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규기사 모아보기 전 KB금융지주 회장이 노란 넥타이를 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도 어느덧 2년 4개월이 흘렀다. 야인(野人)에 가까운 신분이지만, 여전히 KB금융지주 경영자문역으로서 그룹의 안과 밖을 잇는 ‘조용한 조언자’의 자리에 서 있다. 공식적인 지휘봉은 내려놓았지만, 금융권에서 리더십을 논할 때마다 ‘윤종규의 9년’이 계속 소환되는 건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시대, 조직이 어떻게 생존하고 진화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산증인이기 때문이다.사실 2014년 가을, 그가 처음 마주한 KB금융의 풍경은 ‘심정지’ 상태에 가까웠다.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내부 갈등은 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서로를 고발하는 초유의 사태로 번졌고, 1등 금융그룹의 자부심은 갈기갈기 찢긴 채 2위로 밀려났다. 난장(亂場)의 한복판에 구원투수로 등판한 윤 전 회장은 화려한 연회장이 아닌 동네 빵집에서 기자들을 만나 단호하게 약속했다. “정말 자신 있습니다. KB를 다시 세우겠습니다.”
이러한 성취의 이면에는 자신을 ‘정원사’로 정의한 독특한 경영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정원사는 나무를 억지로 잡아끄는 사람이 아니라, 나무가 스스로 잘 자랄 수 있도록 잡초를 뽑고 최적의 토양을 만드는 존재다. 취임 직후 고질적인 파벌 인사라는 잡초를 과감히 걷어낸 결단이 대표적이다. 자신을 반대했던 진영의 인사라도 능력이 있다면 중용하는 파격을 보였고, 그 결과 조직에는 ‘라인 정치’ 대신 ‘1등의 자신감’이 영양분처럼 공급됐다.
이미지 확대보기윤 전 회장은 늘 정답만을 내리는 리더보다 끝까지 문제를 푸는 ‘프라블럼 솔버(Problem Solver)’의 태도를 강조했다. 오답일지라도 풀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 조직만이 결국 정답에 도달한다는 믿음이었다. 그의 사고(思考)의 근간에는 주역의 원리인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가 자리 잡고 있었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해야 오래간다는 이 단순한 진리가 9년 경영의 나침반이 되어 전략과 조직 문화를 혁신하는 동력이 됐다.
또 하나의 큰 유산은 ‘경영 시스템’이다. 조직이 특정 개인의 카리스마가 아닌 정교한 시스템으로 지속되어야 한다는 신념 하에, 취임 초기부터 후계 구조를 설계하고 사외이사 검증 체계를 제도화했다. 자신이 떠난 뒤에도 조직이 흔들리지 않도록 ‘떠날 준비’를 9년 내내 해온 셈이다. 최근 금융권 지배구조 논란 속에서도 KB가 유독 안정적인 평가를 받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이러한 리더십은 차가운 지시가 아닌 따뜻한 배려에서 완성되곤 했다. 보고가 끝나면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하며 고개를 숙였고, 현장 직원의 사소한 관심사까지 기억해 자료를 챙겨주던 세심함은 권위보다 강한 울림을 주었다. 조직이 사람을 통해 성장한다는 가장 단순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원칙을 끝까지 붙들었던 결과다.
지금 금융권은 생성형 AI의 파동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친 파고 앞에 서 있다. 단기 성과를 넘어 조직의 근본적인 생존 구조를 설계할 수 있는 리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단순한 비용 절감이나 기술 도입을 넘어, 사람과 시스템, 전략을 함께 진화시키는 통합형 리더십이 요구되는 국면이기도 하다. 윤종규의 9년은 이 절실한 질문에 대한 분명한 해답이다. 위기 속에서 조직을 재정의하고 스스로 물러날 시점까지 설계한 시간은, 특정 기업의 성공 신화를 넘어 한국 금융이 나아가야 할 이정표가 됐다.
김의석 한국금융신문 기자 es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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