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인 유진기업(대표 최종성)이 출자한 특수 목적 법인(SPC‧Special Purpose Company)을 통해 YTN 인수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간 것이다. 준 공영방송으로 분류되던 YTN은 이로써 민영화를 앞두게 됐다.
23일 한국거래소(이사장 손병두닫기손병두기사 모아보기)에 따르면, 유진기업은 이날 유망한 중소·벤처기업들의 자금조달을 목적으로 한 장외 주식거래 시장 ‘코스닥’(KOSDAQ)에서 전 거래일 대비 3.38%(115원) 상승한 3520원에 장을 마쳤다.
반면, YTN은 전날보다 13.54%(940원) 떨어진 60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장중엔 18% 이상 하락하며 5660원까지 내리기도 했다. YTN 주가가 장중 6000원을 밑돈 것은 지난 5월 17일 5850원 이후 약 5달 만이다.
유진그룹, 최고가 ‘3199억’ 제시하며 최종 낙찰
이날 유진기업과 YTN 주가 향방 배경엔 인수 소식이 있었다.
금융 투자 업계에 따르면, 이날 YTN 매각 주관사인 삼일회계법인(대표 윤훈수)은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개찰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유진그룹은 3199억원을 써냈다. 최고가였다. 그 결과 한전KDN(대표 김장현)과 한국마사회(회장 정기환) 보유 지분 낙찰자로 선정됐다.
유진그룹은 52개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이다. 유진투자증권(대표 유창수‧고경모), 유진자산운용(대표 진영재) 등 금융사를 비롯해 유진기업과 유진로지스틱스(대표 오영석), 동양(대표 정진학), 유진한일합섬(대표 이인수)이 대표 계열사다.
시작은 대흥제과였다. 1954년 유재필 명예회장이 세운 기업이다. 이후 ‘영양제과’로 이름을 바꿨다. 군대에 건빵을 납품하면서 빠른 속도로 규모가 커졌다.
1980년대엔 건설 붐(Boom‧대성황)이 불자 유진종합개발을 세우고 레미콘(Remicon‧회반죽) 사업에 뛰어들었다. 인천, 부천, 수원 등에 레미콘 공장을 연이어 세웠다. 그 결과 수도권에서 경쟁사 대비 압도적 영업 우위를 점하게 됐다.
창업주 장남인 유경선 회장은 1985년 유진종합개발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그는 대표직을 맡자마자 공격적인 인수‧합병(M&A‧Mergers And Acquisitions)을 통해 건자재 유통과 건설, 금융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이후 2004년부터 유진그룹 회장을 맡았다.
이러한 사업 확장에 2007년엔 재계 30위권에 진입하기도 했다. 창립 70년을 앞둔 현재 유진그룹은 연 매출 4조원대에 이른다.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한기정) 발표 기준, 재계 순위 78위에 올라 있다.
현재 3세 경영 승계 작업을 본격화해 유 회장 장남인 유석훈 그룹 경영 혁신 부문 사장이 올해부터 경영 전면에 나선 상황이다. 유 사장은 유진기업 지분 3.06%를 보유했다.
이번 인수전은 1년 전부터 진행됐다. 작년 8월, 한전KDN과 한국마사회는 기획재정부(장관 추경호닫기추경호기사 모아보기)의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Guideline‧안내서)에 따라 비핵심 자산인 YTN 지분 매각 검토 내용을 포함한 혁신 계획을 제출했다.
3달 뒤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YTN 지분 전량 매각 안을 승인했고, 한전KDN과 한국마사회는 곧바로 매각 실무 준비에 돌입했다. 그리고 지난달 8일 YTN 지분을 공동 매각하기 위한 사전 공고를 <서울경제신문>에 냈다. 당시 두 회사는 보유 지분을 합해 총 1300만주(30.95%) 통매각을 결정했다. 개찰 날짜는 이날이라 발표했다.
지난 20일이 입찰 참가 신청 마감일이었다. 유진그룹을 비롯해 한세실업(대표 김익환‧김경), 원코리아미디어홀딩스 등 세 곳이 참여했다. 한세실업은 의료 수출 전문 기업이며, 원코리아미디어홀딩스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창시자인 고(故) 문선명 총재의 3남 ‘문현진’ 한국글로벌피스재단(대표 서인택) 세계 의장이 YTN 인수를 위해 만든 법인이다.
<한국경제신문> <매일경제신문> <한국일보> 등을 소유한 동화기업(대표 채광병)은 이번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참여가 거론되던 글로벌세아(대표 김기명)와 한국콜마(대표 최현규) 등 중견기업도 인수 신청서를 안 냈다.
