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기업만 살펴보면, 법 시행 전·후 대규모 자사주 소각을 결정한 두산(자사주 비율 15.2%)과 SK(자사주 비율 24.6%)는 주가가 1년 만에 각각 227%, 148% 급등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 상승률(117%)을 훌쩍 뛰어넘었다.
주가 상승엔 여러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므로 이를 전적으로 자사주 소각 덕분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겠지만, 과감한 소각 결정이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자사주는 회사가 이미 발행해 유통되고 있는 자사 주식을 직접 매입해 보유한 주식을 의미한다. 이런 주식을 소각하면 자연스럽게 전체 발행주식 수가 감소해 기존 주주 지분 가치는 높아진다. 새로운 주식을 찍어 팔아 기존 주주 지분이 희석되는 유상증자와는 정반대 효과가 나는 셈이다.
자사주 매입·소각은 자본의 효율적 배분과 관련된다. 경영자는 투자받은 돈이나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게 덕목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다. 설비 확장에 투자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인수하는 판단을 내리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기대수익이 낮은 사업이라면 재투자하는 것은 자본 낭비다. 이럴 때 여유자금을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일반적인 주주환원 방식은 배당이다. 그러나 배당에는 세금이 많이 붙는다. 불필요한 비용을 싫어하고 기업가치 평가에 능숙했던 버크셔 해서웨이 전 최고경영자(CEO) 워런 버핏이 배당보다 자사주 매입을 선호한 이유다.
과거 미국에서는 자사주 매입이 시민·사회 단체나 소액주주 연대 일각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법인세·기타 세수 감소와 지분이 많은 대주주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커진다는 점이 비판의 근거였다.
한국은 국가 주도로 거대 장치 산업을 육성하며 발전해왔다. 국가도 기업도 자금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계열사를 담보로 대규모 자본을 일으키는 순환출자형 지배구조가 유리했다. 그러다가 1999년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을 핀포인트로 정리하기 좋은 지주사 중심 지배구조가 권장됐다. 계열사 합병·분할 등을 통한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대량의 자사주가 발생했다.
“국가가 시키고 사회가 원하는 대로 지배구조를 선진화했더니 대주주를 악마화한다”는 불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사주가 경영권을 방어하고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즉각 소각돼야 할 자사주가 마치 자산처럼 인식되며 주주가치를 가로막는 벽으로 작용해 왔다. 과거 정부들도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논리에 빠져 원칙을 어기기도 했다.
주가는 미래에 벌어들일 것으로 기대되는 현금흐름의 현재 가치다. 주주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을 돌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기업에 투자하려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그런 기업들이 우리에게는 적지 않다. 지난 10~20년간 박스권에 갇힌 수익률을 기록한 기업들이 너무 많았다. 글로벌 기업으로 눈부시게 성장한 곳들도 포함된다.
주가를 올려봐야 상속세 부담 등으로 인해 실질적 이익이 줄어든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3차 상법 개정에 이어 논의될 ‘주가 누르기 방지법’에서는 주가를 올리는 기업에 대한 세제 인센티브 등 보완책이 적극적으로 포함돼야 한다.

곽호룡 한국금융신문 기자 horr@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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