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의 전설, 적진을 뛰쳐나오다
2020년 가을, 베이징의 어느 사무실에서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 조용한 소문이 돌았다. '장젠중(张建中)이 엔비디아를 떠났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핵심 참모 전체를 데리고. 54세의 나이에 엔비디아라는 세계최고의 AI 칩 회사의 부사장 자리를 박차고 나온 이 남자가 하려는 것은 단 하나였다. 중국 스스로의 GPU를 만드는 것.
이미지 확대보기장젠중은 중국 GPU 역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는 2006년 엔비디아에 합류해 중국 총경리로 시작, 15년에 걸쳐 글로벌 부사장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경력의 소유자다. 그가 엔비디아 재직 시절 이룩한 것은 놀랍다. 중국 독립 GPU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점유율을 50% 미만에서 80% 이상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이 바로 그다. 중국 시장에서 엔비디아 왕국을 직접 세운 사람이, 이제 그 왕국을 허물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가 창업을 결심한 배경에는 냉정한 전략적 통찰이 있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반도체 소비국이지만, 핵심 GPU는 85%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이것은 경제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 문제다.' 중미 기술 갈등이 격화되던 그 시점에, 장젠중은 이 구조적 취약성을 꿰뚫어 보았다.
창업의 첫 번째 비밀은 '사람'이었다. 장젠중이 엔비디아를 떠날 때, 그의 핵심 참모진이 통째로 따라 나섰다. 채널 생태계를 담당했던 저우위안(周苑), 기술 총괄 장위보(张钰勃), 영업 책임자 왕둥(王东)... 모어스레드의 창업팀은 한마디로 '엔비디아 중국 드림팀'의 집단 탈영이었다. GPU를 설계하는 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GPU를 가장 잘 파는 법도 알면서 모인 것이다. 이 조합이 훗날 모어스레드가 단기간에 기술과 시장을 동시에 장악하는 핵심 동력이 된다.
서호의 풍경을 Chip에 새기다 - 5년 5세대의 숨겨진 코드
모어스레드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그러나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그들이 개발해온 GPU 아키텍처의 이름을 보면 하나의 패턴이 보인다. 소제(苏堤), 춘효(春晓), 곡원(曲院), 평호(平湖), 화항(花港). 이 다섯 이름은 모두 항저우 서호(西湖)의 대표적인 경관지 '서호십경(西湖十景)'에서 따온 것이다.이것은 단순한 작명이 아니다. 서호는 중국의 문인과 시인들이 수천 년간 노래해온 중국 문화의 상징이다. 세계 기술 패권을 향한 GPU 전쟁의 한복판에서, 모어스레드는 자신들의 칩에 중국의 정체성을 새겨 넣었다. '우리는 미국 기술의 모방이 아니라, 중국의 전통을 이어받은 새로운 기술이다'라는 무언의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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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5개의 아키텍처가 단 5년 만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진짜 충격이다. 2022년 소제(苏堤) 아키텍처의 첫 GPU 출시를 시작으로 2025년 화항(花港)까지, 매년 한 세대씩 뒤집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속도의 비밀을 '병렬 개발 모드'에서 찾는다. 현재 세대 칩이 양산 라인에 오를 때, 이미 다음 세대 설계가 시작되어 있다. 심지어 그 다음 세대 연구도 동시에 진행한다. 투자와 위험 부담은 배가되지만, 시간 차이는 극적으로 줄어든다. 엔비디아를 추격하는 데 필요한 것이 단순한 기술력이 아니라 '시간의 단축'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2025년 출시한 5세대 화항 아키텍처는 이 전략의 결실이다. FP4에서 FP64까지 모든 정밀도 연산을 지원하고, 알고리즘 밀도를 50% 향상시켰으며, 연산 효율을 10배 높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만 장(万卡) 클러스터', 즉 GPU 1만 개를 하나의 시스템처럼 묶어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기술을 상업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미지 확대보기88일의 기적, 468%의 폭등 - 나스닥도 놀란 속도전
2025년 12월 5일은 중국 반도체 역사에서 기억될 날이다. 모어스레드가 상하이증권거래소 과창판(科创板, 중국판 나스닥)에 상장된 것이다. 숫자가 드라마를 말해준다. IPO 서류 제출부터 심사 통과까지 88일. 과창판 역대 최단 기록이다. 상장 첫날 주가 468% 폭등. 시가총액은 단숨에 3000억 위안(약 57조 원)을 돌파했다. 2026년 4월 현재, 시가총액은 3241억 위안(약 61조 원)을 유지하고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그러나 화려한 상장의 이면에는 냉정한 현실도 있다. 모어스레드는 2022년부터 2025년까지 누적 적자가 60억 위안(약 1조 1400억 원)에 달한다. 2025년 한 해만 연구개발비로 매출의 86%를 쏟아부었다. 이 회사를 지탱하는 것은 현재의 이익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국가적 베팅이다.