결국 YTN은 유진그룹 손으로 돌아갔다. 최고가 입찰 방식으로 진행된 매각에서 유진그룹은 최고 가격 ‘3199억원’을 제시하며 YTN을 차지했다. YTN이 보유한 자산 가치와 경영권 프리미엄(Premium‧무형 자산)까지 고려한 가격으로 풀이된다.
이번 인수에 최종 성공하면 유진그룹 지분은 한전KDN(21.43%)과 한국마사회(9.52%)를 합쳐 30.95%로 올라선다. △한국인삼공사(대표 허철호) 19.95% △미래에셋생명보험(대표 변재상‧김재식) 9.26% △우리은행(행장 조병규닫기조병규기사 모아보기) 전략사업부 7.40%를 꺾고 최대 주주가 되는 것이다.
코스닥 상장사인 YTN 시가총액은 이날 장 마감 기준 2015억원인 상태다. 주가가 급락하면서 시가총액도 뚝 떨어졌다.
하지만 YTN이 보유한 자산 가치는 7000억원이 넘는다는 평가도 있다. YTN은 남산 서울타워와 서울 상암동 본사 뉴스퀘어를 보유 중이다. 1000억원대 유보자금 등도 쌓아놨다.
유진그룹, 17년 만에 방송 분야 재진출
유진그룹이 언론사 경영에 관심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997년 부천‧김포 지역 종합유선 방송사(SO‧System Operator)인 드림씨티방송에 출자한 데 이어 은평방송까지 인수한 바 있다. 당시 유진그룹은 부천‧김포, 서울 은평 지역에서 40만명 가입자를 거느리며 케이블 TV 사업자로 약 10년간 활약했다.
당시 SO 처음으로 자사 브랜드를 통해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선보이는가 하면, 외국계 기업으로부터 3000만달러를 유치하는 등 눈에 띄는 행보를 보였다. 큰 성과를 거두자 미디어를 주력 사업으로 육성하는 계획도 구상했었다.
그러다 2006년 방송 분야에서 손을 뗐다. 대우건설(대표 백정완닫기백정완기사 모아보기) 인수를 위해 CJ홈쇼핑에 3581억원 지분 매각을 하면서다. 비록 대우건설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이는 그룹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YTN을 인수하면 17년 만에 다시 방송 분야 진출이 된다. 업계에 따르면, 유진그룹은 YTN 인수를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넓힐 전망이다.
최근 들어 집수리 전문 매장 ‘에이스 하드웨어’(대표 김호준)를 앞세워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Business To Customer)에도 뛰어들고 있어서다. 기존엔 국내 레미콘 분야 1위인 유진기업을 필두로 기업 간 거래(B2B‧Business To Business)가 중심이었다.
앞으로 매각 측은 이사회 의결 등 최종 의사결정을 거친 뒤 유진기업과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YTN 최종 취득까진 2~3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동관)의 최다액 출자자 변경 승인 신청이 들어오면 기본계획을 만들고, 전문가로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YTN 심사에 돌입한다. 방통위 사무처는 ▲방송의 공적 책임‧공정성 및 공익성 실현 가능성 ▲사회적 신용 및 재정적 능력 ▲시청자 권익 보호 ▲대기업‧언론사‧외국인 등에 대한 방송사 소유 규제 등 4가지를 고려할 방침이다.
지상파 방송사 소유 규제 위반 여부도 검토한다.
방송법 제8조에 의하면 대기업과 신문사, 뉴스 통신사는 보도 전문 채널 지분을 30% 이상 소유하는 게 금지된다.
특히 YTN 자회사인 YTN 라디오(37.08%)와 YTN DMB(28.52%)는 분류상 지상파 방송사에 해당하는데, 이 경우엔 지분 소유 규제가 10%로 더욱 엄격하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지난 18일 방통위 전체 회의에서 YTN 최대 주주 지분 매각과 관련해 “YTN 최대 출자자 변경 승인은 국민적 관심사”라며 “재무적 역량뿐 아니라 공정성을 바탕으로 글로벌(Global‧전 세계) 미디어 강국으로 도약할 경영철학 등이 심사돼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방통위 심사 결과는 신청 접수 뒤 60일 이내에 신청인에게 통보될 예정이다.
만약 이번에 유진그룹이 방통위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시 차순위 낙찰 없이 재입찰에 돌입하게 된다.
유진그룹 측은 이날 공식 입장을 통해 “창립 70주년을 앞둔 유진은 우리나라 대표 중견그룹으로, 공정을 추구하는 언론 역할과 신속‧정확을 추구하는 방송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대표 뉴스 전문 채널인 YTN 지분 인수를 통해 방송‧콘텐츠(Contents‧제작물) 사업으로의 재진출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YTN 통매각’… 우려 목소리 곳곳에서
YTN 통매각이 이뤄지자 우려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현 정부의 ‘공영방송 길들이기’란 반발이다.
