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저성장 추세에 한국이 봉착하고 있는 초저출산과 인구의 초고령화가 가세하게 되면 저성장 기조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국의 초저출산과 인구의 초고령화 속도는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이어서 일본이 겪은 저출산과 인구 고령화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출산율이 버블이 붕괴되기 직전인 1989년의 1.57에서 2005년에는 1.26까지 하락하다가 그후 소폭 반등하다가 다시 하락해 2023년에는 1.20으로 떨어졌다. 한국의 출산률은 1989년의 1.56에서 2023년에는 0.72까지 가파르게 하락했다.
한국의 경우 현재도 세수 부족으로 재정적자를 메꾸기 위해 한국은행으로부터 일시 차입금까지 동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 재정의 악화와 국가 채무의 증가는 재정지출을 통해 정부가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여력을 저하시키게 된다. 가뜩이나 높은 가계부채가 소비지출을 제약하는 상황에서 저물가와 저성장이 지속되면 가계의 채무 부담이 더욱 커지게 되어 가계의 소비지출을 더욱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재정지출 여력이 크지 않다면 총수요의 부족을 메꿀 수 있는 방안이 마땅치 않아 불황을 더욱 장기화시킬 수 있다.
한국의 제조업이 처하고 있는 상황도 일본 제조업이 2000년대에 겪은 것과 매우 유사하다. 2000년대에 들면서 일본 제조업이 쇠퇴한 것도 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본 제조업의 쇠퇴의 중심은 전자산업이었다. 1980년대까지 기술에서 앞서 나갔던 일본 기업들은 미래에 변화에 대한 장기 비전을 가지지 못했다. 특히 일본의 전자업계는 모바일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에 따른 TV 수요 감소, 컴퓨터의 주류의 메인프레임에서 PC로의 변환 등 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한국의 경우도 현재 주력 산업인 제조업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일본이 2000년대 처한 상황과 유사하다. 한국 제조업은 임금, 재료비 등 고비용 구조가 고착된 상황에서 생산성 면에서도 중국 등 주요 경쟁국에 비해 나은 것이 없다. 모든 분야에서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좁혀져 있거나 추월당하고 있다. 특히 중간재가 중심이었던 우리의 대중국 수출 구조가 이제는 중국에서 안 통하는 구조적 한계에 봉착해 있다. 일본이 인터넷 시대로의 전환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일본의 전자업계와 같이 한국 제조업이 AI 시대로의 전환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도 큰 상황이다. 반도체의 경우 AI 시대에 수요가 폭증할 맞춤형 반도체를 주문생산하는 파운드리 부문에서 대만의 TSMC에 비해 크게 뒤쳐 있는 상황이다.
현재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외 여건도 일본이 1990년대에 처한 상황과 유사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수입품에 대해 일괄적으로 10~20%의 보편과세를 부과한다면 이는 미국 시장에서는 한국 수출품의 가격이 10~20% 상승하게 된다. 이는 적어도 미국 시장에서는 한국 원화가 달러에 비해 10~20% 강세화된 것과 같은 효과를 의미한다.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강세로 미국 시장에서 일본의 수출 경쟁력이 훼손된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관세장벽을 피해 대규모 물량을 제3국 시장으로 덤핑 수출하게 되면 한국 제품도 제3국 시장에서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요시미 슌야는 그의 저서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정치는 겉모양은 의원내각제이지만 주역이어야 할 내각과 의회를 조연으로 강등시킨 “여당·관료내각제“가 본질이었다고 주장했다. 1988년 리크루트 스캔들이 발각되면서 권력 메커니즘의 근본이 금권선거와 정치부패의 온상이 되었다는 비판이 고조되게 된다. 리크루트 사건을 계기로 자민당 파벌 간의 정치역학이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에 걸쳐서 소용돌이치게 된다. 자민당 내의 파벌 갈등을 둘러싼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중의원 선거제도의 개정 등 정치개혁 관련 법안이었다. 자민당 내의 거대 정치 조직인 다나카파가 붕괴되고 오자와파가 자민당에서 이탈하게 된다. 오자와 이치로는 1993년 55년의 자민당의 일당독주를 붕괴시킨 1993년 호소카와 정권과 2009년 민주당 정권 탄생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정치는 기존의 자민당 독주체제에서 다당 연합정부 수립을 통한 잦은 정권교체와 메이지유신 이래 수상관저와 관료가 주도하는 정책 결정체제에서 탈피해 의회 중심으로 정치가 주도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과정 등이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요시미 슌야에 따르면 정치 주도란 공적인 의사결정의 주체를 행정기관의 관할주의 메커니즘에서 끄집어내 총리관저가 돠었건 시민과 정치인들의 이니셔티브가 되었건 누군가의 강력한 리더십 하에 두는 움직임이었다고 정의했다.
그는 정치 주도라는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문제는 보다 소통이 잘되고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동시에 국가의 장기적 운영이라는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구조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관한 알맹이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민주당 정권의 실패는 정치주도의 명분하에 관료조직을 권력중추에서 배제하면서 내각이 과다한 조정 리스크를 지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주도의 조류에 휩쓸리면서 중앙정부의 관료들 사이에서는 해당 부처의 전통이나 방침을 지키기보다는 수상 관저의 의향을 미루어 짐작해 행동하는 태도가 성행하게 되었다. 민주당 정권의 실패 이후 정치와 관료간의 관계를 새롭게 구축하는 것 보다는 우선 먼저 경기를 회복시켰으면 좋겠다는 국민들의 의견이 확산되었다.
시라가와 총재가 한국을 부러워한 것은 한국이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 행정부가 주도권을 갖고 적어도 5년 동안은 일관성이 있는 정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15년 가까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한국 정치 상황이 일본보다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는가? 대통령 중심제인 한국의 경우에도 일본의 정치주도를 둘러싼 집권당과 야당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2017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후 국회를 중심으로 행정활동을 입법화하는 과정이 진행되면서 대통령 중심제가 아니라 핵심 정책 골격은 국회가 정하고 집행과 책임은 대통령과 행정부가 지게 되는 사실상 최악의 형태의 의회 중심제의 모습을 보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책의 주도권을 놓고 국회와 행정부가 계속 충돌하면서 급기야는 2024년 12월 계엄사태와 대통령 탄핵 소추라는 정치적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었다.
김성민 (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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