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투자 업계 최고경영자(CEO‧Chief Executive Officer) 중 가장 인기 있는 이를 고르라면 단연 정영채닫기정영채기사 모아보기 NH투자증권 대표가 아닐까 싶다.
각종 릴레이 캠페인에서 지목 1순위 차지는 물론이고, 날카로운 시각을 유지해야만 하는 기자들 사이에서도 평이 좋다. 업계에서 가장 소통을 활발히 하는 CEO라서다. 속마음까진 알 수 없으나 NH투자증권 직원들과 이야기해도 그 인기는 실감 난다.
비결이 뭘까. 그의 지나온 날을 돌아보며 되짚어봤다. 세 가지가 눈에 띈다.
첫째는 ‘기업금융(IB‧Investment Bank) 대가(大家)’라는 점이다. 30년 넘게 IB에 몸담으며 전문성을 입증받았다. 둘째는 최우선 영업 철학을 ‘고객 가치’로 뒀다는 점이다. 단기적 실적보다 고객과의 신뢰를 우선으로 여기며 직원들 호응과 실적을 함께 높였다. 셋째는 ‘6년’간 NH투자증권을 이끈 장수 CEO라는 점이다. 어느덧 증권가의 상징적 인물이 됐다.
30년 넘게 IB 몸담은 ‘IB 대가’
“도대체 저기가 어디죠?”
2020년 3월, 방탄소년단(BTS)이 그래미 어워드 무대에 등장했을 때 전 세계 팬들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화려한 도심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마천루 꼭대기에 수백 개 조명이 설치되고 아찔한 높이 상공을 드론이 날아다니며 촬영한 이곳은 어디였을까?
때는 2016년이었다. 내로라하는 금융사들이 포기하는 상황에서 “타워 1‧2로 사업을 두 부문으로 나눠 1조짜리 두 건을 한다고 생각하라”며 추진력을 보여줬다. 국내 상업용 부동산 개발 역사상 최대 규모인 2조6000억원을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Project Financing)을 통해 조달했다.
특히 현대백화점을 유치한 것은 아직도 업계에서 ‘신의 한 수’로 거론된다. 현대백화점은 파크원 입주 시 매년 최소 임대료 300억원을 최장 20년간 지급하기로 했다. NH투자증권은 이에 기반해 5% 이율로 6000억원을 조달했다. 나머지 6500억원은 범 농협 계열사들을 동원해 끌어모았다.
업계 우려와 숱한 난관을 뚫고 파크원 타워를 완공한 결과 파크원 가치는 사업비 두 배 이상인 5조원으로 뛰었고, NH투자증권은 1000억여원을 수수료로 챙겼다.
이 유명한 일화는 정영채 대표를 ‘IB 대가’ 반열로 올려놓은 큰 배경이 됐다. 정 대표는 30년 넘게 IB 업계에서 몸담은 IB 전문가다.
1988년 대우증권에 공채로 입사해 증권업계에 발을 들였다. 자금 부장, 종합 금융 2부장, 주식 인수 부장, IB2 담당 상무 등을 맡으며 대우증권의 IB 명가 발돋움에 큰 역할을 했다.
2005년엔 우리투자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 대표는 그가 오면서 독립부서로 신설된 기업공개(IPO‧Initial Public Offering) 팀을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IB 사업부장 상무, IB 사업부 대표 전무 등을 담당하며 우리투자증권의 IB 사업을 크게 키웠다. 7~8위였던 우리투자증권 IB 순위는 수년 만에 1위로 훌쩍 뛰었다. 그가 진행한 딜(Deal‧거래)만 하더라도 웅진코웨이 매각, NHN(대표 정우진) 상장 등 수없이 많다.
2018년 NH투자증권 대표로 취임한 뒤엔 회사 전체에 1등 DNA가 옮겨졌다. 그는 아직도 IB 부서 지원을 아낌없이 한다. 늘 “저도 실무자입니다”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는 게 주변 얘기다. 직접 프레젠테이션(PT) 발표에 나서는 등 공격적 영업을 펼치는 것 역시 유명하다. 병사를 관리만 하는 관리형 장군이 아니라 직접 전장에서 말을 이끌고 다닌 ‘전투형 장군’인 것이다.
업계에 의하면 정영채 대표는 전국 각지를 돌며 기업 대표를 만나고 그들과 사업‧인생 얘기를 나눈다고 한다. 이를 통해 ‘혜안’을 얻는 게 IB만의 특권이자 즐거움이라 여긴다.
발로 뛰는 영업의 결과, 올 3분기 IB 실적 역시 호조세를 거뒀다. 채권 발행 시장(DCM‧Debt Capital Markets)과 주식 발행 시장(ECM‧Equity Capital Market) 등에서 다수 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일반회사채 및 여신 전문 채권 대표 주관 1위를 달성했다.
