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젠테이션은 별로였어, 그러나 투자할 게!
1993년 엔비디아를 창업한 젠슨 황은 투자유치에 나섰다. 설립을 도와준 변호사 짐 게이더의 도움으로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벤처캐피탈 회사인 세콰이아 캐피탈과 셔터 힐 벤처사와 투자 미팅이 성사되었고 사업계획서를 준비하느라 고군분투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세콰이아의 창업자로 직설적인 것으로 유명한 돈 발렌타인이 스타트업에게 즐겨 하는 질문은 “그게 왜 중요한가?”였다. 준비가 제대로 안되니 당연히 프리젠테이션도 잘 풀리지 않았다. 젠슨 황은 발표 내내 버벅거렸고 같이 간 동료는 불필요한 기술적 설명으로 흐름을 끊었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프리젠테이션이었다.프리젠테이션이 끝난 후 돈 발렌타인이 젠슨 황을 따로 불렀다.
성실함으로 도전 정신으로 고객과 동료의 신뢰를 얻다
오레곤대학을 최고성적으로 조기 이수하고 AMD에 입사하여 마이크로칩 설계도를 손으로 그리던 일을 하던 젠슨 황은 그의 자질을 눈여겨보던 동료의 권유로 1985년에 LSI 로직이라는 혁신적인 실리콘밸리 회사로 이직했다. 이 회사는 마이크로칩 설계자를 위한 최초의 소프트웨어 설계 툴을 개발한 곳이었다. 젠슨 황은 특유의 근면 성실과 몰입으로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고 끝없는 노력으로 SPICE(Simulation Program with Integrated Circuit)라는 소프트웨어를 완전히 익혔다. 회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인 SPICE는 당시에는 주로 학술 연구용으로 여겨졌지만 젠슨 황은 이를 활용하여 누구도 생각하기 못했던 수준으로 회로 성능을 끌어올렸다.LSI고객들이 새로운 기능을 요구하면 대다수 설계자 들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불가능해요.”하지만 젠슨 황은 달랐다. “한번 해볼게요.” 그는 고객이 원하는 기능을 찾기 위해 회로 구성요소의 배열을 끊임없이 조정했다. 이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나 컬러모니터조차 없는 상황에서 진행된 일이었기에 매우 고된 작업이었다. LSI의 까다로운 고객들은 컴퓨터그래픽 디자이너들이었다. 그들은 더 빠른 칩을 원했고 그 욕심은 끝이 없었고 성능의 한계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젠슨 황이 그들에게 약속했던 제품은 대부분 완성되었다. 어려운 기술적 도전을 해결한 보상은 더욱 더 까다로운 기술적 도전이었다. 젠슨 황은 1+1을 3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었는데 그것은 단순히 고객을 위한 작업을 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결과물을 도구로 전환하고 그 도구를 더 발전된 방법론으로 변환했다는 뜻이다.
LSI로직의 고객인 썬 마이크로 시스템즈의 칩설계자인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커티스 프리엠은 일반 영업사원들은 이해할 수조차 없는 복잡한 기능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고객이었다. 젠슨 황은 그들이 요구하는 고품질의 제품을 적시에 받을 수 있게 해주면서 자연스럽게 그들과 한 팀이 되었고 오히려 그들의 매니저 역할을 맡았다. 사실 그들은 젠슨 황을 자신들의 상사보다 더 신뢰했고 유능한 관리자로 보였다. 이들 세 사람의 성공적인 협력은 1989년 ‘썬GX’의 출시로 이어졌다. 이 칩은 3D 그래픽의 프로세서로 과학자, 애니메이터, 컴퓨터 지원 설계 모델러를 위한 워크스테이션에 탑재되었다.
썬GX의 성공으로 LSI로직의 창업자 윌프 코리건은 젠슨 황을 주목하고 그를 승진시켜 ‘시스템온 칩’ 설계 플랫폼을 총괄 운영하게 했다. 이 플랫폼은 고객들이 3D 그래픽, 비디오, 게임 콘트롤러 같은 여러 기능 등을 단일 실리콘칩에 집적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으로 고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크리스는 스물 다섯짜리 젊은 청년에게 전체 부서를 맡기는 것을 보고 윌프 코리건이 젠슨 황을 차세대 CEO로 생각하며 키우고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젠슨 황과의 협력으로 특별한 가능성을 본 크리스와 커티스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 썬GX칩의 성공에 뒤이어 PC비디오게임용으로 더 저렴한 버전을 만들자고 회사에 제안했지만 썬의 고위임원은 “썬은 과학자에게 제품을 공급하는 회사이지 게이머를 위한 회사가 아니다”며 거만하게 거절했다. 이에 좌절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아이디어대로 PC 비디오게임용 칩을 직접 만들 회사를 창업하기로 결심했지만 사업 운영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회사를 이끌어 줄 경영자가 필요했다.
