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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보는 화폐전쟁-트럼프] ②트럼프는 달러 패권의 적?

기사입력 : 2023-12-27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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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익 칼럼니스트 : 서울경제 기자/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부국장/돈세이돈 대표, 저서: 월저바보(월스트리트저널 바로보기)이미지 확대보기
김창익 칼럼니스트 : 서울경제 기자/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부국장/돈세이돈 대표, 저서: 월저바보(월스트리트저널 바로보기)
화폐전쟁은 기축통화란 절대반지를 둘러싼 쟁탈전이다. 두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영국의 파운드화가 미국 달러에 반지를 내줬다. 1970년대 초 베트남 전쟁 후 달러는 금태환의 사슬을 벗고 석유를 새로운 짝으로 맞으며 명실상부 절대권력을 획득했다. 종이와 잉크만 있으면 돈이 되는 마법이 가능해진 것이다.

문제는 지난 50년간 미국이 절대반지의 권능을 남발했다는 점이다. 찍어낸 국채가 33조 달러에 달하면서 달러도 많이 찍으면 인플레이션이란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이 알게 됐다. 50살이 넘어 노화가 진행되는 달러 패권의 자리를 중국 위안화가 위협하고 나서면서 독수리와 팬더의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달러에 대한 대안으로 탄생한 비트코인이 자산으로 인정받으며 또 다른 전선을 만들고 있다. 달러는 절대반지를 빼앗으려는 위안화와 절대반지 자체를 파괴하려는 비트코인을 상대로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현재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아라비아 왕세자, 나한드라 모디 인도 총리,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이 화폐전쟁을 벌이는 주역들이다.

또 다른 전장에선 일런 머스크 테슬라 CEO가 기존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화폐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같은 전쟁은 역사상 전례 없던 일이다.

트럼프는 달러 패권의 적?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이‘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연설하고 있다.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이‘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연설하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을 기치로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캐치프레이즈와는 반대의 행보를 일관되게 보였다. 적어도 달러 패권과 관련해서는 그렇다. 하지만 그의 언행을 시간이 지난 후 곱씹어 보면 기가막힌 전략이 숨어 있었던 사례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깜짝 놀란만한 반전의 드라마들이 그가 쓴 시나리오의 결과물인지 우연의 산물인지는 단정할 수 없다.

트럼프는 달러 패권 유지의 근간인 세계화란 세계경제질서를 파괴했다. 달러 패권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로 유지된다. 중국이 미국에 속옷과 숟가락을 팔아 달러 벌이를 하고, 이 돈으로 석유를 사쓰는 게 달러 패권을 유지시키는 미국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경상수지 적자의 양면성이 달러 패권이 가지는 구조적 문제다.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 미국은 찍어낸 달러를 전세계에 배달한다. 하지만 경상수지 적자 폭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달러의 신용은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빚쟁이 국가의 돈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미국 정치사는 경상수지 적자의 폭탄돌리기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번갈아 이 폭탄을 상대당에게 떠넘기기 하면서 경상수지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경상수지 적자가 미국의 비즈니스 모델이란 점을 알면서도 폭탄을 떠안은 집권당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경상수지 적자폭을 줄이는 쇼를 펼쳐야 한다. 트럼프는 보호무역주의를 소환하면서까지 지상 최대의 쇼를 보여줬다.

하지만 트럼프의 막무가내식 보호무역주의가 급부상하는 중국을 막아야한다는 절박감의 결과라고 생각하면 고개가 끄떡여지기도 한다. 모든 일이 정반합을 통해 이치로 수렴하듯이 세계경제는 패권 국가의 입맛에 따라 자무역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오갔다. 트럼프의 눈에는 달러 패권의 존폐문제보다 시진핑의 칼날이 더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일 수도 있다.

중동 외교에서 보인 트럼프의 행보도 달러 패권에 위협적인 것처럼 보인다.
달러 패권의 최대 공신 중 하나는 호르무즈 해협을 지키는 미국의 항공모함이다. 미 항모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바다에서 해적이 칼을 휘두를 수 있겠는가. 호르무즈 해협에 각국 유조선이 안심하고 석유를 실어 나름으로써 페트로달러 체제가 지난 50여년 동안 유지됐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불안 때문에 전세계 무역에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을 보면 이 지역에서의 항행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트럼프는 예산 낭비를 내세워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서 미군을 철수를 시도하거나 일부 철수했다. 세계 경찰국가로서 미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패권 유지 비용을 예산문제로 단순화시켰다는 비난이 쇄도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항행의 자유가 위협받고 중동 정세에서 미국의 패권이 약화된다는 건 결국 페트로달러 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실제 시진핑은 이같은 트럼프의 행보를 지렛대로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다. 일례로 시진핑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아라비아와 왕세자와 석유의 위앤화 결제를 줄기차게 시도하고 있다.

