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후 15년 이상이 지났지만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의 경제 성장률은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많은 국가들은 자국 경제가 일본과 같이 인구 고령화와 낮은 생산성에 따른 저성장이 장기간 유지되는 상태를 의미하는 소위 경제적 일본화(Japanification)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많은 이코노미스트와 애널리스트들은 중국 경제가 이미 경기침체와 저물가 상황이 지속되는 디플레이션에 진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 정책당국은 디플레이션 심리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이코노미스트와 애널리스트들에게 디플레이션 용어 사용까지 금기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적 일본화를 피하기 위해 정책당국자들과 학자들은 1990년대부터 진행된 일본의 위기와 대응을 살펴보면서 교훈과 시사점을 찾기 위해 일종의 부검을 실시하고 있다.
둘째로 위기 당시 일본 경제는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의 급진전, 재정 세수의 부족 등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겪고 있는 현안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세 번째로 일본 정부가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개혁에 늑장 대응한 배경으로 정치적 리더십 부족이 자주 지적되고 있는데 많은 국가들이 처한 정치 상황도 일본과 유사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선진국들 중 처음으로 일본의 1990년대 위기에 대해 심도 있게 분석한 연구는 2002년 6월 미국 연준이 발표한 “디플레이션의 방지: 일본의 1990년대 경험의 교훈(Preventing Deflation: Lessons from Japan’s Experiences in the 1990s)”이다.
연준이 이러한 연구를 하게 된 배경은 연준이 2001년초부터 정책금리를 4.75%포인트 인하해 1.75%까지 낮췄다. 이러한 큰 폭의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고용사정은 호전되지 않았다. 연준은 명목 금리가 제로 금리 하한(zero lower bound)에 도달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 전통적 통화정책 수단이 무력화되는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했다. 연준은 1990년대의 일본 경험을 면밀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었다.
연준은 일본의 1990년대의 버블 경제의 정점과 그 후의 성장 둔화 과정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선진국의 경기 순환과정과 유사한 형태라고 평가했다. 일본의 경우에는 자산 버블 붕괴에 따른 가계와 기업의 대차대조표상 순자산 가치 폭락, 금융기관의 부실자산 증가, 엔화 강세 등 경기 하락을 이끄는 일본 특유의 요소들이 가세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디플레이션의 사전 예측은 불가능했지만 통화 및 재정 정책을 과감한 팽창기조로 조기에 전환했으면 디플레이션을 방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연준의 보고서는 순수한 경제적 측면에서 전개과정이 이미 알려진 일본의 경제 위기에 대한 대응정책을 모델을 이용해 시뮬레이션한 것이기 떄문에 사후약방문과 같다는 점에서 분명히 한계는 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연준이 6년 후 글로벌 금융 위기에 대응할 때 이 보고서를 매우 유용하게 사용했다고 본다.
연준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정책금리를 2007년 9월의 5.25%에서 2008년 12월에는 0-0.25%로 신속하게 대폭 인하했다. 정책 금리가 0%까지 인하되어 제로 금리 하한에 도달해 금리 인하 등 전통적 통화정책 수단의 효과가 의문시되자 연준은 미래의 금리 수준에 대한 시그널을 통해 장기 금리를 낮추는 소위 선도적 안내(forward guidance)와 대규모 자산 매입 프로그램 또는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등 비전통적인 정책수단을 신속하게 동원했다. 그 결과 연준은 192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회복시킬 수 있었다.
6년전 일본의 경험을 면밀하게 연구한 연준의 선견지명이 디플레이션 발생을 방지하고 경기를 회복하는데 상당히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김성민 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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