앤비디아의 출발을 지원한 전 회사의 CEO와 고객사 파트너
1992년 크리스와 커티스는 젠슨 황에게 자신들이 만들 신생 스타트업을 경영해 달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젠슨 황은 이미 혁신적이고 안정적인 기업에서 자신의 부서를 이끌며 경영진 트랙에 올라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제안한 신생 회사는 사업 계획도 없었고 심지어 회사 이름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썬 이 수익성이 없다고 반려한 제품의 아이디어 스케치만 있었을 뿐이고 심지어 두 사람의 불안정한 관계도 문제였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다투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젠슨 황의 재정상황도 여유롭지 않았다.당시 젠슨 황은 2억 5천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부서를 책임지고 있었고 자신보다 나이도, 경험도 더 많은 직원들을 이끌고 있었다. 젠슨 황은 솔선수범하며 스스로에게는 엄격했고 험담을 삼가며 일을 잘 한사람에게는 공을 적절히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젠슨 황의 단점은 지나치게 솔직해서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을 참지 못했고 자신처럼 14시간씩 몰두해서 회로 시뮬레이터를 다루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당황하곤 했다. CEO인 윌프 코리건은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인텔 출신의 선임 이사를 영입해 젠슨 황과 공동으로 부서를 관리하도록 했는데 도리어 젠슨 황은 이 결정에 대해 ‘정치적인 결정’이라며 분개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 부서를 키워냈는데 그것을 빼앗겨 모욕적으로 느낀 것이다. 이 결정이 젠슨 황이 회사를 떠나게 된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젠슨 황은 스타트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었다. 젠슨 황에게 의사결정은 막연한 희망 같은 감정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철저히 이성적인 과정이었고 그에게 사업은 단지 또 다른 엔지니어링의 문제였다. 엔지니어들은 복잡한 문제를 단순한 기본 원리로 분해한 후 그 원리를 활용해 강력한 결과를 이끌어 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젠슨 황은 스타트업에 뛰어 들기 위해서 먼저 그런 원리를 명확히 이해하고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해야 했다.
인맥은 멀리 있지 않다. 나의 동료와 고객이 인맥
그래픽가속기를 만드는 회사는 최소 35개사가 경쟁하고 있었다. 젠슨 황은 그래픽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존 페디에게 시장 상황을 묻기 위해 연락했고 그 들은 곧 친구가 되었지만 존 페디는 창업을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젠슨 황이 산출한 생존에 필요한 매직 넘버는 5,000만 달러였고 가능과 불가능의 경계치에 있었다. 젠슨 황은 36번째 그래픽가속기 회사로 경쟁에 뛰어들기로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회사이름도 정하지 않은 채 한 해 동안 129번의 이사회에 참석한 경험이 있는 실리콘밸리에서 매우 인기있는 자문 변호사 짐 게이더를 찾아가 법인설립을 요청했다. 짐 게이더가 보기에 젠슨 황은 타고난 리더였다. 그는 젠슨 황이 사무실을 나가기 전에 그를 붙잡아야겠다 고 결심했다. 스타트업의 이름이 아직 없었기에 짐 게이더는 일단 새로운 벤처 New Venture를 뜻하는 ‘NV’라고 적었고 NV에서 파생되는 단어를 찾다가 ‘앤비디아’로 최종 결정했는데 이는 ‘질투’를 의미하는 라틴어 ‘인비디아’에서 유래된 것이다.이제 남은 절차는 자본금 납입이었다. 짐은 젠슨 황에게 지갑에 들어있는 현금을 모두 달라고 했고 그 안에 들어있던 200달러로 ‘앤비디아’라는 회사의 법인 설립증서가 6주 후인 93년 4월에 발급되었다. 당시 젠슨 황의 나이는 30살이었다. 회사가 초기 자금을 조달할 때까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직원 몇 명은 즉각적인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바로 앤비디아로 이직했다. 그들은 젠슨 황이 자금을 조달하고 급여를 지급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하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사업계획도 없이 그래픽가속기의 레드 오션에 뛰어든 잰슨 황을 믿어 주고 투자를 가능하게 해준 사람은 LSI로직의 CEO였다. 비록 젠슨 황이 그를 키워주고 싶었던 진심을 저버리고 퇴사했지만 그의 실력과 성실함을 실리콘밸리의 대표 벤처캐피탈에 적극 추천하였다. 고객사의 직원들도 리스크를 감수하고 앤비디아에 모였다. 앤비디아의 명확한 킬러 모델은 없었지만 젠슨 황을 믿는 사람이 모여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크리스와 커티스도 갑을의 관계를 뛰어넘어 젠슨 황과의 인간관계를 구축한 덕분에 억만장자의 반열에 올랐다.
나를 도와주는 인맥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같이 일하는 동료, 고객 들이며 또 지금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출처 및 인용: 생각하는 기계 (엔비디아 젠슨 황)
윤형돈 칼럼니스트/마음을 여는 인맥관리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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