현재 YTN 노동조합 측은 매각 과정이 불법이라며 절차 중단을 주장한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 지부는 지난 20일 기자회견문을 통해 “한전KDN 매각 주관을 맡은 삼일회계법인은 갑작스럽게 마사회 지분까지 묶어 판다고 결정했다”며 “한전KDN 동의도 없이 (회사에) 손해를 끼칠 방식을 마음대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YTN 최다액 출자자 변경 심의를 맡는 방통위가 현재 대통령이 지명한 두 명 위원만으로 구성된 점도 비판했다.
방통위는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포함한 5인 상임위원으로 구성되는데 현재 여당과 야당 견해차로 방통위원 인선이 지연되면서 세 명 방통위원 자리가 공석인 상태다.
유진그룹에도 경고를 날렸다.
노조는 “유진그룹의 유경선 회장 언론관이 무엇인지 의문”이라며 “그가 미디어 분야에서 어떤 전략과 비전(Vision‧방향성)을 가졌는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고 짚었다.
이어 “윤석열 정권이 공기업으로부터 불법적으로 빼앗은 YTN 지분을 (유진그룹이) 손에 넣는다면, 장물을 매매한 것이나 다름 없다”며 “가담자들은 반드시 법적 처벌을 받을 것”이라 전했다.
YTN 사 측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보도전문채널은 공공성이 가장 중요한 지향점”이라며 “방통위 승인 과정에서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특정 정치 세력이 유리한 여론 환경을 조성하려 한다는 등의 정치적 배경을 둘러싼 의혹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 역시 ‘YTN 민영화’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중이다.
YTN은 그동안 공기업이 지배주주라 공영 언론으로 분류돼왔다. 이번 지분 매각이 확정되면 실질적으로 민영화된다.
더불어민주당 언론 자유 대책 특별 위원회는 유진그룹의 YTN 인수가 결정되자 논평을 통해 “‘준 공영방송’인 YTN을 부도덕한 행태로 사회적 비난에 휩싸인 민간기업에 팔아넘기는 윤석열닫기윤석열기사 모아보기 정부의 부도덕성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화살을 날렸다.
‘주식 리딩방’에 계열사인 유진투자증권이 연루된 의혹을 받는 데다 2017년 검찰 수사 무마 대가로 오너(Owner‧소유주)가 검사에게 금품을 준 혐의로 기획재정부의 복권 수탁사업자 선정에도 탈락한 전력이 있단 지적이다.
특위는 “KBS, MBC 등 공영방송 장악에 이어 공공기관이 대주주로 있으면서 보도 공정성을 담보해 오던 ‘보도전문채널’ YTN을 석연치 않은 절차와 과정을 거쳐 결국 사회적 지탄받는 기업에 넘겨주려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권력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접 장악하거나 팔아치워서라도 전두환 국사 독재 정권 시절처럼 오로지 대통령을 칭송하는 ‘땡윤 뉴스’를 내보내겠다는 의도냐”고 되물었다.
이어 “공기업 빈자리를 부도덕한 자본이 차지한다면 방송법에 따라 방송 시간 80% 이상을 뉴스로 보도해야 하는 보도전문채널의 생명인 공정성은 소멸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정의당은 한발 더 나아가 YTN 통매각과 관련한 국정조사까지 요구 중이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매각은 24시간 윤영 방송 채널을 만들겠단 윤석열 대통령 뜻이 관철됐다”며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를 10년 이상 후퇴시킬 윤석열 정부 방송장악 게이트(Gate‧비리 사건) 시작”이라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삼일회계법인의 매각 주관사 선정과 입찰 참가 신청 등 YTN 매각 전 과정은 국회 조사로 철저히 규명해야 할 국정조사 대상”이라며 “한전KDN 지분 단독 매각이 최우선 방안이라던 삼일회계법인이 돌연 한전KDN과 한국마사회 지분을 한 번에 매각하는 ‘통매각’ 결정을 내린 데는 대통령실 인수자 내정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여권은 이러한 우려 목소리에 관해 “YTN 매각은 공공기관의 자산관리 효율화 방침에 따른 단순한 지분 매각”이라며 “‘공영방송 길들이기’와는 무관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유진그룹 측은 YTN 인수 절차를 잘 밟아가겠단 뜻을 나타냈다.
유진그룹 관계자는 “유진은 과거 SO를 크게 성장시킨 데 이어 현재도 음악방송 등 방송 채널 사업자(PP‧Program Provider) 사업을 진행 중”이라며 “공공사업인 복권사업 민간수탁자 역할도 10여 년 동안 수행한 경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번 입찰을 통해 우선 협상자로 선정됐지만, 방송통신위원회 승인이 예정된 만큼 잘 준비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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