봉쇄가 만든 역설 - 실체 명단이 독이 아니라 약이 된 이유
2023년 10월, 미국 상무부는 모어스레드를 수출통제 '실체 명단(Entity List)'에 올렸다. 표면적으로는 치명타였다. TSMC 같은 첨단 파운드리에 접근이 막히고, 엔비디아나 AMD의 기술을 활용한 협력도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은 정반대였다.모어스레드는 즉시 중국 최대 파운드리 중국반도체국제공사(SMIC)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16nm 공정으로 만든 칩이 14nm 수준의 성능을 내도록 아키텍처 최적화와 맞춤형 패키징 기술을 결합했다. 보통 기업이라면 기술 봉쇄를 '한계'로 받아들였겠지만, 모어스레드는 이를 '공급망 국산화의 강제 완성'으로 전환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제재가 모어스레드를 더 중국 내 공급망에 깊이 뿌리내리게 만든 것이다.
같은 시기,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중요한 전환이 일어났다. 엔비디아의 개발 생태계 CUDA를 대체하는 자체 아키텍처 'MUSA(M통합체계아키텍처)'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다. 'Musify'라는 변환 도구를 통해 CUDA로 작성된 코드를 MUSA 환경으로 전환할 수 있게 했다. 미국의 제재가 오히려 수백만 명의 중국 개발자들을 MUSA 생태계로 밀어 넣는 인구이동을 만들어낸 것이다.
2026년 창사후 첫 흑자 – 6.6억짜리 '수주 한 방'의 진실
2026년 1분기, 모어스레드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분기 흑자를 냈다. 매출 7억 3800만 위안(약 1330억 원), 순이익 2935만 위안(약 53억 원). 숫자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이 흑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냐는 것이다.비밀은 단 하나의 계약이었다. 2026년 3월, 모어스레드는 익명의 대형 고객 (국영기업 or 정부 AI 센터 유력)에 6억 6000만 위안(약 1190억 원) 규모의 '쿠아에(夸娥)' 지능형 컴퓨팅 클러스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GPU 칩 하나가 아니라, 수천 장의 GPU를 하나의 거대한 AI 두뇌로 묶은 시스템 전체를 파는 것이다. 이것이 모어스레드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다. '칩 장사'에서 '두뇌 공장 장사'로의 전환인 것이다.
이 클러스터 비즈니스에서 모어스레드의 경쟁력은 수치로 드러난다. 모어스레드의 칩 한 장은 엔비디아 H100의 4분의 1 수준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GPU 1만 장을 하나의 AI 두뇌로 묶었을 때, 모어스레드 시스템의 효율이 엔비디아보다 높게 나온 것이다.
