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지난 50년간 미국이 절대반지의 권능을 남발했다는 점이다. 찍어낸 국채가 33조 달러에 달하면서 달러도 많이 찍으면 인플레이션이란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이 알게 됐다. 50살이 넘어 노화가 진행되는 달러 패권의 자리를 중국 위안화가 위협하고 나서면서 독수리와 팬더의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또 다른 전장에선 일런 머스크 테슬라 CEO가 기존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화폐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같은 전쟁은 역사상 전례 없던 일이다.
이란이란 덫에 걸린 바이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란 문제의 해법을 바꾸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초기 공약을 지키기 위해 이란 순방을 추진했다 이스라엘의 거센 반발로 이란 방문 일정을 취소하면서 사실상 한발 물러났다. 이란의 부활이 달갑지 않은 이스라엘과 전략적 우방인 사우디 아라비아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란과의 핵합의를 정상화하겠다는 공약을 포기하지는 않은 듯 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2023년 6월 14일자(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은 오만의 중재로 이란과 핵합의 정상화를 위한 물밑 협상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핵합의 파기로 이란과의 관계가 더욱 벌어지자 이 틈을 중국이 노리고 들어오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중국과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바이든 대통령의 성향을 보면 이란과의 핵합의 재개를 추진했을 것 같다. 이란이 핵무장을 다시 추진하는 게 사우디가 핵무장을 하겠다는 명분으로 작용한 것도 바이든이 이란 문제를 좌시하지 않은 이유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로 바이든 행정부의 이란 문제에 대한 입장이 수면위에 떠오르면서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반응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었다. 이란 석유에 대한 금수조치가 해제되는 등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가 풀리면 아브라함 협정으로 어렵게 이뤄진 중동에서의 세력 균형이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균형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에 전적으로 유리한 상황인데 이란이 여기에 다시 끼게 되는 걸 반길 리 없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딜레마 때문에 바이든은 취임 후 중동 문제에서 줄곧 갈팡질팡하는 행보를 보였다. 트럼프가 짜놓은 아브라함 협정 체제와 이란 핵협정 체제의 복원이란 공약이 충돌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나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할 상황에 처한 것이다.
특히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은 소신과 현실 사이에서 마음이 편치 않다. 고금리 고유가 강달러로 미국 경제 회복 속도가 늦어진다면 재선은 물건너 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 중 고유가 문제와 관련해 사우디의 증산을 이끌어내려면 빈 살만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이같은 상황을 영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마음이 급해진 바이든을 쥐고 흔들 적기라고 판단한 것이다. 빈 살만은 이란 문제를 핵개발 명분으로 줄곧 내세우면서 바이든에게 한미 방위조약과 같은 수준의 안보조약을 사실상 강요했다. 바이든은 결국 빈 살만의 요구를 수용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도 관계가 좋지 않다. 2022년 12월 재선된 네나냐후 총리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백악관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 카슈끄지 암살 사건의 배후란 점 때문에 자신의 취임 초기 빈 살만 왕세자의 축하 전화를 받지 않은 것처럼 네타냐후 총리의 서안정책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시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에 정착촌을 짓고 유대인을 이주시키는 것을 바이든은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마치 바이든 보란듯 2023년 7월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시진핑에게 사우디와의 수교에 힘을 보탤 것을 요청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끈질긴 외교로 성사된 아브라함 협정의 마무리는 사실상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평화협정, 즉 수교다. 2020년 아브라함 협정 체결 당시 아랍에미레이트연합 등 수니파 4개국이 서명했지만 정작 맏형인 사우디는 빠졌었다. 주인공은 맨 나중에 등장하는 법이니까.
바이든은 트럼프를 물리치고 백악관 오벌오피스를 차지하면서 이 점을 간과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수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아브라함 협정의 정점을 찍는다고 해도 역사는 그 공을 트럼프의 몫으로 기록할 것이란 점도 바이든이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수교 가능성을 낮게 보게한 요인이다.
바이든은 11월 대선을 앞두고 중동 실책을 만회하려 동분서주하고 있다. 빈 살만이 이란을 지렛대로 미국의 안보조약을 요구할 당시 바이든은 빈 살만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이스라엘과의 수교를 요구했다.
바이든이 취임 직후 명분에 휘둘리지 않고 이같은 일을 서둘러 진행했더라면 현재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중동에서 고립의 위협을 느낀 이란이 하마스와 예멘 후티 반군을 지원해 전열을 가다듬을 시간을 주지 않았을 테니까. 중동 사태는 이제 배후 세력인 이란이 직접 전쟁에 뛰어들 태세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간의 전쟁이 중동전쟁으로 비화할 경우 지정학적 불안으로 인한 유가상승이 불가피하다. 홍해와 호르무스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과 무역선들이 항행의 자유를 상실할 경우 세계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김창익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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