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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여는 이광형 총장, 카이스트 벤처의 대부 [마음을 여는 인맥관리 75]

기사입력 : 2026-05-2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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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여는 이광형 총장, 카이스트 벤처의 대부 [마음을 여는 인맥관리 75]이미지 확대보기
“교수가 할 일요? 학생이 뭘 하겠다면 내버려두는 거죠.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게 문제지, 뭘 하겠다는데 왜 문제가 돼요? 말도 안되게 이상한 걸 하겠다는 학생은 더 좋아요. 왜냐구요? 재밌잖아요”

1990년대만 하더라도 학생이 창업하면 큰일나는 일이었다. 이들에게 허락된 일은 열심히 연구해서 논문을 쓰고 졸업하는 것이다. 그래서 창업은 독립운동 하듯이 쉬쉬하면서 몰래 몰래 진행했다. 그러나 지도교수 이광형은 학생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격려하고 보너스를 받으면 학생들이 만든 회사에 투자했다.

작은 것 같아도 이런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지도교수님이 돈까지 주면서 격려한다’ 생각하니까 엄청 신이 나는 것이다.

해커시스템 창업 지원

이광형 연구실의 김창범과 김병학은 해킹의 선구자였다. 특히 김창범은 학부과정에서 F학점을 수도 없이 맞았다.

이 학생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했다. 학사경고를 하도 많이 맞아서 퇴학당할 위기에 몰렸다. 동료, 과 후배들이 천재를 살려야 한다며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광형도 앞장섰다. 학사심의위원회는 아주 예외적으로 졸업을 시켜주었다.

두 사람은 후에 해킹 방어기술을 다루는 ‘인젠’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그런데 병역특례기간 중에는 회사를 창업할 수 없는 데다가 회사의 설립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자 이광형이 비생산적인 일에 신경을 쓰지 말고 인젠을 포기하도록 설득했다. 그래서 인젠을 포기하고 만든 회사가 ‘해커시스템’이다

넥슨 김정주닫기김정주기사 모아보기 회장

어느 날 자동차를 타고 가는데 옆자리에 앉아있던 박사과정1학년이던 김영달이 이광형에게 물었다.

“다른 교수님 연구실에 있는 김정주, 김병학이 하도 연구가 잘 안되고 교수님한테 야단을 많이 맞아 쫓겨나게 되었는데 우리 연구실로 오라고 하면 어떨까요?”

이광형은 선선히 승낙했다. 일반적으로 대학원 학생이 연구실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광형도 학생들을 빼 가는 것처럼 오해를 받을 수 있지만 학생들의 의사임을 알려 학과장의 허락을 받았다.

김정주는 게임회사를 만들어 큰 어려움이 없이 승승장구한 것 같이 보이지만 이미 학생시절부터 만만치 않은 시련을 겪으면서 성장했다.

김정주는 인터뷰에서 “회사 하다가 망하고 돈 떨어지고 그러면 다시 만들고 초창기의 그 혼란한 상황에서 제가 의탁할 수 있었던 분은 이광형 교수님밖에는 안 계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교수님을 만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습니다”했다.

실리콘밸리로 제자를 인턴으로 초청

어느 사이에 이광형 교수 연구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자유방임형으로 소문이 났다. 이교수가 전산학과 교수였던 시절 유난히 이 교수 연구실을 거쳐간 학생들 사이에 벤처기업을 창업한 학생들이 많았다. 이들 기업들은 지금 약3조원의 연 매출을 내고 약 7천명을 고용하는 결실을 거뒀다.

이러한 현상을 보고 사람들은 이광형을 ‘카이스트 벤처의 대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이광형은 “내가 방해하지 않아서 잘했을 것이다”고 한다.

1990년 중반 카이스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앞선 인터넷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에서 직수입한 최신 컴퓨터와 네트워크 환경은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젊은이 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광형은 이 흐름을 잘 타고 학생들에게 자율과 자유를 줬다.

자신의 연구내용을 무조건 따라오게 하는 대신 돕는 역할을 했다. 이광형은 안식년을 맞아 미국 스탠퍼드 연구소로 가면서 제자들을 몇 개월씩 인턴으로 불러왔다.

자신이 본 실리콘밸리 현장을 제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험이었다. 그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실리콘밸리의 두개 회사로부터 연구프로젝트를 받았다. 4개월마다 학생들을 교체하며 최대한 많은 학생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눈뜨게 했다.

아이디스 김영달 사장

이광형은 1987년 카이스트 학부로 입학한 김영달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에 관심이 많자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세심히 배려했다.

김영달이 얼마나 자유로웠냐 하면 학부생일 때 대덕연구단지의 전자통신연구원ETRI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에서 배운 것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경험했고 석박사과정에서도 ETRI의 아르바이트 과제를 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연구실이 자유 방임형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같이 하는 박사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ETRI는 김영달에게 PCS폰에 들어가는 반도체칩을 테스트하는 개발을 의뢰했고 김영달은 서너 건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무려 1억원을 벌었다.

이것이 훗날 아이디스를 설립하는 종잣돈이 된다. 그리고 이광형의 배려로 실리콘밸리에서 인턴을 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고 첨단기술 기반의 독립적인 기업을 설립하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하루는 전산학과 사무실에 도둑이 들었는데 CCTV를 녹화한 비디오테이프가 오래되어 화질이 떨어져서 신원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김영달은 순간적으로 아이디어가 떠 올랐다. 아날로그 영상을 디지털로 바꾸어 컴퓨터에 저장하는 디지털CCTV개발로 방향을 잡았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에 능숙한 김영달은 1년만에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신제품을 선보였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의 보안장치로 채택이 되며 2001년 코스닥에 상장되고 2004년 비디오 레코더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김영달 아이디스 사장은 “카이스트가 축복이었고 거기에서 배운 지식만 가지고도 연구소에서 칭찬받았다. 이광형 교수는 가능성이 현실이 되도록 씨앗도 안겨주고 운동장을 만들어주었으며 굉장히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너무 잘 만들어주어서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광형 교수는 모든 것을 학생 중심으로 하고 학생이 하자는 대로 한다. 학생이 스스로 연구 주제를 잡기 위해 고민하고 자료를 찾는 과정이 교육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이라고 본다. 스스로 숙제를 정의할 능력을 가진 사람은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가진다.

출처 및 인용: 이광형 카이스트의 시간

윤형돈 네트워킹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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