선형 확장 효율 95% 대 90%. 쉽게 말하면, 엔비디아는 GPU 1만 장을 연결하면 10%가 낭비되는데 모어스레드는 5%만 낭비된다는 뜻이다. 마치 100명이 일하는 공장에서 엔비디아는 90명분 생산하고 모어스레드는 95명분 생산하는 격이다. 칩 한 장의 성능은 뒤처지지만, 수천 장을 묶어 굴리는 '공장 전체'의 효율에서는 앞선다. AI 경쟁이 칩 한 장의 스펙 싸움에서 거대한 시스템의 운영 효율 싸움으로 넘어가는 지금, 이 역전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어떤 칩을 쓰는가'보다 '얼마나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성하는가'가 AI 경쟁의 핵심이 되는 시대에 이 클러스터 효율 지표는 새로운 경쟁의 기준이 될 수 있다. 66%라는 2025년 매출총이익률도 놀랍다. 이것은 단순한 하드웨어 회사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시스템 통합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업임을 보여준다.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세 가지 비밀
첫 번째 비밀: 'DeepSeek와의 조용한 밀약'. 2026년 4월, 중국 AI 거물 딥시크(DeepSeek)가 V4 버전을 출시하면서 하드웨어 지원 목록에 화웨이 Ascend(昇腾) NPU와 엔비디아 GPU를 나란히 적었다. 모어스레드의 이름은 없었다. 그러나 업계 내부에서는 모어스레드의 MTT S5000이 이미 딥시크 V4 적응 테스트를 완료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공식 명단 밖의 비공식 협력. 모어스레드는 이미 중국 최정상 AI 모델의 '숨겨진 파트너'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두 번째 비밀: '소비자용 GPU의 복수'. 모어스레드는 AI 칩만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2022년에 일반 소비자용 게이밍 그래픽카드 'MTT S80'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중국산으로는 처음으로 윈도우 환경과 DirectX 12를 완전히 지원한다. 중국 PC 게이머들 사이에서 '국산 그래픽카드의 자존심'으로 불리며 예상 밖의 인기를 끌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다. 수천만 명의 일반 소비자가 모어스레드 칩을 PC에 꽂는 순간, MUSA 생태계의 사용자 기반이 폭발적으로 넓어진다. 엔비디아가 게이밍으로 시작해 AI의 왕이 된 역사를, 모어스레드는 지금 의도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세 번째 비밀: '고객 집중의 함정'. 2025년 상반기 기준, 모어스레드 매출의 98%가 상위 5개 고객에게서 나온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이 '큰손'들이 사실상 회사의 생사를 쥐고 있다는 뜻이다. 흑자전환을 만든 6600억 클러스터 계약의 고객사 역시 공개되지 않았다. 눈부신 성장의 뒷면에 가려진 이 집중 리스크는, 모어스레드가 진정한 GPU 제국으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한국에 던지는 불편한 질문
2023년 미국의 수출 통제가 시작되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이 '중국 AI 산업은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2026년 현재, 중국 AI 칩 시장에서 국산 GPU의 점유율은 45%에 달한다. 2023년 14%였던 것이 불과 3년 만에 세 배가 됐다.모어스레드의 이야기는 한국 산업계에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반도체 강국인가, 아니면 반도체 가공국인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세계 최고의 메모리 반도체를 만든다. 그러나 AI 시대의 핵심 두뇌인 GPU를 설계하고 생산하는 능력에서 한국은 어디에 서 있는가.
모어스레드는 세 가지 교훈을 남긴다. 첫째, 생태계다. 칩 하나가 아니라 그 위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함께 키우지 않으면 시장을 지배할 수 없다. MUSA가 없었다면 모어스레드의 칩은 그저 비싼 금속 조각이었을 것이다. 둘째, 속도다. 5년에 5세대. 단기 이익을 포기하고 연구개발에 매출의 87%를 쏟아붓는 무모함이 없었다면 이 속도는 불가능했다. 셋째, 위기의 역전이다. 미국의 봉쇄가 중국 기업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이 뿌리를 내리게 만들었다. 외부의 압력이 내부의 자립을 강제한 것이다.
미국의 AI반도체 봉쇄는 중국을 죽이지 못했다. 오히려 괴물을 키웠다. 그 괴물이 이제 세계 시장을 향해 서호(西湖)의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고 있다.
전병서 박사는
중국 칭화대에서 석사, 푸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우경제연구소에서 반도체와 IT애널리스트로 17년간 일했다. 대우증권 상무, 한화증권 전무를 지내고 이후 19년간 중국경제와 금융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으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 MBA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전병서 박사/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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