2년 전 증권사 최초로 자산 위탁 운용 관리(OCIO‧Outsourced Chief Investment Officer) 사업부를 독립 신설하고 대규모 전문 인력을 확보한 선택은 작년 기준 증권업계 OCIO 사업자 1위라는 영광을 거머쥐게 했다.
정영채 대표는 현재 세계 무대로도 IB 보폭을 넓히고 있다. 글로벌 IB 허브(Hurb·중심 축)로 ‘홍콩’을 점찍었다. 2014년부터 이어진 8년 연속 홍콩 법인 흑자 뒤엔 정 대표의 ‘글로벌 원 북(One Book)’ 전략이 있었다. 좋은 딜(Deal·거래)을 발굴해 고객에게 소개하고, 그 과정 속 자체 북(Book·운영 자금)을 활용한 투자를 병행하면서 수익이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최근엔 런던 현지법인(NH Investment and Securities Europe)을 중심에 두고 유럽 시장 선점도 노리고 있으며, 미국 뉴욕 현지법인 당기순이익 증가세도 이어가고 있다.
최우선 영업 철학 ‘고객 가치’
“노력은 회사가 아닌 고객이 평가할 것입니다.”
정영채 대표가 지난 18일 밤 자신의 사회관계망 서비스(SNS‧Social Network Service) 계정에 남긴 글이다. 취임 1주년 회사 후배들에게 썼던 메시지를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번 공유했다. 해당 글은 ‘고객이 전부다’가 요지다. 고객이란 단어만 26번 썼다.
그도 그럴 것이, 정 대표는 NH투자증권의 재무적 성과 중심의 핵심 성과 지표(KPI‧Key Performance Indicator) 직원 평가를 고객 가치(과정 가치) 중심으로 바꾼 인물이다. 단순히 영업 실적이 얼마나 좋냐를 보는 것에서 벗어나 고객이 그 직원 서비스에 얼마나 만족하느냐를 따지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실적 제일주의 문화가 뿌리내린 증권가에서 하기 힘든 결정이었음에도 과감히 추진했다. 과정 가치는 콜 리포트(Call report)를 비롯해 ▲고객을 만난 횟수 ▲최적의 해결책 제공 ▲사후 관리 등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일련의 활동 전반을 평가한다.
콜 리포트는 정영채 대표가 우리투자증권 IB 사업부에 몸담던 시절, 고객 중심 영업 지론을 시스템화하고자 구축한 시스템이다. 본인을 포함해 전사 직원은 고객 만남 뒤 언제 누구와 어디서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소소한 내용을 상세하게 콜 리포트에 작성해야 했다.
처음엔 직원 호응도가 떨어졌다. 하지만 점점 효과가 발휘됐다. 그리고 IB 사업부 고유 제도로 안착했다. 현재 콜 리포트는 NH투자증권의 성공 기반이 됐다.
고객 가치 중심 평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2021년 자산관리(WM‧Wealth Management) 사업부에 이 제도를 도입할 당시 혼란과 두려움 섞인 반응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잘했다고 평가할 것인지’ 묻는 등이다.
하지만 정 대표는 정 사장은 직접 장문의 편지를 써 직원 설득에 나섰다. 본인의 31년 IB 경력에서 고객 중심 영업이 얼마나 중요했었는지 설파했다.
이게 앞서 언급한 SNS 회고록 내용이다. 정 대표는 “우리끼리 노력을 어떻게 측정하고 어떻게 보상하는지는 종국엔 그리 중요하지 않다”며 “‘고객이 우리를 선택하는 가’로 우리 운명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이 대목에서 그가 최우선으로 여기는 영업 철학이 ‘고객 가치’임을 알 수 있다. 고객 목표를 알기 위해 고객을 알아가는 과정의 가치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겨 왔다.
정 대표는 딜을 따내 수수료를 받는 것은 일차원적이라 생각한다. 증권사가 고객이 원하는 다양한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지론이다. 업계 1등을 꼭 하지 않더라도 NH투자증권 이용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게 그가 원하는 바다.
정영채 대표의 이 같은 ‘고객 중심’ 철학이 업계 예상을 깨고 최대 실적으로 이어지자 업계에선 한동안 ‘고객 제대로 알기’ 캠페인 등 비슷한 기조의 정책들이 줄이어 등장했었다.
작년 연말엔 고객 보호 조치를 이행하기 위해 독일 헤리티지 상품에 투자한 일반투자자 고객들을 대상으로 투자원금 100%를 전액 지급을 결정하기도 했다. 일반투자자 81명에게 지급한 액수는 총 126억원이었다.
당시 정 대표는 “고객 중심 경영철학을 유지하면서 고객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원금 전액 지급을 결정했다”며 “고객 신뢰 회복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NH투자증권은 정 대표를 위원장으로 하는 금융 소비자 보호 내부통제 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법률전문가를 외부 위원으로 의무 참여시킨다.
