 논의의 첫 시험대는 국민성장펀드가 될 전망이다. 국민성장펀드는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이차전지, 로봇, 미래차, 방산 등 첨단전략산업에 대규모 자금을 공급하기 위한 정책성 펀드다.

정부와 정책금융, 민간 금융권이 함께 자금을 조성하는 구조인 만큼 은행권의 참여 규모와 자본규제 적용 방식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은행권은 국민성장펀드가 정책 목적의 투자라는 점을 감안해 일반 지분투자보다 완화된 위험가중치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 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에 일반 벤처투자와 같은 수준의 자본 부담을 부과하면, 은행들이 대규모 출자에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여전히 금융당국 입장에서도 무조건적인 규제완화는 부담이다. 은행에 대한 자본규제는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이다. 정책 목적이 있다는 이유로 위험가중치를 과도하게 낮출 경우, 향후 투자 손실이 발생했을 때 은행 건전성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 은행의 생산적 금융 확대와 금융안정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은행에 이자장사를 줄이고 투자에 나서라고 요구하려면 은행이 감당 가능한 위험 구조를 먼저 만들어줘야 한다”며 “은행의 직접투자 확대는 규제완화의 문제가 아니라 예금자 보호, 자본비율, 정책금융의 위험분담을 함께 설계해야 하는 문제”라는 생각을 전했다.

장호성 한국금융신문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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