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이 이 연구를 하게 된 배경은 연준이 고용 회복을 위해 2001년초부터 정책금리를 4.75%포인트 인하해 1.75%까지 인하했는 데도 불구하고 고용사정은 전혀 호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연준 보고서에서는 일본의 장기 불황을 1980년대 후반기 버블 경제의 후유증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주식과 토지 가격이 급상승하고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아짐에 따라 투자를 위한 차입조건이 대폭 완화된 결과 GDP 대비 은행 대출의 비율이 대폭 상승(자료 2)하고 투자 지출이 크게 늘면서(자료 3) 경제성장률을 높이는데(자료 4) 기여했다.
연준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일본의 버블 경제의 정점과 그 후의 성장 둔화 과정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선진국들이 겪은 경기 순환과정과 유사한 형태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다만 일본의 경우 경제 성장을 급속히 둔화시키는 몇 가지 특이한 요인들이 강력하게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첫 번째 요인으로는 앞으로도 높은 경제 성장이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 하에서 1990년까지 축적된 지나치게 높은 자본 산출 비율이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과잉상태로 바뀌게 되면서 이익률이 하락하고 기업의 설비투자도 계속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세 번째로는 차입 기업의 대차대조표 문제는 은행의 대출 수익성 악화를 통해서 은행 시스템의 건전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본의 금융감독 체제의 취약성과 대출에 대한 회계 처리방식 등 은행들의 뿌리 깊은 관행 등에 따라 일본의 은행들은 부실대출 문제를 신속히 정리하고 자본을 확충하는데 실패하면서 경제 회복에 필요한 신규 대출을 장애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1990년 초부터 엔화가 급격히 강세화되면서 국내 경제활동을 둔화시키고 물가를 하락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덧붙였다.
연준의 연구는 다음과 같은 의문점들에 대한 답을 얻고자 했다.
첫 번째는 경제가 지속적인 디플레이션에 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판별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두 번째는 인플레이션의 급격한 하락에 대해서 통화정책이 어떻게 대응해야 바람직한가에 관한 것이다.
세 번째는 명목금리가 “0”%에 근접하게 되면 통화정책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파급경로에 장애가 발생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디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한 재정정책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의문점들에 대한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 번째로 자산 버블 붕괴의 심각성과 이에 따른 금융부문의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점들에 비추어 일본의 디플레이션에 따른 불황이 장기간 지속할 것은 전혀 예측이 불가능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첫째로 일본은행이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단칸 설문조사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까지도 기업들이 판매와 수익성에 대해서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둘째로 당시 장기 채권 수익률, 장단기 금리차 등 미래지향적인 금융시장 지표도 일본 경제가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을 반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외환시장에서도 엔화 가치가 강세를 보였는데 이는 일본 경제의 미래에 대한 낙관론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통화정책의 대응에 있어서 디플레이션을 사전에 예측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통화당국은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이 조금만이라도 있는 경우에는 통화정책 기조를 선제적으로 충분히 완화해야만 디플레이션을 방지할 수 있다고 연준은 주장했다. 연준은 일본 경제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지배적이었다는 점에서 1991-95년 기간 중의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는 부적절했다고는 보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했다. 다만 통화정책 결정에 있어서 일본 경제가 처한 비대칭적인 리스크를 감안하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연준은 평가했다.
당시 일본의 경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과도한 완화적인 기조로 인한 인플레이션 상승은 추후의 긴축 기조로 안정시킬 수 있지만 부족한 완화 기조의 통화정책은 디플레이션 발생 위험을 높여 통화정책의 경기 부양효과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디플레이션의 경제적 비용과 인플레이션의 경제적 비용 간의 비대칭성이 존재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디플레이션 리스크를 보다 많이 감안해 보다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과감하게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했다고 판단했다. 연준의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1991년부터 1995년초까지의 기간중 일본은행이 정책금리를 2.0%포인트 더 인하했더라면 디플레이션은 방지했을 것이라고 분석되었다.
