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정작 시장이 요구하는 것은 총액이 아니라 세부 명세다. 무엇을, 언제, 얼마만큼, 어떤 회계처리로 집행했는지에 대한 구체적 근거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IB, 회계업계, 시민단체 일각에서 제기하는 의문은 단순하다. 5,400억 원이라는 숫자에 '실제 현금 유출에 해당하는 자본적 지출과 비용 처리된 운영적 지출이 얼마나 포함돼 있는가'이다.
더 큰 쟁점은 충당부채 처리다. 2025년 3분기 말 기준 영풍 환경복구 충당부채 잔액은 2,128억 원이다. 반면 2020년부터 2025년 9월 말까지 실제 사용(차감) 금액은 1,566억 원에 그친다.
환경복구 의무 이행을 위해 회계상 설정해 둔 부채 규모에 비해 집행 속도가 더디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통합환경허가 조건 미이행과 제재가 반복되는 상황과 맞물리면서 “대규모 환경투자”라는 주장과 현장의 체감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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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금융위원회 산하 감리위원회가 환경오염 비용 과소계상 문제와 관련해 제재 심의에 착수했다는 보도는 이러한 논란에 기름을 붓고 있다. 앞서 경북 봉화군 석포제련소 주민대책위원회가 회사와 장형진 총수 등을 자본시장법·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실도 시장의 불신을 키운다. 환경복원 책임 규모를 회계 장부에서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는 단순한 평판 리스크를 넘어 재무제표 신뢰성 전반에 대한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
자본시장에서 숫자는 곧 신용이다. 특히 환경 이슈는 ESG 평가, 자금 조달 비용, 기관투자가의 투자 판단과 직결된다. 그럼에도 영풍은 보도자료를 통해 “약 5,400억 원”이라는 총액만 반복할 뿐, 항목별 세부 집행 내역과 회계 처리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환경 관련 충당부채와 실제 투자 집행액 간의 관계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 한, 시장은 해당 수치를 ‘투자’가 아닌 ‘주장’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기업이 진정으로 환경 책임을 다하고 있다면, 숨길 이유가 없다. 투자 항목, 집행 시기, 자금 출처, 충당부채 전입·사용 내역을 표 형태로 투명하게 공개하면 된다. 외부 감사인의 검증 의견을 함께 제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지 않다면 5,400억 원은 환경개선의 증거가 아니라, 회계 신뢰성에 대한 새로운 질문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환경은 이미지가 아니라 의무다. 그리고 의무의 이행 여부는 슬로건이 아니라 장부로 증명된다. 영풍이 선택해야 할 것은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숫자의 정직성이다.
곽호룡 한국금융신문 기자 horr@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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