한 시점의 단면만 잘라보면 트럼프는 미국의 달러 패권에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아랑곳 하지 않고 주판알만 튕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집권 이후 트럼프의 중동 외교 행보를 끝까지 보고 나면 그의 치밀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트럼프는 예산 절감을 위해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항행의 자유를 내팽개친 게 아니라 항공모함 유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항행의 자유를 지키는 복안을 마련한 것이다. 중동 국가간의 역학관계를 교묘히 파고든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다.

미국에 맞서 호르무즈 해협에서 항행의 자유를 위협하는 건 이란을 필두로 한 시아파 이슬람 국가들이다.
트럼프는 중동 이슬람권의 역학관계를 꿰뚫어 보았다. 중동 이슬람 진영은 사우디 아라비아를 맏형으로 하는 수니파와 이란을 필두로 한 시아파로 분열돼 있다. 여기에 이스라엘을 더하면 크게는 유대교의 이스라엘과 이슬람권, 쪼개면 이스라엘과 수니파, 시아파가 힘을 겨루고 있는 형국이다. 이스라엘과 사우디 아라비아가 미국과 손을 잡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항공모함을 띄운 이유는 이란을 위시한 시아파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스라엘과 사우디를 맺어줌으로써 이란을 꼼짝 못하게 만들며 미국의 중동 외교사를 다시 쓰려고 했다. 이 것이 바로 아브라함 협정이다. 2020년 9월15일 트펌프의 중재로 백악관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레이트연합, 바레인이 맺은 이 협정은 이슬라엘과 이슬람 국가간에 맺어진 사실상 최초의 평화협정이다.

중동 외교사에서 이스라엘과 이슬람 국가간의 평화협정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트럼프는 실리외교를 통해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우선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 취임 직후부터 텔아비브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긴 결단이 대표적이다.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과의 분쟁 때문에 서방국가들이 대사관을 두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자국 수도로 선포했지만 서방은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시아파 이슬람 국가지만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는 건 이슬람권 전체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2017년 대사관을 옮겨 네타냐후의 환심을 샀다. 그로부터 3년뒤 트럼프는 네타냐후를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협상 테이블에 앉힌 것이다.

아랍에미레이트연합은 수니파 진영의 차남격이다. 사우디 아라비아가 협상 테이블에서 빠진 것은 수니파 맹주로서의 체면을 의식한 결과라는 게 당시 국제정치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었다. 차남이 협상장에 나선 건 장남의 동의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브라함 협정 대상국은 이후 모로코 등 총 4개국으로 확대됐다.

중동 이슬람권은 수니파와 시아파로 갈려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지만 이스라엘이란 공적을 상대할 때는 연대했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함부로 할 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아브라함 협정이 이같은 역학구도를 뒤바꿨다. 이 같은 지정학적 균형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다시 원점으로 회귀할 위험에 처했다. 수니파 맹주 사우디가 전쟁 직후 팔레스타인 지지를 표명하면서다. 사우디가 최종적으로 아브라함 협정에 사인하기 직전 이란의 지원 아래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궁지에 몰린 시아파 맏형 이란의 고육지책은 어쨌든 유효했다.

이스라엘과 수니파간의 평화협정은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팔레스타인은 수니파 국가인데 맏형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손을 잡았으니 더이상 기댈 곳이 없어진 셈이다.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차선책을 찾을 수 밖에 없고, 눈을 돌릴 곳은 시아파지만 같은 이슬람권인 이란 밖에 없다. 팔레스타인이 이란에 손을 내민다는 것은 미국을 적으로 만든다는 의미다. 미국은 적으로 간주된 국가를 부러뜨리지 않은 적이 없다.

트럼프는 아브라함 협정을 성사시킴으로써 이란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이스라엘을 철저히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바통을 이어 받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와 이스라엘간의 평화협정을 서둘렀더라면 이스라엘과 하마스간의 전쟁을 없었을 것이다. 정치는 타이밍이다.

김창익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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