세 번째는 일본의 자산 버블 붕괴 후 통화정책의 유효성은 다소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과감한 완화조치가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정도까지 약화되지는 않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가장 자주 언급되는 일본의 장기 불황의 요인은 주식과 부동산 가격 폭락에 따른 금융기관 특히 은행의 취약성이다. 연준은 1990년대 초의 자산 가격 버블의 붕괴는 가계와 기업의 대차대조표의 악화, 부실대출의 급증, 은행 시스템의 취약성 등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은행 시스템의 취약성은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역풍으로 작용하여 통화정책의 경기 부양 능력을 저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분석 결과 가계의 대차대조표 악화는 가계 지출을 크게 위축시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주가와 부동산 가격의 버블 붕괴가 일본 기업의 차입과 투자 지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강력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기업의 투자와 차입의 감소는 은행의 재무상태 악화에 따른 신용공급의 위축을 일부 반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의 효과를 완전히 무력화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통화정책 완화를 통해 부채 상환 부담을 줄여주고 자산가치의 하락을 방지하는 등 대차대조표 문제에 따른 수요 위축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 줄 수는 있었다고 연준은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재정정책 기조도 일본의 기준으로는 1990년대초부터 경기 부양적이었다고 볼 수는 있지만 디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과감하게 팽창적이었어야 한다고 분석되었다. 1990년대 전반에 재정정책은 통상적인 기준으로는 경기를 어느 정도 부양할 수 있을 만큼 팽창적이라고 볼 수는 있겠지만 당시 민간부문의 지출 감소 압력이 매우 강력했다는 점에 비추어 충분히 팽창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연준은 평가했다. 연준은 일본의 사회안전망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취약했다는 점을 반영해 일본의 예산 지출은 경기에 둔감하고 경기 상황에 신축적으로 지출이 조정되는 소위 재정의 자동안정화 장치가 효과적으로 작용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연준은 일본 재정당국이 인구 고령화가 미래 재정지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로 미래 재정지출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치에는 매우 부정적이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의 재정당국은 정규예산보다는 일련의 추가 경정예산을 통해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 부양을 추진하고 공공 사업과 일시적 감세 등과 같은 필요 시 언제든지 폐지할 수 있는 조치에 크게 의존했다고 연준은 평가했다.
공공사업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와 관련해 이러한 사업들이 국회의원들의 지역구에서 지지를 얻기 위해 공공사업을 벌리는 등 정치적 동기가 많이 작용해 생산성 향상에 가장 필요한 인프라의 구축보다는 수요가 별로 없는 도로와 교량의 건설이 많았다는 일부 학자들의 비판도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연준은 판단했다.
공공 투자가 이미 높은 수준에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일본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점인 종신 고용제와 실적이 부진한 기업의 파산 억제 정책을 개선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노동자 교육을 도와주는데 재정지출을 늘렸더라면 경제 전체의 과잉 고용과 산업 구조 조정을 앞당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비자들이 평생소득을 바탕으로 소비 지출을 평탄하게 유지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일시적인 감세 조치는 평생소득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경기 부양에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연준은 강조했다. 일시적인 감세의 경우도 소득보다는 소비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소비자들이 소비에 대한 감세 조치가 미래에 사라지면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소비를 앞당길 유인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보다 효과적이었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정부 부채의 증가가 미래의 세금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로 민간 소비가 위축되면서 재정지출의 경기 부양효과를 상쇄시킨다는 리카르도의 대등정리(Ricardian Equivalence Theorem)에 의거한 주장에 대해서는 설득력이 있는 증거는 없었다고 연준은 주장했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1990년대에 가계 저축률은 하락했고 1990년대 전반기에는 장기 금리가 하락했다는 점에 비추어 재정지출 증가의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가 나타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연준은 이러한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인플레이션과 금리가 제로에 근접하고 디플레이션 리스크가 큰 상황에서는 통화 및 재정 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은 통상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 넘어야 디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이 일본의 1990년대 위기가 주는 교훈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연준의 연구가 일본의 1990년대 위기 상황을 순수한 경제적 측면에 사후 부검(postmortem)을 통한 분석이기 때문에 위기 진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정치 및 사회적 갈등의 증폭 등을 전혀 감안되지 않았다. 보고서에서 여러 번 시인한 것처럼 전후 사정을 모두 잘알고 있는 상태에서 분석했다는 점도 실제 상황과 괴리가 있을 수 있다.
연준의 분석이 맞다면 한 가지 수수께끼는 일본의 디플레이션이 왜 10년을 훨씬 넘게 오랜 기간 지속되었는가에 관한 것이다. 반면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연준이 6년 후인 2008년 금융위기를 맞아 1920년대의 대공황과 같은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연구가 상당히 기여했다는 점이다.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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