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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3(월)

일본 버블 형성의 배경이 된 3가지 신드롬: 재팬 넘버 원 신드롬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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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버블 형성의 배경이 된 3가지 신드롬: 재팬 넘버 원 신드롬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이미지 확대보기
어떤 것을 좋아하는 현상이 전염병과 같이 전체를 휩쓸게 되는 현상을 신드롬(syndrom)이라고 한다. 일본의 자산 가격 버블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미래 경제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의 이면에는 ‘재팬 넘버원 신드롬,’‘부동산 불패 신드롬’그리고 ‘은행 불사 신드롬’등 3가지 신드롬이 1980년대 일본 사회 전반을 휩쓸었다고 생각한다.

’재팬 넘버원 신드롬‘은 1970년대 탁월한 경제적 성과를 바탕으로 하늘을 찌르듯 한 일본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 정부는 산업계와 은행 시스템에 대한 다양한 직접 또는 간접 지원과 행정 지침 등을 활용한 산업정책의 적극적인 추진을 통해 1945년부터 제1차 오일쇼크가 발생했던 1973년까지 연평균 10%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제1차 오일쇼크 이후 경제 성장률은 5%대로 낮아졌지만 소니, 파나소닉, 도요타, 혼다, 캐논과 같은 대기업들이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우수한 제품을 생산해 세계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들어 제2차 오일쇼크의 여파가 사라지면서 엔화 약세에 따라 일본의 수출이 크게 늘어나면서 연평균 4%의 경제성장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탁월한 경제적 성과를 바탕으로 일본은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일본이 최고라는 일류의식이 일본 국민들 뿐만 아니라 외국 전문가들에게도 자리잡게 되었다.

미국의 대표적 동아시아 전문가인 하버드대학의 에즈라 포겔(Ezra Vogel)이 저술한 ’재팬 넘버 원: 미국에 대한 교훈(Japan as Number One: Lessons for America)‘이라는 책이 1979년에 발간되자마자 일본과 미국에서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점은 이러한 일본 국민들의 자신감과 해외의 찬사를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이었다고 볼 수 있다. 포겔 교수는 이 책에서 일본이 미국을 넘어 세계 제1의 경제 대국에 오를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세계는 일본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경제의 미래에 대한 이례적인 낙관론을 부추긴 요인으로는 먼저 일본 경제가 거시경제 측면에서 낮은 인플레이션 하에서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하면서 전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성과를 보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기업과 산업 측면에서는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 다수의 일본 기업들이 세계 최고를 유지해왔던 미국의 기업들을 추월하게 되면서 일본 기업의 효율성과 경영의 우수성이 전세계의 모범이 된 점도 낙관적인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이러한 일본의 우수한 경제적 성과를 바탕으로 20세기 70여년 동안 유지해온 미국의 경제패권이 1980년대 중반 일본의 경제력에 의해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일본 상품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0%를 넘었고 무역 흑자도 대규모로 늘어났다.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이 곧 미국보다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베적이었다.

1980년대 말에는 일본 국민들의 미래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절정에 달했다. 경제는 호조였고 그 기반도 견고했다. 특히 1988년 GDP 성장률이 7.1%로 정부의 예상을 크게 웃돌았고 실업률 또한 주요 선진국들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시가총액 기준 세계 20대 기업(1989년 vs ,2025년 6월)이미지 확대보기
▲시가총액 기준 세계 20대 기업(1989년 vs ,2025년 6월)
1989년의 전세계 기업들의 시가 총액 순위를 보면 1위가 NTT, 2위가 니혼코교 은행, 3위 스미토모 은행, 4위 후지 은행, 5위 다이이찌 캉교 은행 등 최상위를 모두 일본기업이 차지했다.

전세계 시가 총액 최상위 20개사 중에서 일본기업이 14개가 포함되었다. 당시 일본의 주가 버블이 최정점에 도달한 점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기업가치 기준 세계 최상위 5개 기업이 모두 일본계 기업이었다는 사실은 일본 경제의 미래 전망에 대한 낙관적 인식을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로부터 37년이 지난 2025년 6월 시점에서 보면 일본 기업이 하나도 없고 미국 기업이 17개가 포함된 것을 보면 한때의 영광도 결국은 허망하게 사라진다는 말이 가슴 깊이 와닿는다.

수출 호조와 함께 지속적으로 무역수지 흑자가 축적되면서 일본은 세계 1위의 채권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누적된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일본의 은행들이 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리면서 그 위상을 떨치게 되었다. 예를 들어 1988년 일본계 은행들의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자산 증가가 전체 증가의 90%를 차지했다.

주체할 수 없었던 무역수지 흑자를 상쇄하기 위해 일본 투자자들은 해외 부동산, 기업 등 해외 자산을 매입하는데 몰두했다. 1986년 미쓰이 물산이 뉴욕의 엑손빌딩을 6억 1,000만 달러에 매입했다. 해외 부동산 매입 열풍 중에서 가장 상징적이었던 것은 1989년 미쓰비시사가 뉴욕의 록펠러 센터 지분의 51%를 6억 4,600만 달러에 인수한 후 지분을 80% 수준으로 높이면서 총 14억 달러 안팎을 지출한 것을 들 수 있다. 록펠러 센터가 미국 국민들에게 주는 상징성 때문에 미국인들 사이에 일본이 제2의 진주만 공격을 강행하고 있다고 묘사되기도 했다.

해외 기업 매입과 관련해서는 1989년 9월 일본의 소니가 코카콜라 소유의 영화제작사 '컬럼비아 픽쳐스' 의 인수를 발표한 것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다. 1990년 일본의 부동산 개발사인 코스모월드가 페블비치 골프장 등 4개의 골프장을 보유한 회사의 지분 49%를 4억 달러에 인수했다.

세계 예술품시장에서도 일본인들이 주요 구매세력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신문들은 야스다 화재해상보험이 1987년 3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3,980만 달러에 사들인 것을 대서 특필했다. 1989년에는 제지회사인 다이쇼와 제지의 명예회장이었던 사이토 료에이가 크리스티 경매에서 반 고흐의 ’의사 가셰의 초상’을 당시 세계 최고가인 8,250만 달러에 구입한 이후 1990년에는 소더비 경매에서 르누아르의 ‘물랑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를 7,810만 달러에 구입하기도 했다.

에드워드 챈슬러에 따르면 예술평론가들이 예술품이 역사상 가장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시기라고 지칭했던 1988년 10월부터 1990년 1월까지 기간 중 많은 예술품들이 높은 가격을 제시한 일본인들에게 넘어갔다고 한다. 이러한 세계적인 미술품 구입 열풍도 일본인들의 미래 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탁월한 거시경제적 성과, 산업 경쟁력의 향상, 경상수지 흑자의 확대, 국제금융시장에서의 대형은행들의 영향력 확대, 해외 자산 매입 열풍 등을 반영하여 1980년대 후반 일본은 경제 대국, 채권 대국, 자산 대국, 금융 대국 등으로 지칭되었다. 이러한 일본에 대한 세계적인 찬사와 부러움에 따라 일본 국민과 기업들 사이에는 일본의 미래 경제에 대해 이례적인 낙관론이 형성되었다.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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