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지난 50년간 미국이 절대반지의 권능을 남발했다는 점이다. 찍어낸 국채가 33조 달러에 달하면서 달러도 많이 찍으면 인플레이션이란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이 알게 됐다. 50살이 넘어 노화가 진행되는 달러 패권의 자리를 중국 위안화가 위협하고 나서면서 독수리와 팬더의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또 다른 전장에선 일런 머스크 테슬라 CEO가 기존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화폐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같은 전쟁은 역사상 전례 없던 일이다.
사우디 석유공사 아람코 상장이 갖는 의미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아라비아 왕세자가 사우디 국영석유기업 아람코의 중국 증시 상장을 추진했던 건 페트로달러 시스템의 붕괴를 촉진할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미국의 견제로 아람코의 중국 증시 상장 계획은 결과적으로 물거품이 됐지만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 사우디와 세계최대 석유 수입국 중국의 전략적 밀월 관계는 기회만 있으면 언제든지 다시 추진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자기가 갖고 있는 자산의 가치가 가까운 미래에 떨어진다고 하면 소유주는 어떤 결정을 할까. 가격이 더 떨어지기 전에 팔려고 할 것이다. 아람코에 대한 빈 살만의 생각도 이와 같다.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이 가속화 할 수록 석유 수요는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석유 시대가 저물기 전에 사우디 석유를 미리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빈 살만은 아람코의 상장을 추진했다. 값이 떨어질 게 뻔한 석유를 미리 제값주고 팔아 탈석유 경제구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원으로 쓰겠다는 게 빈 살만의 ‘2030 경제구상’의 핵심이다.
빈 살만 왕세자가 2019년 아람코 상장을 추진하고 나설 당시 빈 실만 측에서는 아람코의 기업가치를 2조 달러로 추산했다. 얼추 우리나라의 4년 예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진 기업이다. 아람코의 일부 상장에만 성공해도 탈석유 경제로의 체질 개선이 가능하다는 게 빈 살만의 계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람코 상장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빈 살만은 지분 2%를 국내 증시에서, 3%를 뉴욕, 홍콩, 런던 등 해외 증시 상장을 통해 글로벌 자금을 끌어들일 계획이었다. 하지만 해외증시 상장은 2024년 1월 현재까지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외신들은 해외 증시가 요구하는 정보공개 요건 때문이라고 분석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해외증시를 추진하면서 그같은 요건을 몰랐을 리 없기 때문이다.해외 증시 상장 추진 소식이 나올 때마다 월가 투자은행(IB)들 쪽에선 아람코의 기업가치를 평가절하하는 보고서들이 잇따라 나왔다. 2조 달러에 달하는 추정치는 불투명한 정보에서 나온 오류이며 실제 기업가치는 그보다 훨씬 낮다는 것이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시각차는 5000억 달러 정도로 아람코의 가치를 대략 1조5000억 달러로 추정했다. 실제 2019년 말 아람코의 기업공개(IPO)시 빈 살만 측에서는 기업가치를 1조7000억 달러로 잡았다. 글로벌 IB들이 1조5000억 달러로 추산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공모가를 잡을 경우 상장후 주가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럴 경우 빈 살만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릴 수도 있다.
아람코의 상장 시기 전후에 일어난 잇따른 사건들은 그 배후가 누구인지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대표적인 게 2019년 9월14일(현지시간) 아람코 석유시설에 대한 드론 공격이었다. 아람코 석유수출량의 절반 가량을 처리하는 석유 시설이 타격을 받은 사건이다. 이전에도 예멘 반군의 사우디에 대한 드론 공격이 있어, 이들이 배후로 지목됐다. 하지만 드론이 이란 쪽에서 날아왔다는 정황만 있을 뿐 그 배후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게 없다. 이 사건의 아람코의 석유 수출은 일시적으로 타격을 줬지만 공급부족으로 국제유가가 상승하는 아이러니한 결과로 이어졌다.
2019년 3월에 시작된 홍콩 민주와 시위도 공교롭게 그 정점이 아람코의 홍콩 증시 상장 추진 시기와 맞물린다. 범죄인 송환법과 관련한 반발로 촉발된 이 시위 사태로 글로벌 자금이 홍콩을 빠져나가면서 아람코의 홍콩 증시 상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홍콩은 싱가포르와 더불어 아시아 금융허브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에 반환됐지만 홍콩 금융시장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통제력이 강화되는 것을 글로벌 큰 손들이 달가워 했을 리 없다.
김창익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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