올해 초 신년사에서도 그는 ‘고객 중심의 경영철학’을 강조했다. 고객을 위해 쓸모 있는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할 때란 메시지였다. 정 대표는 “점점 더 세상은 불확실성이 가득할 것”이라면서도 “우리의 변하지 않는 본질인 ‘고객 중심’과 ‘플랫폼’이란 밑바탕이 우리 중심을 잡아줄 것”이라 말했다.
고객 관련 정영채 대표 무기는 또 하나 있다. ‘솔직함’이다. 고객과의 신뢰를 위해 변명보다는 솔직함을 앞세운다.
상품 수익률이 나쁠 때 시장 핑계를 댈 수 있다. 하지만 정 대표는 예상 리스크(Risk‧위험)를 고객에게 공유하는 걸 우선으로 둔다.
그와 20년 넘게 호흡 맞추며 ‘대체 불가능한 IB’로 평가받는 김중곤 주식자본시장(ECM‧Equity Capital Market) 본부장은 시장 신뢰를 얻어온 비결로 솔직함을 꼽기도 했다. 실제로 신년 맞이 기념사나 특정 행사에서 정 대표 발언을 보면 ‘고객’이라는 말을 수시로 쓰는 모습이 확인된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국내 증권업계는 저성장 국면에 진입한 데다 각종 사건 사고가 터지며 IB 사업에 있어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며 “기업이 미처 생각해 내지 못하는 해결책을 제공해야 하는 시대”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 사장의 ‘고객 가치’ 지론은 IB 업계 전체가 갖춰야 할 역량”이라 평했다.
‘6년’간 호실적 이끈 장수 CEO
정영채 대표는 6년간 NH투자증권 호실적을 이끈 ‘장수 CEO’다. 내년 3월, 세 번째 임기 만료를 앞뒀다.
올해 4대 금융지주 수장이 교체되는 등 변화 바람이 불며 ‘장수 CEO’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소 부정적이긴 하나, 탁월한 경영 능력 없이 연속적인 연임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 대표는 취임 첫해인 2018년, 창사 50년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4년이 지난 2021년엔 영업이익 1조2939억원으로 창사 첫 ‘1조 클럽’ 입성을 이뤄냈다. “5년 뒤 이익 1조원 시대를 열겠다”던 취임 포부를 1년 앞당겨 실현한 것이다.
올해도 ‘깜짝 실적’으로 업계를 놀라게 했다. 2분기(4~6월)만 놓고 보면 자기자본 상위 5개 증권사 중 가장 많은 182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작년보다 53% 늘어난 수준이다. 1분기(1~3월)까지 더한 상반기(1~6월) 당기순익은 3667억원으로, 전년 대비 65% 급증했다.
NH농협금융지주(회장 이석준닫기이석준기사 모아보기) 내 입지도 더 단단해졌다. 올 상반기 NH투자증권이 지주에 기여한 순이익 비중은 22%다. 지난해 8.5% 대비 3배가량 확대된 상태다. 지난 3월 기준 NH투자증권 자기자본은 7조원에 달한다.
정영채 대표 주요 성과 중 빠질 수 없는 게 또 있다. 조직문화 쇄신과 디지털 혁신이다.
정 대표는 취임 직후 조직문화 혁신 TF(Task Force‧임시 조직)를 신설‧가동했다. 그 결과 지원 부서 비효율 업무를 30% 절감했고, 빠른 의사결정을 위한 대면보고가 축소됐다. 직원들에게 새로운 도전 기회를 부여하는 동시에 전문 인력 양성 체계 구축 등을 과감히 실행했다.
금융회사 특유의 보수적 문화에서 벗어나 유연한 조직문화 조성도 이뤄냈다. 회사와 직원 간 공식적인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사소통) 채널을 개설했고, 익명게시판을 운영해 직원들이 회사 운영에 관한 의견과 건의 사항을 가감 없이 제시할 수 있도록 했다.
디지털 혁신에도 박차를 가했다. NH투자증권을 데이터 기반 증권사, 데이터가 주도하는 자산관리 금융사로 탈바꿈시켰다.
업계에선 ‘또 한 번의 연임’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직원들 사이 정 대표에 대한 신임이 두터운 데다 현재 거시 경제 상황이 불안정한 만큼 안정적 경영이 필요하단 이유다.
다만, 다음 달 금융위원회(위원장 김주현닫기김주현기사 모아보기)가 진행하는 라임‧옵티머스 펀드 판매사 CEO 대상 최종 제재 결정안이 변수다. 문책 경고 이상 제재가 확정되면 연임을 할 수 없게 된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정영채 대표는 흉물로 방치될 뻔한 여의도 파크원 사업을 성공적으로 바꿔낸 입지전적 인물”이라며 “장수 CEO란 타이틀(Title‧명칭) 뒤엔 빠른 의사결정과 과감한 추진력으로 NH투자증권을 이끌어온 그만의 경영 노하우(Knowhow‧비법)가 있다”고 평했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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