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과 전후로 여행 계획을 짜기에는 촉박하게 느껴졌고, 비용마저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여행사 패키지였다. 평소 해외도 자유여행만 찾던 기자에게 패키지는 낯설면서도 불필요한 것이었다.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여행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자 주변의 2030대 지인들도 의아하다는 표정과 함께 패키지를 만류했다. 패키지는 마치 중노년층을 위한 맞춤형 상품처럼 여겨졌다.
기자가 택한 여행사는 모두투어의 ‘스위스/이탈리아 2국 9일’ 일정으로, 총 7박 9일의 유럽 패키지였다. 준비할 것이 따로 없다던 여행사의 말만 믿고서 짐만 싸둔 채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해 보니 유럽 일정을 함께 소화하는 인솔자가 일찌감치 나와 반갑게 맞았다. 가족 단위로 11팀이 모였으며, 총 31명의 여행객이 떠나는 일정이었다. 인솔자는 공항에서 여행에 필요한 수신기와 항공권 E티켓, 일정표를 나눠줬다. 그러면서 로마에 도착하면 대형 버스가 마중을 나와 호텔로 이동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10살의 어린 소녀부터 60대의 기자 어머니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모였다. 2030대 여행객은 기자를 포함한 12명으로, 모두 가족 단위로 여행을 찾았다. 이야기를 나누니 기자와 같이 부모와 유럽을 가기 위해서 패키지를 선택했다고 한다. 14시간의 로마행 장거리 비행을 마치고 나니 피로가 얕게나마 쌓였다. 인솔자는 침착하게 조를 나누며, 입국 심사부터 차근히 도왔다. 인솔자의 말마따나 돌발변수 없이 호텔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여러분들 유럽 사람들은 손님과 직원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계산원조차 계산하다가 딴청을 부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인데, 인종차별이 아니니 오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탈리아 사람들은 수세식 비데를 사용합니다. 보통 변기 옆에 수세식 비데가 있는데 다른 용도로 쓰지 마세요”, “유럽은 국경이 없는 만큼 국적 불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소매치기가 빈번한 만큼 여권 관리에 신경써주세요” 등등의 현지 주의사항을 알렸다.
앞서 말했듯 기자의 어머니는 다리가 불편해 장시간 걷는 데 제약이 컸다. 이에 여행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도 많았지만, 인솔자는 침착하게 가이드가 동행하는 일정마다 자신이 걸음을 맞추겠다며 안심시켰다. 하지만, 패키지 일정은 일주일 내 이탈리아와 스위스 전체를 돌아보는 만큼 꽤나 빡빡했다. 이탈리아 피렌체와 밀라노, 베네치아, 체르마트, 로이커바트, 피사, 폼페이, 소렌토, 바티칸, 로마 등 10개 도시를 넘게 소화했다. 아침마다 새벽에 일어나 짐을 싼 채로 옮겨야 했고, 매일 호텔을 바꿔가면서 숙박했다. 호텔은 다음 날 일정에 가까운 곳에서 묵었다. 이에 호텔 상태나 서비스는 천차만별이었다.
식당 같은 경우에도 호텔과 가까운 곳에서 한국인 단체 관광객을 받는 곳에 잡아야 했다. 이탈리아나 스위스 식문화 특성상 저녁 식사는 오후 8시경에 이뤄지곤 한다. 이에 한국인은 현지인들이 붐비기 전인 오후 5~6시경에 마쳐야만 했다. 이러한 요인으로 패키지 일정 동안 찾은 식당 대부분은 음식 맛이 지나치게 떨어지거나 현지 직원의 불친절한 응대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때마다 인솔자가 나서면서 한국인과 유럽인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유명 여행지마다 돌발변수는 느닷없이 튀어 나왔다. 올해는 2025년 가톨릭 희년(禧年)으로, 전 세계에서 신자들이 로마로 몰려들었다. 이에 바티칸 일대가 마비될 정도로 붐볐다. 더구나 기자는 어머니와 보폭을 맞추다 보니 일행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그때마다 인솔자가 수시로 찾아왔다.
이처럼 인솔자는 여행 일정 때마다 10분 일찍 움직였다. 호텔 체크인도 미리 점검해 불상사를 막아냈고, 버스에서 여행객끼리 자리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사전조율도 했다. 또 도로를 건널 때에는 한 발짝 먼저 나서면서 미연의 사고마저 차단했다. 무엇보다도 31명의 개개인 의견이 다름에도 이들 의견을 일일이 들어주면서 일정을 매끄럽게 소화했다. 일면식이 없는 사람끼리 모였던 만큼 여행 초반에는 서로 간에 낯가림이 심했지만, 인솔자의 조율 속에 여행 막바지에는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한국인 특유의 상부상조 문화도 볼 수 있었다.
다만, 패키지 특성상 지나치게 빡빡한 일정은 여행을 온전히 즐기기가 어려웠다. 자유시간은 30분 단위로 주어졌고, 그 속에서 사진을 찍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이는 여행객 사이에서 일관되게 나온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주일의 시간 동안 이탈리아 유명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다는 점과 큰 사고나 변수 없이 여행을 마쳤다는 점은 분명 장점으로 다가온다. 결론적으로 패키지에 대한 반신반의가 신뢰로 바뀌게 됐다.

기자가 여행을 마치면서 느꼈던 패키지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단체생활이다. 여럿이서 움직이다 보니 시간 약속과 개인행동을 자제해야 했다. 그러나 여럿이서 움직이다 보니 현지 치안이나 돌발상황에 보다 순탄히 대처할 수 있었다. 길을 잃어도 일행을 찾다 보면 길이 나왔다. 또한, 일상에서 여행을 계획하기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여행사가 나서서 준비하는 만큼 핵심 명소를 모두 둘러보게 된다. 기자가 걸음이 불편해 불가능하게 보였던 어머니에게 유럽이라는 추억을 선물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28년 경력의 인솔자 A 씨(51)는 “처음 일을 배웠을 때는 인터넷도 없어 지도를 펼치면서 돌발변수를 온몸으로 겪어야 했다”며 “제 일에 대한 자부심이 컸고, 차츰 경험이 쌓이면서 패키지 특성상 여행객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서는 제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했다.
손원태 한국금융신문 기자 tellme@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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